"작가에게 불리한 조항을 요구하고 상으로 포장하는 건 부당" 김금희, 최은영, 이기호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2020.01.06 15:08 입력 2020.01.06 20:53 수정

2020년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을 거부한 소설가 김금희(왼쪽부터), 최은영, 이기호.

2020년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을 거부한 소설가 김금희(왼쪽부터), 최은영, 이기호.

국내 대표적인 문학상 중 하나인 이상문학상 수상을 소설가 김금희·최은영·이기호 등 3명이 동시에 거부했다. 문학사상사는 6일 발표 예정이었던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 발표를 무기한 연기한 상태다.

소설가 김금희는 6일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우수상 수상작품의 저작권을 3년간 출판사에 양도하고, 3년 안에 다른 작품집에 수록할 수 없으며 표제작으로도 쓸 수 없다고 계약서를 보내왔다”며 “계약서 수정을 요구했지만 그동안 지켜온 ‘룰’이기 때문에 수정이 불가능하다고 답변이 왔고 수상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김금희는 이어 “수상작을 작품집 표제작으로도 쓸 수 없다기에 문제제기했더니 1년 뒤에는 가능하다는 답변이 왔다. 내 작품을 사용하는데 왜 ‘양해’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작가의 저작권은 양도받을 수 있고, 양도를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식대로라면 저작권자인 저에게 수상작품집 ‘사용’을 ‘허락’받는 내용의 계약서가 와야 하지 않았을까”라고 덧붙였다.

김금희는 지난 4일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를 공론화했다. 김금희는 “수상 거부는 쉬웠지만 공론화엔 고민이 많았다. 문제제기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이렇게 운영될 것이기에 목소리를 냈다”며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 독자들이 호응을 보내는 것은 거기 수록된 작품에 들어간 작가들의 노고 때문이다. 작가에게 불리한 조항을 요구하고 상으로 포장해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상문학상은 모든 작가들이 받고 싶은 상이지만 상이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것을 용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쇼코의 미소>로 유명한 소설가 최은영, 중견 소설가 이기호도 우수상 수상을 거부했다. 최은영은 “작가들이 평등한 관계에서 존중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수상하지 않겠다고 답했다”며 “작가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은영은 “출판사에서 표제작으로 수상작품이 쓰이면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판매에 지장이 온다는 이유로 표제작으로 쓰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소설가 이기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수상이라는데 3년 동안 저작권 양도 이야기를 하길래 거절했다. 나는 그냥 나만 조용히 빠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문제가 커진 것 같다”고 밝혔다.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말미에 수록된 ‘저작권 양도 조항’.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말미에 수록된 ‘저작권 양도 조항’.

44년 역사의 이상문학상은 문학사상사에서 주관하는 국내 대표적 문학상이다. 그동안 한강, 김훈, 공지영, 김연수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대상을 수상했다. 문학사상사는 대상 작품에 대해서 3년 저작권 양도를 요구했으나, 지난해부터 우수상까지 저작권 양도 범위를 확대해 요구했다.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3회 수상한 조해진 소설가는 “예전엔 우수상의 경우 계약서 자체가 없었다. 대상에 대해서 저작권 양도 조항이 있었는데 지난해부터 우수상에 대해서도 저작권을 확대하려고 했던 것 같다”며 “대상 수상작에 대해 저작권 양도를 요구하는 것도 재고해야하는데, 출판사에서 시대를 역행해 판단한 것 같다. 이번에 용기내 발언한 작가들의 문제제기를 기회로 변화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금희의 문제제기에 많은 작가들이 지지의 뜻을 표했다. 김명인 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문학사상사의 계약 조건을 ‘봉건적’이라며 “이상문학상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견뎌낼 수 있는 맷집을 지닌 김금희 같은 작가가 먼저 나서 문제제기를 잘 한 것”이라며 “차제에 다른 메이저 출판사들의 경우에도 작가들에게 강제하는 유무형의 강제나 불이익은 없는지도 살펴보고 적절한 대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문학사상사 측은 당초 이날 예정된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발표를 무기한 연기하고 공식 입장 정리에 들어간 상태다. 문학사상사 임지현 대표는 “대상 수상작에 대해 3년 저작권을 양도받는 조항이 지난해부터 서류 착오로 우수상 수상작가에게도 잘못 전달된 것”이라며 “대상 수상작 저작권 양도조항도 오래전부터 있던 조항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다. 작가들이 이의를 제기한다면 수정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은행나무),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 젊은작가 수상작품집(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에서 계절마다 좋은 소설을 선정해 펴내는 <소설 보다> 등 다른 수상작품집은 작가들에게 상금 및 선인세를 지급한 뒤, 이를 초과하는 판매량에 대해서 인세를 정산해 지급하며, 별도의 저작권 양도 요구는 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9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2019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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