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가야 해. 이가 아픈데도 치과를 못 가서 한 달을 끙끙 앓았어.” 법륜 스님은 지난 3일 서울 서초동 평화재단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강의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뭘 또 인터뷰하자고 하느냐. 신문이라면 겁난다”며 쉰 목소리로 농담 섞인 푸념을 풀어냈다. “목은 늘 그래요. 쉬어가지고. 좀 시간 있으면 잠 좀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등 몇몇 명망가의 멘토로 널리 알려졌던 법륜 스님은 이제 전 국민이 조언을 구하는 멘토가 되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대중을 상대로 한 즉문즉설 강연 스케줄이 꽉 차 있고, 주말에도 각종 행사와 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하느라 쉴 틈이 없다. “그렇게 쉴 틈이 없는데 언제 정치할 여가가 있겠어요?(웃음)”
- 다방면의 사회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현실 문제에 처방전을 내리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고, 스승인 도문 스님의 스승이신 백용성 스님의 사회참여적 성향의 영향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스님의 평소 철학을 보면 그냥 좋아서 한다고 하실 수도 있을 듯합니다. 이런 활동을 하시는 이유와 철학은 한마디로 무엇입니까.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잘 깨우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무지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 주는 상담도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구조적 모순을 개선하는 일도 포함돼 있습니다. 개인이 책임져야 할 영역을 수행이라고 한다면, 사회적·제도적인 보완 영역은 불교 용어로 말하면 정토사회, 요즘 사회적 용어로 말하면 복지사회가 되는 것이죠.”
- 자신의 활동이 모든 걸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토대를 쌓을 뿐이라고도 하셨는데, 그래도 어떤 지향점은 있을 것 같습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는 어쨌든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의 기초를 마련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통일해야 민족적 비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2012년에는 평화통일의 기초를 마련하고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지도자나 집단이 한국정치를 좀 더 미래 희망적으로 이끌었으면 합니다. 그런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국민들의 각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역사의식과 요구가 있어야 그런 정치집단이 형성되고 그런 정치인들이 나오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토대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저는 특정한 정치집단에 대한 지원보다는 국민의 각성이 내가 할 일이라는 얘깁니다. 누구든지 거기 부응하는 사람들을 각성된 국민들이 지지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큰 틀에서 정치인들이 방향을 잡아나간다면, 우리 국민들이야 나라가 잘되면 누가 하면 어떻겠어요.”
- 그런데 최근에는 새로운 정당을 만드신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승적이 없으니 언제든 환속해 정치로 나올 수 있다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뉴욕타임스에도 나왔듯 나쁘게 말하는 이들은 ‘종교의 탈을 쓴 정치선동가’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한국사회를 짊어질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평가를 옆에서 한 것인데, 사람들이 직접 (정당을)만든다고 한 거죠. 만들 사람이 있으면 만들면 되지, 제가 정치인은 아니잖아요. 저는 조언자죠.(웃음) 그렇게 얘기 안 하면 좋지만 하는 걸 어떡해요. 또 사람들은 생각이 다르니까 그런 얘기를 할 수도 있죠. 언론의 자유가 있으니까요.”
- 이를테면 대선 국면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출마를 권유하실 생각은 없습니까.
“그건 안철수 선생에게 물어봐야지, 왜 자꾸 저한테 물어봐요.(웃음)”
-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스님이 정작 가장 크게 하고 계시는 고민은 무엇입니까.
“북한 주민들이 춘궁기에 굶어죽는다는 상황이 시시각각으로 전해 들어오고 있는데, 북·미와 남북 관계가 워낙 안 좋아 북한에 인도적 지원하라고 말도 꺼낼 수 없는 형편이에요. 전 같으면 이럴 때 단식을 하든 무슨 얘기라도 할 수 있는데 말도 꺼낼 수 없는 상황이니까 속이 좀 쓰리죠. 애꿎은 주민들이 죽어간다는 것이 문제예요. 분쟁이 생기면 주민이 눈에 안 보이거든요. 뉴욕타임스 인터뷰 핵심이 그거예요. 그 사람들이 제가 뭐라고 실어줬겠어요. 이런 시기에 이런 사람 말도 한번 들어보라는 거죠.”
- 스님의 강연과 책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스님 얘기를 명쾌하다고 하는 것 같습니까.
“보통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할 때 눈을 감은 채 촛불을 밝히려고 합니다. 저는 눈 감고 있는 사람에게 눈 뜨고 보면 훤히 잘 보인다고 얘기하는 거니까요. 저는 제가 그들에게 뭘 줬다는 생각은 안 합니다. 제가 줬으면 다 얻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근데 왜 어떤 사람은 얻고 어떤 사람은 얻지 못하나요. 그건 자기 몫입니다.”
- 굉장히 어린 시절부터 불교에 심취해서 한결같이 오셨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는 비결이 있습니까.
“사람이 어떻게 마음이 한결같나요. 왔다갔다 하면서 쭉 가는 거죠. 선을 안 넘어갔으니까 쭉 간 것처럼 보이는 거지만, 하루에도 마음이 어떻게 쭉 갑니까. 중노릇 못해먹겠다고 집어치우는 것까지 안 간 것뿐이죠.”
- 최근 정토회의 발전상을 보면 오히려 조계종보다 더 영향력 있고 신뢰받는 집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종파주의를 뛰어넘은 원효 대사를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어쩌면 이 정토회 자체가 하나의 배타적 종파가 될 위험성은 없습니까.
“종파에 구애받지 않는 집단이 커지면 좋죠. 잘 안 커져서 문제지.(웃음) 우리는 모두 이름도 얼굴도 생색도 내지 말고, 땅 속의 지렁이처럼 세상을 위해 일하자는 것이 기본 취지입니다. 우리야말로 진짜 이름없는 민초들의 모임이라고 할까요. 사실은 제가 하는 게 아니라 이름없는 민초들이 하는 겁니다. 그래도 누구 하나를 얼굴 내야 하니까 법륜 스님 얼굴을 밖에 내 놓는 것이죠. 다만 우리는 작지만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니까, 영향력이 있다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제가 제 이익만을 위해 한다면 재산이 수조원이어도 취재 안 올 것 아닙니까. 김밥장수가 다만 몇 백만원이라도 보시하면 기사가 되듯이 말이에요. 우리가 세력이 있는 건 아녜요. 스님도 저하고 유수 스님 둘뿐이에요.”
- 앞으로도 계속 이목이 집중될 것 같은데, 정말 대선에서 어떤 역할을 하실 생각은 없습니까.
“이렇게 매일 전국을 다니면서, 국민들의 애환과 아픔을 들어주고 소통하고 희망을 주는 것도 다 큰 틀에서 나라가 좀 더 발전하기 위해서 하는 일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