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국립오페라단 ‘맥베스’

2023.05.01 15:34 입력 2023.05.01 20:01 수정

오페라 <맥베스>에서 ‘맥베스’를 연기한 바리톤 양준모. 국립오페라단 제공

오페라 <맥베스>에서 ‘맥베스’를 연기한 바리톤 양준모. 국립오페라단 제공

바리톤 양준모, 독일에서 맥베스 연기 경험
붉은 장갑, 지울수 없는 살인의 죄 표현

오페라 <맥베스>는 맥베스가 마녀들을 만나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리라는 예언을 들은 뒤 던컨 왕과 친구 방코를 살해하고 스스로 왕좌에 오르며 파멸하는 이야기이다.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가 34살 나이에 처음으로 각색한 셰익스피어 작품으로 그에게 빛나는 명성을 안겨준 걸작이다.

국립오페라단은 지난달 27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맥베스>를 공연했다. 기자가 관람한 27일 공연에선 맥베스 부부의 가창력과 연기력이 단연 돋보였다. 맥베스 역의 바리톤 양준모는 욕망과 양심 사이에서 괴로워하다 불안에 잠식당하는 ‘약한 남자 맥베스’를 표현했다. 최후의 결투 장면에선 맥더프의 칼에 스스로 다가가 죽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양준모는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오페라극장에서 활동하며 2011년과 2015년 맥베스를 연기한 경험이 있다.

레이디 맥베스 역의 소프라노 임세경은 힘이 넘치면서도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아리아로 관객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권력을 탐해 던컨 왕을 죽일 음모를 꾸미며 부르는 아리아 ‘일어서라, 지옥의 사자들이여’의 음산한 고음은 소름이 돋았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극장에서 <나비부인> <토스카>, 이탈리아 베로나 극장에서 <아이다>의 주역으로 출연한 관록을 보여줬다.

맥베스 부부가 입은 옷은 살인을 저지를수록 점점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간다. 손에 붉은 장갑을 착용해 피에 물든 손을 표현했다. 레이디 맥베스가 몽유병에 시달리는 장면에선 손을 문지르며 붉은 장갑을 벗지만 장갑 안에 장갑이 덧씌워져 있어 계속 벗겨도 끝까지 다 벗겨지지 않는다. 지울 수 없는 살인의 죄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오페라 <맥베스>의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오페라 <맥베스>의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오페라 <맥베스>의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오페라 <맥베스>의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오페라 <맥베스>는 장면 전환이 10회가 넘는 데다 성악곡의 난이도가 높아 무대에 구현하기 어려웠다. 1997년 서울시오페라단이 국내에서 초연한 뒤 26년 동안 국내에서 공연한 횟수는 한손에 꼽을 정도이다. 파비오 체레사 연출은 단순하면서도 상징적인 무대로 장면 전환 문제를 풀었다. 무대 뒤편은 거대한 사람 눈동자를 닮은 터널을 설치해 환상 세계로, 무대 앞편은 배우들이 주로 연기하는 현실 세계로 꾸몄다.

눈동자 모양 터널은 입구가 카메라 렌즈 조리개처럼 열리고 닫히며 장면을 전환한다. 터널 안에서 걸어나온 마녀들은 맥베스에게 예언을 내리고, 죽은 인물들을 한 명씩 터널 안으로 데려간다. 이 눈동자는 현실 세계에서 운명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발버둥치는 인물들을 지켜보는 신의 시선처럼 보인다. 인물들은 운명과 생명을 상징하는 붉은 실을 몸에 휘감고 괴로워한다. 이 실은 인물이 죽어야 끊어진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고 전하는 듯하다.

단순하고 상징적인 연출이 강점이지만 일부 장면들은 시각적인 설명이 부족해 아쉬움이 남는다. 나뭇가지로 위장한 맥더프와 영국 병사들이 움직이는 비르남 숲처럼 다가오는 장면에서도 별다른 의상 변화가 없었다. 맥베스의 병사들과 맥더프의 병사들이 모두 흰 옷을 입고 뒤섞여 움직여 혼란스럽기도 했다.

파비오 체레사 연출은 국립오페라단을 통해 “우리 세계는 우월하고 전지전능한 존재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인간을 꼭두각시 인형처럼 조종하는 작은 극장인 셈”이라며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 역시 자신의 행동을 통해 운명을 재촉하거나 바꾸려고 하지만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고 전했다.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