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또 하나의 약속’…또 하나의 ‘1000만 영화’ 되나

2014.02.07 19:33

영화 ‘변호인’에 이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또 하나의 영화가 지난 6일 개봉했다. 바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의 얘기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다.

■ “아빠가 원한 꼭 풀어줄게, 약속할게.”

강원 속초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한상구(박철민)는 부인, 딸, 아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는 평범한 아버지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 때문에 상구의 딸 윤미(박희정)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진성전자에 취직한다. 상구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회사”에 취직한 윤미를 자랑스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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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입사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윤미는 백혈병에 걸린다. 없는 형편에 병원비가 걱정인 상구의 가족에게 진성전자의 인사 담당자 이 실장이 찾아와 윤미의 퇴사를 권고한다. 이 실장은 동료들의 성의를 모은 것이라며 1000만원을 건네며 한 마디 한다. “산재(산업 재해)는 신청하지 마세요.”

윤미가 사직서에 지장을 찍으면 4000만원을 더 주겠다던 이 실장은 그 이후로 연락이 닿지 않는다. 답답한 상구는 이 실장의 음성사서함에 “연락 안 받으면 산재를 신청하겠다”고 남기고, 이 실장은 윤미가 입원한 병원으로 찾아와 500만원을 건넨다. 이를 본 윤미는 받지 말라고 소리치고, 상구는 500만원 수표를 이 실장에게 집어 던진다.

부족한 병원비에 윤미의 건강은 점점 더 악화되고, 결국 윤미는 쓰러진다. 상구의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던 윤미는 뒷좌석에서 눈을 뜬 채로 숨을 거둔다. 상구는 윤미에게 말한다. “아빠가 원한 꼭 풀어줄게, 약속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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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나의 ‘변호인’

이 영화는 ‘변호인’과 닮은 점이 많다. 앞서 언급했듯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극영화라는 점 외에 큰 권력과 싸우는 약한 이들의 이야기,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는 전개 등 ‘변호인’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곳곳에 있다. ‘변호인’의 명대사 “바위는 죽은 것이지만, 계란은 살아서 바위를 넘는다”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도 있다.

노무사 유난주(김규리)는 도와 달라는 상구의 부탁을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며 거절한다. 얼마 후 난주는 윤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장례를 치른 뒤 바닷가에서 상구와 술을 마신다.

멍게를 안주로 먹던 상구는 난주에게 ‘멍게가 동물인지, 식물인지 아냐’고 묻는다. 난주가 ‘동물?’이라며 애매한 대답을 하자 상구는 “멍게는요. 태어날 때는 뇌가 있는데, 바다 속에서 자리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뇌를 소화시켜 버린대요”라고 말한다. 이 말은 싸움을 포기하려던 난주를 자극하게 되고, 난주는 상구와 함께 피해자들을 찾기 시작한다.

언론과 관련된 장면도 유사하다. 상구는 윤미가 일하던 반도체 공장에 기자들과 함께 역학조사를 갔다 온 다음날, 신문을 확인한다. 신문들이 ‘직원 건강에 아무 문제없다’는 진성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보도한 것을 본 상구는 “신문에 나면 다 진짜인 줄 알았는데…”라며 좌절한다. 이는 ‘변호인’에서 기자 윤택(이성민)이 우석(송강호)에게 “지금 가장 믿을게 못 되는 게 신문이고 방송”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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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인’이 불이면… ‘또 하나의 약속’은 물

배우들의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이 많고, 카메라 움직임과 편집 등이 거친 ‘변호인’을 불에 비유하면, ‘또 하나의 약속’은 물에 비유할 수 있다.

‘변호인’의 우석이 법정에서 “국가는 국민”이라며 울분을 토한다면, ‘또 하나의 약속’의 상구는 “제가 못 배워서”라며 울분을 삼킨다. 상구가 삼킨 울분은 스크린을 통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된다. 이 같은 절제의 미학을 극대화한 부분은 피해자 가족들이 진성전자 본사를 찾아가 항의하는 장면이다.

회사에 진입하려는 이들은 정문 앞에서 경호원, 회사 직원들에 의해 저지당한다. 몸부림치는 이들의 절규는 슬프고 잔잔한 음악에 묻힌다. 절제된 이 영화의 감동과 여운은 천천히, 그리고 깊게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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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들의 성장 이야기

상구는 ‘대한민국 1등 기업’에 취직한 윤미에게 소주 한 잔을 건넨다. ‘아이한테 무슨 술이냐’는 아내 정임(윤유선)의 만류에 상구는 이제 다 컸다며 술을 준다. 잔을 받은 윤미는 거침없이 ‘원샷’으로 넘긴다. 이 장면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윤미의 성장영화가 아니다. 윤미는 이미 완숙한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성장하는 이들은 윤미를 제외한 윤미의 가족이다. 윤미로부터 “아빠는 아무 것도 몰라”라는 핀잔을 들은 상구는 윤미가 죽은 뒤, 진성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공부한다.

초반에 진성의 합의금을 받고 그만하자던 아내 정임도 성장한다. “남편이 서울에 데모하러 다닌다더라”, “빨갱이 물이 들었다더라” 등 동네사람들의 얘기에 힘들어 하던 정임은 상구에게 그만하자고 설득한다. 그러던 정임은 윤미가 숨지기 전 남긴 다이어리를 보고 태도를 바꾼다. 윤미가 다이어리에 남긴 마지막 말은 “다시 태어나면 엄마 아빠의 어머니로 태어나고 싶다”였다. 영화는 윤미의 가족 뿐 아니라 ‘또 하나의 가족’인 피해자 가족들도 같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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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우리 회사가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요!”

법정 영화 속 인물들은 흔히 선 아니면 악인 흑백 구도로 나뉜다. 법정 영화이기도 한 ‘또 하나의 약속’은 김교익(이경영)이라는 인물을 추가해 영화에 깊이를 더했다.

상구는 법정에서 증언을 해줄 직원을 찾기 위해 반도체 공장 입구에서 출근하는 직원들을 붙잡는다. 그러나 직원들은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공장으로 향한다. 잠시 후 진성전자의 버스 3대가 삼각형 모양으로 상구를 둘러싼다. 커다란 ‘3개의 성’에 가로막힌 상구는 주저앉는다. 그때 교익이 그에게 다가온다.

반도체 공장에서 엔지니어 팀장을 맡고 있는 교익은 진성전자에 청춘을 바친 인물로, 진성에 대한 애정이 깊다. 교익도 병을 얻게 되지만, 그는 회사를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회사 덕분에 자녀를 다 키울 수 있었다며 고마워한다. 그런 교익이 상구에게 손을 내민 건 왜일까.

이에 대한 답은 영화 후반부에 드러난다. 교익의 팀에서 같이 일한 직원은 법정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증언한다. 방청석에서 듣고 있던 진성전자의 이 실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법정을 나간다. 증인석에 앉은 직원은 울먹이며 소리친다. “저 우리 회사가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여기 나온 거예요!” 이 장면은 전반적으로 차분하게 진행되던 ‘또 하나의 약속’에서 가장 힘 있는 장면 중 하나다.

법정에서 증언한 직원과 그를 소개한 교익은 자신들이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회사가 더 잘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그들의 ‘진심어린 소리(眞聲)’는 진성을 더 나은 회사로 바꿀 수 있을까. 영화 속 이야기는 현실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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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만 관객 돌파?

사상 최초로 연간 관객 수 2억명을 돌파한 지난해는 한국 영화계에 역사적인 해였다. 그 해의 마지막을 장식한 영화는 ‘변호인’이었다. ‘변호인’이 누적 관객 수 1100만명을 돌파한 것을 두고 어떤 이들은 ‘기적’이라고 했다.

관객들에게 ‘변호인’을 본 이유를 설문조사해보니 “실제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 봤다”는 답이 가장 많았다. 그렇다면 실제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한 ‘또 하나의 약속’도 많은 관객의 흥미를 끄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이를 반영하듯 이 영화는 7일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서 예매율 3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 네이버(누리꾼 평점 9.33점)·다음(9.7) 등 주요 포털에서도 누리꾼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그러나 ‘변호인’처럼 1000만 관객 돌파를 섣불리 예상할 수는 없다. 우선 관객이 통쾌함을 느낄 수 있는 ‘변호인’의 불같은 요소가 적다. 또 이 영화에는 송강호의 신들린 연기가 없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개봉관 수도 ‘변호인’과 큰 차이가 난다. 출발선부터 다른 셈이다. 이 때문에 개봉 전부터 높은 평점·예매율에 비해 상영관이 적다는 이유로 ‘외압 논란’이 일고 있다.

[리뷰]영화 ‘또 하나의 약속’…또 하나의 ‘1000만 영화’ 되나

진성은 영화 내내 자본 권력의 힘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합의금을 거부하고 산재를 신청하겠다는 상구에게 이 실장은 웃으며 말한다. “대한민국 국민을 먹여 살리는 게 누구냐,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냐”.

이 영화의 각본·연출을 맡은 김태윤 감독이 처음 영화를 기획할 당시 누가 돈을 투자하겠냐고 주위에서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7000여명의 사람들이 낸 후원금과 개인투자자들의 힘으로 영화는 기적적으로 완성됐다. 과연 1000만 관객 돌파라는 ‘또 하나의 기적’은 일어날 수 있을까.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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