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3. 민족사상운동 앞장 조소앙 일가

2005.03.14 17:27

안중근·이회영 등이 독립운동의 방법으로 무력투쟁을 택했다면 소앙 조용은(1887~1958)은 이론과 사상으로 민족운동을 선도했다. 사상적 선각자였던 그는 임시정부의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기초하며 임시정부의 이론틀을 정립했다. 또 삼균주의를 주창하며 독립국가의 비전을 제시했다. 이런 소앙을 더욱 빛나게 한 것은 가문의 독립운동이다. 조소앙 가문에서는 그의 여섯 형제를 비롯, 11명의 독립유공자가 배출됐다. 이는 안중근 가문과 함께 최대 기록이다.

[다시쓰는 독립운동列傳] Ⅳ-3. 민족사상운동 앞장 조소앙 일가

조소앙의 형 조용하(1862~1939)는 대한제국 시절 독일주재 참사관, 죽산군수 등 관료의 길을 걷다 합병 직후 하와이로 망명,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하와이에서 대조선독립단 단장 등을 역임한 그는 한인협회 결성을 주도했으며 임시정부 재정지원 활동을 펼쳤다. 독일주재 시절 각종 서적을 구해 아우 소앙에게 보내는 등 삼균주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동생 조용주(1889~1937)는 1913년 상해로 망명, 소앙과 함께 아세아민족반일대동단을 결성했다. 1915년 국내로 들어와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을 조직, 조소앙의 유럽 외교 활동과 임시정부 재정지원 활동을 펼쳤으며 1937년 하얼빈에서 서거했다. 조용한(1894~1933?)은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려다 일경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으며 여동생 조경순(1898~1948)도 중국으로 건너가 한국독립당·한국혁명여성동맹에서 활동했다.

조소앙의 막내 동생인 조시원(1904~82)은 1920년 상해로 망명했다. ‘중국한인청년동맹’, ‘화랑청년회’ 등에서 활동했으며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선전위원, 한국독립당 조직부장, 한국광복군 법무처장 등을 역임했다.

[다시쓰는 독립운동列傳] Ⅳ-3. 민족사상운동 앞장 조소앙 일가

◇‘삼균주의’ 독립국가의 꿈=조소앙이 창안한 삼균주의란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핵심으로 한다. 즉 고르게 정치에 참여하고 고르게 잘 살고, 고르게 교육을 받아 개인뿐 아니라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에 균등한 생활을 이루자는 사상이다. 조소앙이 해외독립운동 과정에서 확립시킨 삼균주의는 1930년대 들어 한국독립당의 당 이념으로 채택된 데 이어 한국국민당·민족혁명당 등 좌우익 정당들의 정강·정책에 주요 이념이 되었다. 특히 1941년에는 임시정부의 ‘대한민국 건국강령’에 삼균주의가 반영됨으로써 독립 이후 새국가 건설의 사상으로 주목받았다.

해방 이후 귀국한 조소앙은 단정 수립에 반대하며 남북협상에 참가하는 등 분단 국가의 통일을 위해 힘을 쏟았다. 그러나 남북협상이 실패로 끝나자 사회당을 결성, 삼균주의의 정책적 실현을 시도했으나 6·25전쟁 중 납북됐다.

이후 남한에서 조소앙과 삼균주의는 곧 잊혀졌다. 반공을 국시로 내건 이승만 정권과 이를 계승한 박정희 정권에서 ‘균등’을 내세운 삼균주의는 ‘공산주의의 사촌’쯤으로 치부되었다. 대한민국의 법통성을 찾는다며 임정이 떠받들어지는 상황에서도 임정의 정신인 삼균주의는 애써 배제됐다. 민족 독립과 통일에 헌신한 조소앙 역시 ‘북으로 갔다’는 이유만으로 지하에 갇혀있었다.

[다시쓰는 독립운동列傳] Ⅳ-3. 민족사상운동 앞장 조소앙 일가

〈조운찬기자 sid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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