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 연출 60년, 제자들이 헌정한 ‘가을소나타’

2014.07.23 21:07
문학수 선임기자

손숙·한명구 등 제자들 출연 연극 ‘가을소나타’ 내달 개막

“선생님 커피 드셔도 괜찮아요?” 연출가 임영웅(78)이 커피를 주문하자 일흔 살의 배우 손숙이 손을 내저었다. 지난해 힘들게 이겨낸 노환에 대한 걱정이 여전하다. 몸에 좋은 걸 드시라는 뜻이다. 하지만 노구의 커피 애호가는 볼멘소리로 ‘퉁박’을 놨다. “의사야 당연히 마시지 말라고 하지. 그렇다고 내가 안 먹나?”

지난 22일 서울 홍대앞의 산울림 소극장 1층에 자리한 카페. 연출인생 60년을 맞은 스승 임영웅에게 연극 한 편을 헌정하는 이들이 모였다. 손숙을 비롯해 배우 한명구·서은경·이연정, 연극 프로듀서 박명성도 자리를 함께했다. 8월22일부터 9월6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가을 소나타>의 주역들이다. 이날 ‘임영웅 사단’은 <가을 소나타>를 연습하기 위해 처음 모였다.

연극 연출가 임영웅의 연출인생 60년 기념작으로 연극 ‘가을소나타’ 헌정하는 배우들이 임영웅 연출가와 함께 서울 서교동 산울림 소극장 연습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배우 한명구, 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 배우 서은경, 손숙, 임 연출가, 배우 이연정. | 강윤중 기자

연극 연출가 임영웅의 연출인생 60년 기념작으로 연극 ‘가을소나타’ 헌정하는 배우들이 임영웅 연출가와 함께 서울 서교동 산울림 소극장 연습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배우 한명구, 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 배우 서은경, 손숙, 임 연출가, 배우 이연정. | 강윤중 기자

“손숙씨가 아직 학생이었을 때 고려대 연극반에서 <삼각모자>라는 연극을 하는 걸 봤어요. 그때 처음 봤죠. 사실 별로 눈에 띄는 배우는 아니었어요. 육체파도 아니었고(웃음). 그런데 이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배우였어요. 감성적인 배우는 많아도 이지적인 스타일의 배우는 드문 시절이었거든. 그래서 1968년에 캐스팅했어요. 돌아가신 김기팔씨가 극본을 쓴 <그 여자에게 옷을 입혀라>라는 연극이었죠. ‘그 여자’가 바로 손숙이었지.”

옆자리에서 듣고 있던 손숙이 부연했다. “제가 스물네 살 때였는데, 선생님은 그때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30대 연출가였죠. 정말 호랑이였어요. 배우들이 엄청 무서워했죠. 물론 나한텐 잘해주셨지만(웃음). 나는 평생의 연극 스승으로 두 분을 손꼽는데 이해랑, 임영웅 선생님이죠. 임 선생님한테 배운 것은 분석적 연기입니다. 임 선생님은 대본을 아주 세밀하게 쪼개서 연기를 지도하죠. 왼쪽으로 세 걸음 가서 시선은 오른쪽으로, 이 대사를 할 때는 정면을 5초간 바라볼 것 등등, 배우 입장에서는 아주 힘들었죠.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배우로 성장했어요.”

연출가 임영웅을 평할 때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 ‘자로 잰 듯한 연출’이라는 말이다. 배우 손숙의 회고는 결국 그 얘기다. 빙그레 웃으며 듣던 노구의 연출가는 “다 맞는 말이긴 한데 한 가지가 잘못됐다”며 “내가 호랑이라는 건 정말로 나를 모르는 얘기”라고 했다.

“나만큼 배우를 존중하는 연출가도 드물어요. 나는 배우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연습할 땐 당연히 혹독하게 해야죠. 그건 작품을 위해서였던 것이고. 옛날 명동 국립극장 연습실에는 변변한 의자조차 없었는데 난 항상 일어나서 연출을 했어요. 의자에는 배우들이 앉아야 하니까요. 가끔 누가 떡이라도 사오면 배부른 척하면서 안 먹었다고요. 먹을 게 귀한 시절이었잖아요. 그런데 철없는 조연출, 스태프들이 그걸 자기들이 다 먹는 거야. 하루는 집합을 시켜서 호되게 야단을 쳤죠. 그건 배우들이 먹을 거다, 이 놈들아!”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배우 한명구(54)는 1993년 <우리, 테오와 빈센트 반 고호>라는 연극으로 임영웅과 사제의 연을 맺었다. 이후 임영웅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고도를 기다리며>에 여러 차례 출연했다. 특이한 것은 그가 연출가 오태석이 이끄는 극단 목화 출신이라는 점. 말하자면 연출 스타일이 극과 극으로 다른 두 연출가와 모두 작업한 드문 배우다. “오태석 선생님은 희곡의 문학성보다 연극적 놀이성을 중시하는 연출가죠. 하지만 임 선생님은 완전히 다릅니다. 작품에 담긴 주제의식, 인물의 내면을 디테일하게 형상화하는 연기를 중시하죠. 임 선생님과 처음 연습할 때는 많이 낯설고 당황했어요. 하지만 저는 배우로서 정말 행운아죠. 우리 시대의 탁월한 거장 두 분과 오랫동안 연극을 했으니까요.”

배우 서은경에 대한 평을 주문하자, 연출가 임영웅은 “배우로서의 감각이 좋고 센스가 있어요. 연출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금방 알아듣거든, 아주 똑똑하지”라고 말했다. 듣고 있던 서은경의 얼굴이 홍당무가 됐다. 그는 연출가 임영웅과의 첫 작업이었던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를 처음 연습하던 날의 기억을 털어놨다. “선생님은 겉치레 연기를 싫어하시죠. 무대에서 멋지게 보이려고 했던 제 자의식을 산산이 무너뜨리셨어요.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것은 선생님이 들고 계시던 대본이었어요. 형광펜 자국과 메모로 빼곡한 대본. 그 성실한 열정이야말로 가장 큰 교훈이었죠.”

임영웅 연출인생 60주년 기념공연으로 막을 올리는 <가을 소나타>는 스웨덴 출신의 거장 잉그마르 베르히만(1918~2007)의 동명 영화를 연극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엄마와 딸의 애증을 통해 현대인들의 고립감, 화해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연극이다. 프로듀서 박명성은 “임 선생과 여러 배우들이 와인을 마시는 자리에서 이 작품을 60주년 기념작으로 정했다”면서 “우리 시대의 연극 원로에 대한 후배와 후학들의 오마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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