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레디 플레이어 원’

2018.03.26 21:34 입력 2018.03.26 21:35 수정

갈증은 풀리지만 배는 안 부른…스필버그표 ‘가상현실’

2045년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의 한 빈민촌. 사람들은 가상현실(VR) 헤드셋 기기를 끼고 있다. 누구는 총을 쏘는, 누구는 테니스를 하는 시늉을 한다. 사람들은 가상현실 게임 ‘오아시스’에 접속해 있다. 오아시스는 게임머니만 모으면 뭐든지 살 수 있고, 누구든지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웨이드 와츠가 고물 트럭을 개조한 자신의 아지트에서 가상현실 게임 ‘오아시스’에 접속한 채 움직이고 있다.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웨이드 와츠가 고물 트럭을 개조한 자신의 아지트에서 가상현실 게임 ‘오아시스’에 접속한 채 움직이고 있다.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2027년생으로 만 18살인 웨이드 와츠(타이 셰리든)는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이모와 함께 빈민촌 내 컨테이너 타워에 산다. 침대도 없어 세탁기 위에서 잠을 자고, 이따금 이모의 남자친구에게 폭력을 당하는 와츠의 유일한 낙은 오아시스에 접속하는 일이다. 와츠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아시스에서 하루를 보낸다.

오아시스를 만든 괴짜 천재 제임스 할리데이(마크 라이런스)는 어느 날 유언을 남긴다. 3개의 미션을 통과해 ‘이스터 에그’를 차지한 사람에게 오아시스의 소유권과 막대한 돈을 상속한다는 내용이다. 와츠는 물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기업 ‘IOI’를 비롯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은 이스터 에그를 얻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지만 5년간 하나의 미션도 통과하지 못한다. 할리데이를 동경하고, 그의 모든 행적을 외우던 와츠는 미션을 통과할 실마리를 찾는다.

<A.I.>(2001년)와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년)로 ‘공상과학 영화 장인’에 오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최초 가상현실 블록버스터’라는 장르(?)의 영화를 들고 왔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시궁창’인 현실과 ‘낙원’인 오아시스를 오가며 진행된다. 오아시스는 단순히 즐거움만을 주는 공간이 아니다. 더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 현실에서 빚을 낸 돈으로 아이템을 구매하는 사람 등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이 아닌 오아시스에 산다. 현실은 그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공간일 뿐이다. IOI의 최고경영자(CEO) 놀란 소렌토(벤 멘델슨)는 수천명의 젊은이들을 기계처럼 부리며 오아시스의 돈을 끌어모은다. 이름 대신 6자리 숫자로 규정되는 이들은 ‘식서(Sixer)’라고 불린다. 2차 산업혁명 당시가 기계화된 인간이었다면 이들은 매크로 프로그램화된 인간인 셈이다.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가상통화 채굴 기계를 연상시킨다.

현실과 게임이 뒤섞인 세계를 그린 영화는 2018년 현재를 되짚어보자고 말한다. 아이템 구매를 위해 범죄를 저지르거나 대출을 마다하지 않다 빚더미에 허덕이는 사람들, 게임에 매몰돼 간난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건 등. 현재도 스크린 속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게이머들의 유토피아인 오아시스를 창시한 할리데이는 “옛날 그저 게임일 때가 좋았다”고 말한다.

영화에는 관객이 소소하게 즐길 요소가 많이 담겨 있다. 1980~1990년대 영화·게임 등 대중문화에서 차용한 많은 장면과 아이콘이 등장한다. <빽 투 더 퓨처>의 자동차 드로리안, <쥬라기 공원>의 T-렉스, <아키라>의 바이크, <스피드레이서>의 마하5 등. 뿐만 아니라 영화 <샤이닝>의 쌍둥이 소녀와 콩·조커·간달프·건담·처키·프레디 같은 영화 인물, 듀크 누켐·춘리·블랑카·류 등 수많은 게임 캐릭터들이 카메오로 출연한다(게임 ‘오버워치’의 트레이서 같은 최신 캐릭터도 등장한다). 그들과 함께 한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구현하기 위해 저작권 비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스필버그 감독의 명성으로 대부분 해결됐다고 한다. 스필버그 감독이 선사하는 선물인 셈이다.

할리데이가 실제로 숨졌는지 명확히 보여주진 않는데, 이는 창작물이 존재하고 창작자가 기억되는 한 삶은 지속된다는 스필버그 감독의 말로 들린다.

다만 예상 가능한 이야기 전개, 가상세계보다 현실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다소 식상하게 다가온다. 사이드 메뉴가 아무리 맛있어도, 메인 메뉴가 어린이용이면 허전할 수밖에 없다. 오는 2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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