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단독지배’로 포장했던 회사, 자본잠식 피하려 ‘공동지배’로

2018.11.14 22:04 입력 2018.11.15 09:18 수정

증선위 ‘삼바, 2015년 고의 분식’ 판단 왜?

바이오젠 합작계약서에 “결정할 때 반드시 동의 얻을 것”

박용진·참여연대 “즉시 삼성물산에 대한 감리 착수해야”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논란은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였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14일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에 고의적 분식이 있었다고 결론을 낸 것은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삼성바이오 혼자 지배하는 회사가 아니라 미국 합작사인 바이오젠사와 공동 지배하는 회사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리기까지 삼성바이오의 내부 문건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증선위의 ‘고의 분식’ 결론으로 삼성바이오의 재무제표는 다시 써야 하며, 이에 따라 제일모직과 합병한 삼성물산의 재무제표도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물산 감리도 빨리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공동 지배’

삼성바이오는 2014년 갑자기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미국 바이오젠사가 50% 주식을 살 수 있는 콜옵션(주식매수청구권)이 있다는 공시를 했다. 콜옵션은 주식을 일정 가격이 되면 언제든 살 수 있는 권리다. 그러면서 2015년 말에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위를 그동안 혼자 지배하는 ‘종속회사’에서 다른 회사와 공동으로 지배하는 ‘관계회사’로 변경했다. 그동안 삼성바이오는 당시 유럽 판매 승인 등으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가 올라갔고, 바이오젠사가 콜옵션을 행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회계기준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회계기준을 바꾸면 회사 가치 평가를 ‘취득가액’에서 ‘시장가액’으로 할 수 있다.

증선위는 그러나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처음부터 바이오젠사와 공동으로 지배하는 회사였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는 바이오젠사와 맺은 합작계약서였다. 합작계약서에는 에피스의 지적자산 매각, 자본감소 등 중요한 재무정책 결정을 할 때 반드시 바이오젠의 동의를 얻도록 했다. 김용범 증선위원장은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공동지배 상태였다”고 말했다. 즉, 삼성바이오가 2012년부터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회사로 평가해 시장가액으로 평가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증선위는 삼성바이오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위를 자의적으로 판단했고, 2015년 이미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공동 지배’하는 회사임을 알고도 과거(2012~2014년) 재무제표를 의도적으로 수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계속 취득원가로 인식하고 바이오젠사의 콜옵션을 반영하면 자본잠식 상태에 빠질 것을 우려해 ‘비정상적인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고 판단했다. 회계기준을 바꾸면서 약 4조5000억원 규모의 대규모 평가 차익을 인식한 것도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증선위는 2012~2013년부터 제대로 회계기준을 반영하지 못한 점은 과실로 판단했고, 2014년의 경우 콜옵션의 중요성을 인지했다는 점에서 중과실로 결정했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단독지배’로 포장했던 회사, 자본잠식 피하려 ‘공동지배’로

■ 내부 문건 결정적 역할

증선위의 이날 결론에는 삼성의 내부 문건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삼성의 내부 문건(사진)은 삼성바이오 재경팀이 2015년 6월부터 11월 사이에 작성한 문서로, 금감원 추가 감리 과정에서 제보로 공개됐다. 삼성바이오 재경팀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에 보고한 e메일도 있다.

이 문서에는 삼성이 ‘의도’를 가지고 2015년 말 회계기준을 변경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2015년 11월10일 문건에는 ‘바이오젠사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 확대로 1조8000억원의 부채 및 평가손실 반영으로 로직스는 자본잠식 예상’이라고 적혀 있다. 이어 자본잠식 상태를 막기 위해 3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그중 하나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회계기준을 바꾸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 위원장은 “내부 문건은 매우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면서 “회사(삼성바이오)도 이 문건의 진위 여부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영대 교수는 “내부 문건이 없었으면 증선위에서 고의 분식이라는 결론이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단독지배’로 포장했던 회사, 자본잠식 피하려 ‘공동지배’로

■ 삼성물산 감리 ‘촉각’

앞으로 쟁점은 삼성물산의 감리이다. 통합 삼성물산은 삼성바이오의 가치를 고의 분식으로 부풀려 제일모직과 합병했기 때문에 감리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논평을 내고 “삼성의 내부 문서에 삼성물산의 합병 회계 처리에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난 이상 증권선물위원회는 금감원에 삼성물산에 대한 감리에 즉시 착수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도 “통합 삼성물산은 ‘합병 시 (제일)모직 주가의 적정성 확보’를 위해 삼성바이오 가치를 목표 수준(6조9000억원)에 맞췄다”면서 “이는 (구)삼성물산을 헐값에 사들였다는 흔적(염가매수차익)을 적절하게 감추는 수치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삼성물산에 대한 조속한 감리 착수를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삼성바이오의 수정 재무제표에 따라서 삼성물산의 재무제표가 다소 변경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내용을 분석해 삼성물산에 대한 감리 필요성 여부 등을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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