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기고

난장이 가족 ‘이후’를 생각하며 기나긴 침묵…그 ‘대안적 사상’의 주체가 우리임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2022.12.26 20:54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조세희 선생을 기리며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마지막으로 선생님을 뵈었던 어느 겨울날 선생님께서는 단정한 모습으로 오늘 사진을 한 장 찍었다고 말씀하셨죠. 저는 왠지 사진 속의 선생님의 얼굴이 뭐랄까, 지나치게 맑은 느낌이 들어, 마음 한가운데가 서늘했습니다.

선생님을 만난 어느 날 저와 동료들이 미완의 장편인 <하얀 저고리>를 매듭짓는 것이 어떠시냐고 권유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 소설은 한 계간지에 연재되었다가 중단된 장편소설이었지요. 구한말의 동학농민전쟁으로부터 신군부가 등장한 1980년대까지가 시대적 배경으로 쓰인 작품인데, 이를 통해 선생님은 고통과 악무한적 역사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풀뿌리 민중의 강인한 희망에 대해 쓰고 싶어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찌 된 게 군사독재가 끝나고 이른바 민주화에 이른 시대조차 선생님께서 아끼고 사랑했던 노동자와 민중에게 가해지는 권력과 자본에 의한 구조적 폭력은 변함이 없었지요.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폭압적인 구조적 폭력에 희생당하는 ‘난장이’들의 변함없는 비극적 조건 앞에서, 펜을 들어 시대를 묘파하는 일의 괴로움과 무력감에 직면하셨던 것 같습니다.

요컨대 공장 굴뚝 위에서 죽음을 선택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김불이의 삶은 오늘도 반복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그의 희망 역시 여전히 끈질기게 부정당하고 있기 때문이었지요.

“아버지가 꿈꾼 세상은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였다. 그 세계의 지배계층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버지는 말했었다. 인간이 갖는 고통에 대해 그들도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사랑’과 ‘공감능력’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근원적인 작동원리여야 한다는 아버지 김불이의 희망은 아들인 영수에게 다음과 같이 변용되기도 하지요.

“내가 그린 세상에서는 누구나 자유로운 이성에 의해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아버지가 꿈꾼 세상에서 법률 제정이라는 공식을 빼버렸다. 교육의 수단을 이용해 누구나 고귀한 사랑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물론 아버지 김불이와 아들 영수가 살아간 세계는 “사랑”도 “자유로운 이성”도 실질적인 사회의 작동원리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딸인 영희의 다음과 같은 절규가 선생님의 여러 소설 속에서 거듭 반복되어 발성되었던 것이겠지요.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버려.”

“그래. 죽여버릴게.”

“꼭 죽여.”

“그래. 꼭.”

“꼭.”

저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등장하는 김불이의 사상을 ‘사랑의 율법주의’로, 영수의 그것을 ‘계몽적 이상주의’로, 영희의 분노를 ‘정념의 행동주의’로 규정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이 세 가지 사상의 어느 한 측면을 골똘히 생각하면서, 현실의 고통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왔으리라 여깁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부분적인 대안일 뿐 이 엉망진창이 된 현실의 명백한 대안은 될 수 없다고 선생님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이겠지요.

그렇다면 이 난장이 가족 ‘이후’의 대안적 사상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을 생각하면서 선생님은 소설가로서는 기나긴 ‘침묵’의 시간을, 사진작가로서는 끈질긴 ‘침묵의 증언’을 해나갔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 새로운 사상과 대안적 행동의 주체는 영수와 영희의 다음 세대인 바로 ‘우리’에게 있음을 알리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그 희망에 ‘우리’가 응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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