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알 수 있는 조선 왕은 6명

2017.01.23 22:12 입력 2017.01.24 14:18 수정

‘왕 초상화’ 어진 48점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훼손…현존 20여점 대다수는 얼굴 알 수 없는 상태

원종 어진, 좌우 반쪽씩만 남아 고궁박물관 2년 전 복원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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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대에 걸쳐 500여년을 유지한 조선시대 왕 가운데 어진(왕의 초상화)을 통해 그 얼굴 모습을 알 수 있는 임금은 몇 명이나 될까?

조선왕조 계보에서 실제 왕의 자리에 앉아 일을 한 왕은 27명이다. 흔히 외우고 있는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이다. 이 가운데 전해져 오는 어진으로 얼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왕은 5명에 불과하다.

조선을 세운 태조를 비롯해 영조, 철종, 그리고 사진까지 남아 있는 고종과 순종이다. 타계 후 왕으로 추존된 경우에도 얼굴을 알 수 있는 어진이 전해지는 것은 원종(1580~1619·인조의 생부이자 선조의 다섯 번째 서자)뿐이다. 현존하는 어진이 이렇게 적은 것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지 부산에서 당시 전해지던 40여점의 어진 대부분이 불에 타 훼손됐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어진의 보존처리와 모사복원 작업을 하고 있는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이 최근 원종 어진의 보존처리, 모사도 제작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보고서 ‘왕실문화유산 보존연구Ⅱ’를 출간했다. 2012~2013년에 걸쳐 보존처리를 마친 원종 어진은 2015년 말에 모사도 제작이 완료됐고, 고궁박물관은 당시 원종을 포함한 주요 어진을 선보인 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b>원종 어진 복원</b> 한국전쟁 때 피란지 부산에서 다른 어진들과 함께 불에 탄 원종 어진 1872년본(왼쪽·보존처리 후 모습)과 1935년본(가운데), 그리고 훼손된 두 어진을 바탕으로 모사복원한 원종 어진(오른쪽).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이미지 크게 보기

원종 어진 복원 한국전쟁 때 피란지 부산에서 다른 어진들과 함께 불에 탄 원종 어진 1872년본(왼쪽·보존처리 후 모습)과 1935년본(가운데), 그리고 훼손된 두 어진을 바탕으로 모사복원한 원종 어진(오른쪽).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원종 어진은 고종 때인 1872년 기존 어진의 색이 변하는 등 훼손되자 원본을 베껴 그린 ‘1872년본’, 1935~1936년 사이 한 점을 더 모사한 ‘1935년본’이 전해왔다.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1872년본은 얼굴 대부분을 포함해 화면 왼쪽 절반 정도가 불에 탔다. 1935년본은 다행히 오른쪽 부분이 불에 탔으나 얼굴을 포함한 왼쪽 화폭의 절반 이상이 살아남았다. 고궁박물관과 전문가들은 이 두 어진을 바탕으로 복식과 문양 등의 철저한 고증에 디지털 기술을 활용, 온전한 모습의 모사본을 탄생시켰다.

저명한 초상화 연구자이자 어진 모사복원 작업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조선미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23일 “현재 얼굴을 알 수 있는 조선시대 왕(원종 포함)의 초상화는 태조, 원종, 영조, 철종, 고종, 순종 등 여섯 점에 불과하다”며 “엄정한 절차로 제작된 어진 대부분이 사라진 것은 너무 안타깝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이번 보고서에서 “어진 관련 기록을 종합하면, 1935년 3월 당시 신선원전(창덕궁의 어진 봉안 건물)에 봉안된 어진은 태조(전주 경기전 어진과는 별도임)와 세조, 원종, 숙종, 영조, 정조, 순조, 익종 등 모두 46점이었다”며 “이후 세조, 원종 어진이 더 모사돼 모두 48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어진들은 한국전쟁으로 부산 동광동 부산국악원 내 건물로 피란 가 임시 보관 중이던 1954년 12월 인근 판자촌에 화재가 발생한 탓에 다른 왕실 유물들과 함께 대부분 불에 타 훼손됐다. 조 교수는 “왕의 얼굴을 보고 그렸든, 원본을 바탕으로 한 모사이든 어진은 국가 차원에서 예법에 따라 엄정하게 작업이 이뤄졌고, 미술사 등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며 “불에 타 일부만 남은 것을 포함하더라도 현존 어진은 20점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일반에 많이 알려진 세종, 고려 태조 왕건, 광개토대왕 등은 정부의 표준영정 사업의 결과물로 현대 창작품이다.

불에 훼손된 어진 조각들을 소장한 고궁박물관은 2006년부터 어진을 보존처리하고 있다. 조 교수는 “철종 등 일부 어진의 경우 모사도 제작을 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근거가 필요하다”며 “문화재 복원은 철저하고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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