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초 FBI에 ‘프로파일링’ 도입한 그녀

2023.02.24 11:55 입력 2023.02.24 19:20 수정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연구하며

범죄자들 심리에 주목한 버지스

강간·살인 급증한 1970~80년대

FBI 행동과학부서 일원이 되어

연쇄살인마를 분석·검거해낸다

넷플릭스 ‘마인드헌터’의 모델

앤 버지스 박사(컴퓨터 앞)와 수사관들이 보스턴 시립병원 범죄자 성격 연구 프로그램 스태프들과 회의하는 모습으로 1986년 ‘FBI 법 집행 회보’에 실린 사진이다. 앤 버지스 제공

앤 버지스 박사(컴퓨터 앞)와 수사관들이 보스턴 시립병원 범죄자 성격 연구 프로그램 스태프들과 회의하는 모습으로 1986년 ‘FBI 법 집행 회보’에 실린 사진이다. 앤 버지스 제공

살인자와 프로파일러

앤 울버트 버지스·스티븐 매슈 콘스턴틴 지음, 김승진 옮김 | 북하우스 | 428쪽 | 1만8800원

요새 ‘프로파일러’는 초등학생도 아는 직업이다. 범죄 심리학 전공자가 TV 프로그램의 진행자를 맡고, 프로파일러 출신 국회의원도 나올 만큼 이름만 대도 아는 프로파일러들이 있다.

프로파일링이라는 개념은 1970년대 후반 미국에서 연쇄살인 등의 범죄율이 높았던 시기에 처음 등장했다. 존 더글러스, 로버트 레슬러 등 1세대 프로파일러와 함께 ‘FBI 범죄 분류 매뉴얼’을 만들고 프로파일링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사람이 앤 울버트 버지스다. 버지스는 1세대 프로파일러가 나올 수 있었던 중심적 역할을 했다. <살인자와 프로파일러>는 FBI 행동과학부의 유일한 여성이자 비요원 출신인 버지스 보스턴칼리지 간호대학원 교수가 성폭력·연쇄살인범과 그 피해자들을 마주하며 설계한 프로파일링이 어떻게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초기 역사를 보여주는 회고록이다.

정신간호학을 전공한 버지스가 범죄자에 대해 주목하게 된 건 주립병원 정신병동에서 이뤄진 실습 때였다. 그가 마주한 정신병동의 여성환자 대부분은 성폭력 피해자였다. 성폭행을 당했고, 낙인이 찍혔다. 밖으로 떠들지 말고 트라우마를 홀로 삭이도록 내몰렸고 본인이 피해를 자초한 것 아니냐는 뻔한 비난에 시달렸다. 저자는 피해자 146명을 면담한 뒤 1973년 ‘응급실의 강간 피해자’라는 논문을 냈다. 성폭력이 성적인 행동 자체에 대한 행위라기보다는 ‘권력과 통제’에 대한 행위라는 사실을 담았다. 당시 제대로 언어화되지 못했던 피해자들의 고통에 ‘강간 트라우마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러한 연구와 활동은 미국 최초의 강간위기센터 설립으로 이어진다.

프로파일링 수사기법을 설명하고 있는 1985년 ‘FBI 법 집행 회보’에 실린 기사. 여기에 실리면서 프로파일링 기법이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앤 버지스 제공

프로파일링 수사기법을 설명하고 있는 1985년 ‘FBI 법 집행 회보’에 실린 기사. 여기에 실리면서 프로파일링 기법이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앤 버지스 제공

프로파일링 수사기법을 설명하고 있는 1985년 ‘FBI 법 집행 회보’에 실린 기사. 여기에 실리면서 프로파일링 기법이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앤 버지스 제공

프로파일링 수사기법을 설명하고 있는 1985년 ‘FBI 법 집행 회보’에 실린 기사. 여기에 실리면서 프로파일링 기법이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앤 버지스 제공

버지스는 범죄의 속성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한 사건의 두 측면으로서 피해자와 가해자 양쪽을 모두 봐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강간과 연쇄살인 범죄가 증가하는 상황을 고민하던 FBI는 버지스를 부른다. 버지스는 남성들만 모인 FBI 사무실에서 “강간은 성별의 문제가 아닌 권력과 통제의 행위”라고 말한다. 당시 통념을 뒤집는 발언이었다. FBI는 그녀와 손잡기로 하면서 이미 복역 중인 연쇄살인마 수십명의 면담 녹음 파일을 함께 분석한다. ‘왜 죽였는가’ ‘자신이 저지른 범행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범행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진화했는가’ 등에 집중했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선 요즘처럼 수사기법이 발달되지 않았을 때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1970~1980년대만 해도 DNA 유전자 분석기법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요즘 같으면 유전자 분석으로 범인을 바로 특정할 수 있지만 이 시기는 어려웠다. 수사관들의 ‘감’에 의존했다. 리서치나 분석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성폭력 사건을 열심히 수사하지도 않았던 시절이라고 저자는 회고한다.

버지스와 FBI는 살인마들의 반복되면서도 특별한 특성을 요약해간다. 범죄자들의 심리 기저를 꿰뚫어볼 수 있도록 프로파일링의 표준화된 틀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는 FBI 내부에서도 의구심이 컸다. FBI 내에서도 힘이 약한 부서였다. ‘방공호’라 불리던 이 부서 공간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이들에게 어느 날 미국 네브래스카주에서 벌어진 사건이 할당된다. 지역 수사관들이 잡기 어려웠던 살인범에 대해 버지스와 FBI는 ‘10대 후반~20대 초반 백인 남성’ ‘과시 유형’ ‘시신 유기 경험은 부족’ ‘성적 판타지와 편집증’ ‘야간근무하는 반숙련 기술자 같은 블루칼라 노동자’ 등의 특성을 제시하면서 용의자를 특정해간다. 버지스와 FBI 행동과학부가 지목한 용의자가 범인으로 밝혀지는 일이 늘어가면서 ‘프로파일링’은 FBI 수뇌부의 인정을 받고 언론에도 알려진다.

당시만 해도 ‘강간 한 건만 저질렀다’며 지역 수사팀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던 사건들을 저자는 “한번의 강간은 절대 그 한번에서 끝나지 않는다. 행위가 궤도를 타면 강간 판타지는 빈도와 강도가 더 높아진다”고 지적한다. 그들에게 폭력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중독이기에 빠르게 체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책은 일리노이주 아동 납치 및 살해 사건, 스키 마스크 강간범과 BTK 연쇄살인마, 유나바머 등 미 전역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악명 높은 살인 사건들을 추적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뒤쫓는다. 용의자들을 분석하고 좁혀가며 당시 토론 장면들을 생생하게 재구성한 과정은 흥미롭다.

저자는 여러번 강조한다. 연쇄살인범을 분석하는 이유는 가해자 갱생을 위해서가 아니라고. 연쇄 살인범의 추가 범행을 막고, 또 피해자들을 돕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통찰을 끌어낼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저자는 정기적으로 법정에 출두해 폭력적인 연쇄 범죄, 아동학대 및 성범죄가 연루된 사건에서 전문가 증언을 제공하며 여전히 피해자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마인드 헌터>에서 안나 토브가 연기한 웬디 카 박사 캐릭터는 저자를 모델로 했다.

살인자와 프로파일러

살인자와 프로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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