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고층건물과 방음벽, 야생조류에겐 ‘죽음의 벽’

2019.08.01 21:38 입력 2019.08.01 21:47 수정

‘인공구조물과 조류충돌…’연구 보고서 입수·분석

유리창에 부딪쳐 희생된 노랑턱멧새.  하나고 새살림프로젝트 제공

유리창에 부딪쳐 희생된 노랑턱멧새. 하나고 새살림프로젝트 제공

건축물과 방음벽 층고 높아지며
주변지역에 일조장애 발생
조류의 유리창 충돌 위험성 늘어
소형 산새류가 최대의 희생양

건축물 설계·환경평가 단계부터
조류 이동성 고려해 충돌 막고
유리창에 ‘5 X 10 규칙’ 적용 필요

아파트와 고층 건물이 늘어난 지역일수록 조류의 인공구조물 충돌이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내에서 건물이나 전선 등과 부딪친 뒤 구조된 새들의 3분의 2 이상은 박새 같은 소형 산새로 조사됐다. 조류의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기 위해 건축물 설계와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부터 조류의 비행경로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1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인공구조물과의 조류 충돌 현황과 충돌 저감 및 환경영향평가 강화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2014~2017년 전국의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 11곳에서 전선·건물과 충돌한 뒤 구조된 야생조류는 모두 8613마리로 집계됐다. 이 중 몸무게가 약 300g 이하인 소형 산새류가 전체의 67.7%였다. 소형 산새류는 주로 노랑턱멧새, 박새, 참새, 직박구리 등 국내의 산과 들에서 쉽게 보이는 텃새들이다. 몸무게가 1000g 이상인 대형 조류는 구조 조류 중 약 12.2%를 차지했다.

이후승 부연구위원은 “최근 국립생태원의 보고에 따르면 연간 1000만마리 이상이 충돌하는 현황을 고려할 때 사고 후 약 0.012%만 구조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에서 이용한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 자료는 구조된 조류에 국한되는 한계가 있지만, 전국적인 조류 충돌 자료여서 충돌사고가 발생한 조류의 생태적 특성 등의 현황 분석에는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분석 결과 전선·건물과 충돌해 구조된 야생조류 수는 2009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왔다. 지역별로는 서울 및 수도권, 충남, 부산 및 경남, 제주 일대의 증가율이 높았다. 강원과 경북은 상대적으로 구조되는 조류의 수가 적다. 계절별로 보면 여름철에는 참새, 박새, 까치 등 텃새와 백로, 왜가리 등 여름철새의 충돌 비율이 높았고, 겨울철에는 큰기러기, 두루미 등 겨울철새 충돌 비율이 높았다. 도요·물떼새 등 나그네새의 경우 이동 시기인 봄철과 가을철의 충돌 빈도가 높았다.

늘어난 고층건물과 방음벽, 야생조류에겐 ‘죽음의 벽’

연구진은 조류 충돌 사고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이유로 최근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고층 공동주택과 방음벽에 주목했다. 연구진은 공동주택이 늘어난 지역에서 조류 충돌이 증가했으며 신규 준공된 건물 수가 증가할수록 건물과의 충돌 사고에서 구조된 조류의 수도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이 부연구위원은 “도로 소음 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음벽과 건축물의 층고가 높아지면서 주변 지역에 미치는 일조장애가 조류 충돌 사고 위험성을 높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공동주택 단지나 고속도로에 설치된 투명 방음벽은 환경부의 조류 충돌 조사에서도 사고를 일으키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 바 있다.

텃새가 주를 이루는 소형 산새류가 희생된 비율이 높다는 것은 최근 ‘시민과학’을 통해 밝혀진 모니터링 결과와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자연관찰 웹사이트인 네이처링에서 지난해부터 307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인공구조물에 희생된 조류 현황을 수집·분석한 결과를 봐도 텃새가 희생된 비율이 84%로 가장 높았다. 시민들이 1년여 동안 모은 충돌 사례는 조류 95종, 3763개체였다. 텃새 다음으로는 여름철새 12%, 겨울철새 3% 순으로 피해가 컸다. 이는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 11종 118개체도 포함된 수치다.

연구진은 조류 충돌 사고를 줄이기 위해 개발사업을 실시하기 전 건축물 설계와 환경영향평가 단계부터 조류의 이동을 고려할 것을 제안했다. 이 부연구위원은 “건축물을 설계할 때 건물의 벽면을 20~40도가량 기울이면 유리면에 바닥이 반사되기 때문에 조류 충돌을 저감할 수 있다”며 “빛의 투과율과 반사율을 조절할 수 있는 유리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환경영향평가 때 현황조사 항목에 조류의 비행 방향을 기록하고, 이를 토대로 서식·휴식·취식지의 이동성을 분석해 조류 충돌의 영향 예측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개선할 것”도 제안했다.

또 조류가 유리창, 방음벽 등을 인식하도록 하는 ‘5×10 규칙’을 이용한 무늬를 유리창에 넣는 저감방안도 있다. 5×10 규칙이란 조류가 일반적으로 5㎝보다 낮고, 10㎝보다 폭이 좁은 공간은 통과하려 하지 않는다는 습성을 말한다. 기존에 일부 건물들에 부착돼 있는 천적인 맹금류 스티커의 효과는 매우 낮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이 부연구위원은 “새들이 통과하는 것을 포기하게 하기 위해 5×10㎝ 간격으로 무늬를 부착하면 조류 충돌 예방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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