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스님 “한국 짊어질 새 정치세력 나설 토대 위해 국민 각성 있어야”

2012.05.04 22:05 입력 2012.05.05 00:11 수정

“치과 가야 해. 이가 아픈데도 치과를 못 가서 한 달을 끙끙 앓았어.” 법륜 스님은 지난 3일 서울 서초동 평화재단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강의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뭘 또 인터뷰하자고 하느냐. 신문이라면 겁난다”며 쉰 목소리로 농담 섞인 푸념을 풀어냈다. “목은 늘 그래요. 쉬어가지고. 좀 시간 있으면 잠 좀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등 몇몇 명망가의 멘토로 널리 알려졌던 법륜 스님은 이제 전 국민이 조언을 구하는 멘토가 되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대중을 상대로 한 즉문즉설 강연 스케줄이 꽉 차 있고, 주말에도 각종 행사와 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하느라 쉴 틈이 없다. “그렇게 쉴 틈이 없는데 언제 정치할 여가가 있겠어요?(웃음)”

- 다방면의 사회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현실 문제에 처방전을 내리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고, 스승인 도문 스님의 스승이신 백용성 스님의 사회참여적 성향의 영향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스님의 평소 철학을 보면 그냥 좋아서 한다고 하실 수도 있을 듯합니다. 이런 활동을 하시는 이유와 철학은 한마디로 무엇입니까.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잘 깨우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무지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 주는 상담도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구조적 모순을 개선하는 일도 포함돼 있습니다. 개인이 책임져야 할 영역을 수행이라고 한다면, 사회적·제도적인 보완 영역은 불교 용어로 말하면 정토사회, 요즘 사회적 용어로 말하면 복지사회가 되는 것이죠.”

2003년 9월 법륜 스님이 필리핀 민다나오 섬 가가후만 지역을 답사하다가 자재를 실은 차가 산을 올라가지 못하자 현지 주민들과 함께 밧줄로 당기고 있다.

2003년 9월 법륜 스님이 필리핀 민다나오 섬 가가후만 지역을 답사하다가 자재를 실은 차가 산을 올라가지 못하자 현지 주민들과 함께 밧줄로 당기고 있다.

- 자신의 활동이 모든 걸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토대를 쌓을 뿐이라고도 하셨는데, 그래도 어떤 지향점은 있을 것 같습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는 어쨌든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의 기초를 마련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통일해야 민족적 비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2012년에는 평화통일의 기초를 마련하고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지도자나 집단이 한국정치를 좀 더 미래 희망적으로 이끌었으면 합니다. 그런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국민들의 각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역사의식과 요구가 있어야 그런 정치집단이 형성되고 그런 정치인들이 나오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토대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저는 특정한 정치집단에 대한 지원보다는 국민의 각성이 내가 할 일이라는 얘깁니다. 누구든지 거기 부응하는 사람들을 각성된 국민들이 지지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큰 틀에서 정치인들이 방향을 잡아나간다면, 우리 국민들이야 나라가 잘되면 누가 하면 어떻겠어요.”

- 그런데 최근에는 새로운 정당을 만드신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승적이 없으니 언제든 환속해 정치로 나올 수 있다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뉴욕타임스에도 나왔듯 나쁘게 말하는 이들은 ‘종교의 탈을 쓴 정치선동가’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한국사회를 짊어질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평가를 옆에서 한 것인데, 사람들이 직접 (정당을)만든다고 한 거죠. 만들 사람이 있으면 만들면 되지, 제가 정치인은 아니잖아요. 저는 조언자죠.(웃음) 그렇게 얘기 안 하면 좋지만 하는 걸 어떡해요. 또 사람들은 생각이 다르니까 그런 얘기를 할 수도 있죠. 언론의 자유가 있으니까요.”

- 이를테면 대선 국면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출마를 권유하실 생각은 없습니까.

“그건 안철수 선생에게 물어봐야지, 왜 자꾸 저한테 물어봐요.(웃음)”

JTS가 세운 인도 비하르주 둥게스와리 지이바카 병원에서 1995년 3월 법륜 스님이 진료받는 어린이를 도와주고 있다.

JTS가 세운 인도 비하르주 둥게스와리 지이바카 병원에서 1995년 3월 법륜 스님이 진료받는 어린이를 도와주고 있다.

-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스님이 정작 가장 크게 하고 계시는 고민은 무엇입니까.

“북한 주민들이 춘궁기에 굶어죽는다는 상황이 시시각각으로 전해 들어오고 있는데, 북·미와 남북 관계가 워낙 안 좋아 북한에 인도적 지원하라고 말도 꺼낼 수 없는 형편이에요. 전 같으면 이럴 때 단식을 하든 무슨 얘기라도 할 수 있는데 말도 꺼낼 수 없는 상황이니까 속이 좀 쓰리죠. 애꿎은 주민들이 죽어간다는 것이 문제예요. 분쟁이 생기면 주민이 눈에 안 보이거든요. 뉴욕타임스 인터뷰 핵심이 그거예요. 그 사람들이 제가 뭐라고 실어줬겠어요. 이런 시기에 이런 사람 말도 한번 들어보라는 거죠.”

- 스님의 강연과 책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스님 얘기를 명쾌하다고 하는 것 같습니까.

“보통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할 때 눈을 감은 채 촛불을 밝히려고 합니다. 저는 눈 감고 있는 사람에게 눈 뜨고 보면 훤히 잘 보인다고 얘기하는 거니까요. 저는 제가 그들에게 뭘 줬다는 생각은 안 합니다. 제가 줬으면 다 얻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근데 왜 어떤 사람은 얻고 어떤 사람은 얻지 못하나요. 그건 자기 몫입니다.”

- 굉장히 어린 시절부터 불교에 심취해서 한결같이 오셨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는 비결이 있습니까.

“사람이 어떻게 마음이 한결같나요. 왔다갔다 하면서 쭉 가는 거죠. 선을 안 넘어갔으니까 쭉 간 것처럼 보이는 거지만, 하루에도 마음이 어떻게 쭉 갑니까. 중노릇 못해먹겠다고 집어치우는 것까지 안 간 것뿐이죠.”

1994년 3월 JTS가 인도 비하르주 둥게스와리에서 불가촉천민을 위한 학교 수자타아카데미를 짓고 있다. | 평화재단 제공

1994년 3월 JTS가 인도 비하르주 둥게스와리에서 불가촉천민을 위한 학교 수자타아카데미를 짓고 있다. | 평화재단 제공

- 최근 정토회의 발전상을 보면 오히려 조계종보다 더 영향력 있고 신뢰받는 집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종파주의를 뛰어넘은 원효 대사를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어쩌면 이 정토회 자체가 하나의 배타적 종파가 될 위험성은 없습니까.

“종파에 구애받지 않는 집단이 커지면 좋죠. 잘 안 커져서 문제지.(웃음) 우리는 모두 이름도 얼굴도 생색도 내지 말고, 땅 속의 지렁이처럼 세상을 위해 일하자는 것이 기본 취지입니다. 우리야말로 진짜 이름없는 민초들의 모임이라고 할까요. 사실은 제가 하는 게 아니라 이름없는 민초들이 하는 겁니다. 그래도 누구 하나를 얼굴 내야 하니까 법륜 스님 얼굴을 밖에 내 놓는 것이죠. 다만 우리는 작지만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니까, 영향력이 있다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제가 제 이익만을 위해 한다면 재산이 수조원이어도 취재 안 올 것 아닙니까. 김밥장수가 다만 몇 백만원이라도 보시하면 기사가 되듯이 말이에요. 우리가 세력이 있는 건 아녜요. 스님도 저하고 유수 스님 둘뿐이에요.”

- 앞으로도 계속 이목이 집중될 것 같은데, 정말 대선에서 어떤 역할을 하실 생각은 없습니까.

“이렇게 매일 전국을 다니면서, 국민들의 애환과 아픔을 들어주고 소통하고 희망을 주는 것도 다 큰 틀에서 나라가 좀 더 발전하기 위해서 하는 일 아니겠어요?”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