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슈퍼카의 전설 ‘맥라렌 F1’

2012.01.29 15:31 입력 2012.01.29 15:36 수정

시간이 지날수록 명차로 기억되는 차들이 있다. 최초이거나 최고의 타이틀을 가진 차들이 보통 그렇다. 같은 맥락에서 손색이 없는 모델이 있다. 바로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빠른 차로 통하는 ‘맥라렌 F1’(McLaren F1)이다.

제로백 3.2초, 최고시속 370㎞를 넘나드는 무시무시한 성능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전설의 모델이다. 여타 F1 머신처럼 스피드에만 두각을 보였다면 지금껏 회자되지 않을 것이다. 도로형 스포츠카인 맥라렌 F1은 엄청난 스피드를 자랑하면서도 운전하는 재미와 실용성을 두루 갖췄다. 맥라렌 F1의 시대를 앞선 기술력과 다양한 도전, 그리고 그에 걸맞는 업적은 슈퍼카 계보에서 여전히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맥라렌 F1의 탄생은 영국의 F1(포뮬러 원) 레이싱 팀이었던 맥라렌에서 시작됐다. 뉴질랜드 출신의 레이서 겸 엔지니어였던 브루스 맥라렌(Bruce McLaren·1958년 뉴질랜드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하며 당시 최연소 F1 우승자로 이름을 알림)은 1963년 자신의 이름을 따 맥라렌팀을 결성한다. 맥라렌팀은 1970년 리더인 브루스 맥라렌의 사고사 이후에도 F1 레이싱에서 탄탄한 입지를 보였으나 훗날 경영악화와 부진한 경주 성적으로 몇 차례 기업에 인수되는 등 부침을 겪게 된다.

맥라렌 F1 정면 – 맥라렌 F1은 버터플라이 도어가 적용된 대표적인 모델이다.

맥라렌 F1 정면 – 맥라렌 F1은 버터플라이 도어가 적용된 대표적인 모델이다.

F1 경험으로 탄생한 맥라렌 F1 = 하지만 F1에서 얻은 귀중한 경험은 맥라렌의 첫 번째 도로용 자동차이자 슈퍼카의 기준을 제시하게 될 자동차의 탄생으로 이어지는데, 바로 맥라렌 F1이다. 경주용 차의 전설적인 설계자로 잘 알려진 고든 머레이(Gordon Murray)가 제작을 주도했다. 맥라렌팀과 고든 머레이가 슈퍼카를 구매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 공항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 이같은 현실에 불만을 털어놓다 의기투합해 슈퍼카 제작에 나섰다는 비화도 전해지고 있다.

브루스 맥라렌이 창단한 맥라렌레이싱팀의 로고 <출처: (cc) 718 Bot at Wikipedia>

브루스 맥라렌이 창단한 맥라렌레이싱팀의 로고 <출처: (cc) 718 Bot at Wikipedia>

1990년 3월 개발에 들어간 이들은 1992년 모나코 그랑프리 전야제에서 맥라렌 F1을 세상에 공개했다. 혼다의 엔진을 공급받아 온 맥라렌은 개발 단계에서 엔진공급 거부 의사를 밝힌 혼다 대신 BMW와 엔진공급에 합의했다. 특별 제작된 엔진은 V12 DOHC 엔진에 배기량 6,064㏄, 627마력의 힘을 뿜어냈다. 제로백(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걸리는 시간)은 3.2초, 11.5초만에 400m를 돌파했다.

맥라렌팀을 창설한 브루스 맥라렌. 맥라렌팀의 레이서이자 감독으로 활약한 그는 1970년 굿우드 써키트에서 사고로 사망한다. <출처: (cc) -Majestic- at Wikipedia>

맥라렌팀을 창설한 브루스 맥라렌. 맥라렌팀의 레이서이자 감독으로 활약한 그는 1970년 굿우드 써키트에서 사고로 사망한다. <출처: (cc) -Majestic- at Wikipedia>

맥라렌 F1은 F1의 강자답게 스피드로 승부했다. 무엇보다 차체 경량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공기역학적인 디자인과 소재도 비용에 구애없이 활용됐다. 먼저 양산차 최초로 차체와 섀시에 탄소섬유와 알루미늄을 적용해 차체무게가 1,149kg 밖에 나가지 않는다. 참고로 국산중형차의 무게는 1,400~1,500kg 정도이다. 114㎝의 낮은 차체와 리어 윙, 공기 흡입 팬은 시속 370㎞에서도 공기흐름을 이용해 차체를 누르는 효과를 얻었으며 결과적으로 타이어 접지력을 향상시켰다. 이 모든 과정은 디자이너인 피터 스티븐스(Peter Stevens)의 풍동실험 결과 분석을 통해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산물이기도 했다.

맥라렌 F1 전측면 - 맥라렌 F1은 F1경주에서 얻은 기술과 경험으로 탄생했다.

맥라렌 F1 전측면 - 맥라렌 F1은 F1경주에서 얻은 기술과 경험으로 탄생했다.

이러한 과정은 압도적인 스피드로 이어졌다. 1994년 시속 372㎞를 찍으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량으로 등극했다. 이후 코닉세그(Koenigsegg) CCR이나 부가티 베이론(Bugatti Veyron), SSC 얼티밋 에어로(Ultimate Aero) TT 등이 스피드 경쟁에서 우위를 보였지만 자연흡기 방식의 맥라렌 F1과 비교할 대상은 아니라는 분석도 만만찮다.

맥라렌 F1 측후면.

맥라렌 F1 측후면.

문제는 이러한 첨단 소재와 디자인에는 고가의 제작비용이 들어가야 했다. 탄소섬유는 장시간 고온에서 형태를 만들어야 했고 커다란 섀시와 도어의 작은 부품에는 100여개의 크고 작은 부품이 들어갔다. 서스펜션 연결 장치 등 금속 부품들 역시 그랑프리 기준에 맞춰 제작됐다. 또 냉각성능을 높히기 위해 열반사율이 높은 금을 엔진을 포함한 엔진룸에 도금해 덮었다.

맥라렌 F1 엔진룸 - 맥라렌 F1은 엔진과 엔진룸 일부를 도금했다. <출처: (cc) Sfoskett at Wikipedia>

맥라렌 F1 엔진룸 - 맥라렌 F1은 엔진과 엔진룸 일부를 도금했다. <출처: (cc) Sfoskett at Wikipedia>

특히 1대를 제작하는데 평균 4개월 동안 700여명이 투입돼야 했다. 이러한 고가의 제작 비용은 맥라렌팀과 고든 머레이가 맥라렌 F1을 광고효과가 뛰어난 F1 레이싱에 적극 투입시킨 배경이 되기도 했다. 페라리가 1990년 맥라렌 F1을 잡기 위해 F50이라는 승부수를 띄웠지만 성능에서 한 수 양보해야 했듯 이러한 차별화된 제작 여건은 당시 맥라렌 F1의 위상을 슈퍼카의 지존으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맥라렌 F1의 실내 모습. 중앙에 운전석이 있고 약간 뒤 좌우측에 좌석 2개 있다. <출처: (cc) James086 at Wikipedia>

맥라렌 F1의 실내 모습. 중앙에 운전석이 있고 약간 뒤 좌우측에 좌석 2개 있다. <출처: (cc) James086 at Wikipedia>

스피드에 실용성·안락감까지 고려 = 고든 머레이는 맥라렌 F1에 스피드 외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도로주행의 필수 요소인 실용성과 안정감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맥라렌 F1을 제작하기 앞서 그가 가져왔던 오래된 자동차 설계 철학이기도 했다. 먼저 독특한 실내환경을 꼽을 수 있다. 운전석이 중앙에 위치하고 약간 뒤로 두 개의 좌석이 마련된 3인승인 형태로 일반 경주용 차와 달랐다. 이는 무게중심을 쉽게 잡을 수 있고 시야 확보를 통한 운전자의 주행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고든 머레이가 전투기 좌석을 머릿속에 그리고 이를 차량 설계에 반영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중앙에 운전석이 위치한 구조는 도로상에서 중앙선과 차선을 넘나들 때 운전의 어려움을 주고 좌석 배치 역시 운전자와 동승자 모두 불편함을 줘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운전석 좌우로 위치한 콘솔박스는 스타트와 에어컨 버튼 등이 깔끔하게 정리됐고, 계기판의 정보는 한 눈에 들어왔다. 회전속도계(Tacho meter·타코미터)는 7,500rpm에서 붉은 색으로 변했고 최고 속도는 400㎞/h까지 표시됐다.

특히 운전의 재미와 실용성에도 초점을 맞췄다. 단단한 스프링과 충격을 흡수하는 서브 프레임 등은 운전자의 안락한 승차감과 주행의 안정성을 높였다. 또 일반 스포츠카에는 볼 수 없는 디자인으로, 짐칸을 좌우측에 만들어 실용성을 키웠다. 루프 쪽에 붙은 사이드 미러와 버터플라이 도어는 맥라렌 F1의 차별화에 한 몫한 아이템이기도 하다. 맥라렌 F1의 고객이 공장을 직접 방문해 운전석과 핸들, 페달 등을 자신의 체형에 맞춰 제작해야 한다는 점도 이례적이다.

이렇듯 높은 제작 단가로 맥라렌 F1은 세간의 높은 관심에도 포로토타입 7대를 포함해 7년여간 106대만 제작·판매됐다. 맥라렌 F1의 애초 목표는 7년간 350대 이상을 판매하는 것이었다. 맥라렌 F1 이후 F1 LM, F1 GT, F1 GTR 등의 후속 모델이 출시됐다. 맥라렌 팀은 1995년 르망 24시간 그랑프리 경주에 참가해 우승(맥라렌 F1 GTR)하는 등 170회 이상의 레이싱 우승 경력과 12번의 드라이버 우승, 8회의 팀 우승 타이틀을 자랑하며 지금도 F1의 강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디지털뉴스팀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맥라렌 F1 제원

엔진 형식 : 6.1ℓ BMW S70/2 V12 / 배기량 : 6064㏄ / 최고속도 : 372㎞/h 이상 / 차체형식 : 2도어 3인승 쿠페 / 트랜스미션 : 6단 수동
최대출력 : 626hp·7500rpm / 최대토크 : 62.9㎏·m·4000rpm / 전장 X 폭 X 전고 : 4287㎜ X 1820㎜ X 1140㎜ / 휠베이스 : 2718㎜ / 총 중량 : 1140㎏
제로백(0-100㎞/h) : 3.20초 / 디자이너 : 고든 머레이·피터 스티븐스 / 생산년도 : 1992~1998년 / 생산국가 : 영국 / 생산대수 : 10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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