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사실화 속의 책·말·꽃·시계···, 갖가지 이야기로 사유를 이끌다

2023.10.13 17:02

모란미술관 기획 ‘이석주 전’

극사실회화 1세대 작가의 초기~최신작 총 망라

“인간의 실존성·존재의 유한성 등 깊은 사유”

한국 극사실회화 선구자인 이석주 원로작가의 대규모 작품전이 모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이석주의  시리즈 ‘사유적 공간’(2022, oil on canvas, 181.8x227.3cm). 모란미술관 제공

한국 극사실회화 선구자인 이석주 원로작가의 대규모 작품전이 모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이석주의 시리즈 ‘사유적 공간’(2022, oil on canvas, 181.8x227.3cm). 모란미술관 제공

극사실회화는 흔히 ‘사진보다 더 사진 같다’는 평을 듣는다. 일상 속 평범한 사물과 풍경, 인물을 실재하는 그대로 극도로 세밀하게 묘사하거나 아예 대상의 특정 부분을 확대하기도 한다. 정신적 집중과 수공예적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극히 사실적으로 그려진 그림은 익숙한 대상을 오히려 낯설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게도 한다. 그리하여 상상력을 자극하고, 인간의 시각적 인지에 관한 질문을 던지며, 새삼 일상과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한국 극사실회화의 1세대 작가로 평생 극사실화에 천착해온 원로작가 이석주(71)는 일상과 현실에서 느낀 정서를 담아내는 극사실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극사실화는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하이퍼리얼리즘’으로 등장, 작가의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채 그려지며 주목받았다. 한국에는 1970년대 후반 성행하는 추상미술 대안의 하나로 나타나 눈길을 잡았고, 지금까지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이석주의 ‘사유적 공간’(2023, oil on canvas, 227.3x181.8cm). 모란미술관 제공

이석주의 ‘사유적 공간’(2023, oil on canvas, 227.3x181.8cm). 모란미술관 제공

이 작가의 작품은 작가의 느낌·정서를 녹여낸다는 점에서 일반적 하이퍼리얼리즘과는 결을 달리한다. 그는 책, 시계, 말, 기차, 명화, 꽃 등 시간을 상징하는 자연적·인공적 사물을 주로 소재로 다룬다. 이들을 화면에 조형적으로 담아냄으로써 초현실적 분위기와 더불어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실존성을 사유하게 한다.

이석주 작가의 작품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전 ‘이석주 전’이 모란미술관(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서 열리고 있다. 모란미술관 기획전으로 마련된 전시에는 1970년대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총 망라돼 선보인다. 이연수 모란미술관장은 “일상과 사유가 예술적 공간에서 어떻게 회화적으로 변용될 수 있는지를 제시하고자 한다”며 “이 작가의 미학적 변주를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해볼 수 있는 자리”라고 기획취지를 밝혔다.

이석주의 ‘벽’(1977, mixed media, 120x120cm). 모란미술관 제공

이석주의 ‘벽’(1977, mixed media, 120x120cm). 모란미술관 제공

이석주의 ‘일상-대화’(1984, acrylic on canvas, 73x 91cm). 모란미술관 제공

이석주의 ‘일상-대화’(1984, acrylic on canvas, 73x 91cm). 모란미술관 제공

이 작가의 1970~80년대 활동 초기 작품들로는 ‘벽’ ‘일상’ 시리즈가 있다. 전시장에서 만나는 작품 ‘벽’(1977)은 붉은 벽돌 벽 일부를 확대해 캔버스에 극사실적으로 담고 있다. 당시만 해도 도시적 소재로 농촌 흙벽과 대비되는 붉은 벽돌은 군사정부의 억압적 현실 또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어려움을 표현한 것으로 읽혀진다. 인물초상들이나 숫자·과녁·신문 등이 표현된 1980년대 ‘일상’ 연작은 물질·소비·배금주의 등으로 치닫는 현대사회 속에서 소외되는 현대인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이후 ‘일상’ 시리즈는 물론 ‘창’, ‘사유적 공간’ 연작을 선보인다. 외부보다 내면으로 더 깊게 파고들어 인간의 실존성을 고민한 작품들이다. 1990년대 이후 ‘일상’ 연작은 자연과 도시를 대변하는 소재의 대비, 시간을 상징하는 소재들의 적극적 활용을 통해 초현실적이거나 서정적 화면으로 인간의 존재 의미를 묻는다.

이석주의 ‘일상’(1991, oil on canvas, 181.8x227.3cm). 모란미술관 제공

이석주의 ‘일상’(1991, oil on canvas, 181.8x227.3cm). 모란미술관 제공

모란미술관의 ‘이석주 전’ 전시장 전경 일부. 모란미술관 제공

모란미술관의 ‘이석주 전’ 전시장 전경 일부. 모란미술관 제공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 작가는 다채로운 조형적 변주의 ‘사유적 공간’ 연작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낡은 책이나 명화 또는 낡은 책과 명화의 조합을 비롯해 말과 꽃, 시계, 의자 등 다양한 소재가 등장한다. 시간·생명의 유한성을 품은 이들 소재들은 독립적으로, 서로 조합돼 인간의 실존문제와 존재의 유한성을 자각시킨다. 나아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아름다움, 영원성의 의미 등을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과 사물을 향한 작가의 깊고도 넒은 사유의 예술적 공간인 ‘사유적 공간’에 관람객들을 슬며시 초대하는 것이다.

임성훈 평론가는 전시글에서 “이석주 회화에서 보이는 극사실주의는 하이퍼리얼리즘의 극사실주의가 아니라 현실의 실재성에 대한 회화적 진실성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실존적 극사실주의”라며 “작가의 섬세하고 미묘한 조형적 탐구 과정에서 발현된 작품과 작품 속 사물들에 숨겨진 수많은 이야기를 감상자들이 나름대로 읽어내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11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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