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서 폐지됐다가 양극화 심해지자 ‘출총제’ 논쟁

2012.02.01 21:59 입력 2012.02.01 23:41 수정

1999년 8월15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광복 54주년 기념식.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경축사를 시작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과 전 국민의 금 모으기 운동 덕에 벼랑으로 치닫던 국가 경제위기는 한고비 넘긴 상황이었다. 재계는 촉각을 곤두세웠다. 대통령이 재벌을 강도 높게 비판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재계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김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최대 문제점인 재벌의 구조개혁 없이 경제개혁을 완성시킬 수 없다. 재벌집단이 아닌 개별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는 이후 경영투명성 제고, 상호지급보증 해소, 재무구조 개선, 업종 전문화, 경영진 책임 강화 등 재벌개혁의 5대 원칙을 제시하고, IMF 관리체제하에서 폐지된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를 부활시켰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8월31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30대 대기업 총수들과 간담회를 열고 공생발전을 당부했다. 대기업 총수들이 간담회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8월31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30대 대기업 총수들과 간담회를 열고 공생발전을 당부했다. 대기업 총수들이 간담회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사회양극화로 논란의 중심에

출총제는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회사 자금으로 다른 회사의 주식을 매입, 보유할 수 있는 총액을 제한하는 제도다. 재벌이 기존 회사의 자금으로 또 다른 회사를 손쉽게 설립하거나 다른 회사를 인수함으로써 기존 업체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키고 문어발식으로 기업을 확장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취지이다.

외환위기를 불러온 책임이 재벌의 선단식 경영과 무분별한 투자 때문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터라 당시 재계는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재계는 경제 여건의 어려움을 이유로 출총제 폐지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이명박 정부 들어 폐지됐다.

출총제는 1986년 전두환 정부 때 처음 도입됐다. 그러나 출총제는 출자총액을 형식적으로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규제의 타당성이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고, 부침이 극심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다시 전면에 등장했지만 노무현 정부 때 적용 범위를 좁히고 출자한도는 늘리는 등 제도 자체가 크게 완화됐다.

최근 출총제가 화두가 된 것은 대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돼 사회양극화 등의 폐해가 발생, 대책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특히 일부 대기업이 빵이나 순대, 통닭 같은 업종까지 진출해 ‘골목상권’을 무너뜨리고 영세상인의 밥줄을 끊고 있어 이들을 견제할 강력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야당을 중심으로 출총제 부활과 함께 기업에 물리는 법인세를 올리고, 기업이 자회사로부터 받은 배당금 등에 세금을 물리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 출총제 완화로 대기업 몸집 커져

현 정권서 폐지됐다가 양극화 심해지자 ‘출총제’ 논쟁

출총제는 실제로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막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총제의 완화나 폐지가 대기업의 즉각적인 몸집 불리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경제개혁연구소의 분석 결과 출총제가 시행됐던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출총제 적용 기업집단 상위 20대 그룹의 연평균 실질 자산증가율은 5.46%였다. 그러나 출총제가 완화되기 시작한 2007~2010년 증가율은 8.67%로 50% 이상 증가했다.

출총제는 기업집단의 계열사 증감 추이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출총제 적용집단은 2001~2005년 평균 계열사 수가 26.7개에서 27.7개로 변화가 거의 없었으나 2006~2011년에는 54.3개로 늘었다. 6년간 1.6배 증가한 것이다.

2001년 계열사가 64개였던 SK는 2006년 계열사가 56개로 줄었으나 이후 2008년 64개로 증가한 뒤 지난해에는 87개로 늘었다. 삼성도 2006년 59개에서 2011년 79개로 늘었고, 현대자동차도 같은 기간 40개에서 62개로 증가했다.

출총제가 대기업들의 투자 감소로 이어져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찮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가 어려워 대기업의 투자가 절실한 시점에서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도 “출총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정책”이라며 “대기업들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 출자총액제한제도

회사 자금으로 다른 회사의 주식을 사들여 보유할 수 있는 규모를 순자산총액의 일정 비율로 제한하는 제도이다. 비율이 커지면 기업으로선 계열사 확장이 손쉬워지는 대신, 재무구조가 악화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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