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촌동양문화박물관 권영두 관장

2010.03.11 18:10 입력 2010.08.06 18:05 수정
글·사진 윤성노 기자

‘30년 수집벽’이 모은 유·불교 유물 1만여점

개인 박물관엔 ‘외골수 수집’으로 평생을 보낸 한 사람의 인생이 전시돼 있다. 그곳의 전시품들은 우리 역사와 문화이기도 하다. 전국에 있는 개인 박물관을 찾아 수집가의 인생과 우리 역사·문화를 돌아본다.

[그의 작은 박물관](1) 북촌동양문화박물관 권영두 관장

조선 태종 때. 대사헌 고불 맹사성(1360~1438)은 역모 사건을 조사하며 부마(왕의 사위)를 잡아들인다. 태종은 허락 없이 사위를 국문한 맹사성에게 참형을 내린다. 성석린·권근·하륜 등 최측근 신하들이 구명운동에 나선다. 결국 맹사성은 곤장을 맞고 목숨을 유지해 유배를 간다. 유배에서 돌아온 맹사성은 세종 때 정승 자리에 올라 황희 정승과 함께 청백리, 명재상이 된다. 구명운동을 한 양촌 권근(1352~1409)은 맹사성의 스승이다.

600년쯤 뒤 2006년, 권근의 18대손이 박물관을 지을 터를 물색하러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을 찾았다. 마침 매물로 나온 300평 남짓한 터. 임금인 세종도 밤마다 올려다보고 그 집의 불이 꺼져야 비로소 침전에 들었다는 스승 맹사성의 집터였다. 권영두 관장(51·사진)은 18대를 이어온 연(緣)에 달라는 대로 다 주고 ‘맹사성 집터’를 사들였다. 권 관장은 2년여 동안 터를 고르고 기왓장 쌓아 지난해 북촌동양문화박물관을 열었다.

권 관장은 수집가가 될 팔자를 타고났다. 충북 음성의 고향집엔 그의 수집벽을 충족시킬 물건이 지천이었다. 어머니 손때가 묻은 혼수품과 수예품, 놋쇠 밥그릇과 옻상, 독과 항아리, 짚신과 떡살, 외양간 소가 맸던 워낭 등 세간살이 모두가 수집 대상이 됐다. 그런 그가 기특하다며 집안 어른들도 집안의 옛 물건들을 모아줬다. 권 관장이 30여년 모은 3000여점의 민속품 가운데 절반이 그렇게 모은 것이다.

선친의 권유로 대학생 시절 손을 댄 건설업에서 제법 돈을 모았다. 술·담배도 화투도 골프도 모르는 그는 그 돈을 들고 ‘땡 퇴근’해 인사동과 장안평 등 고미술품 시장을 돌아다녔다. 수집벽이 절정이던 때 그의 별명이 ‘아파트 두 채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유물 구입에 하루 5억원을 쓰기도 했다. 명성황후의 친필 서간, 조선시대 철화백자, 중국 청나라 때의 전황석 인장, 간다라 불두 등을 모았다. 그가 수집한 유물들은 불교와 유교, 민속 관련 유물이다. 동양문화의 원형질인 유·불·선교의 유물을 모으고 싶었지만 선교 유물이 없어 대신 민속 유물을 모았다. 집과 회사 창고에 가재도구나 건설자재 대신 들어찬 소장품은 1만여점.

권 관장이 건설업을 접고 박물관을 세운 이유는 단순하다. 건설업은 잘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지만 제대로 된 사립박물관은 몇 없었기 때문이다. 권 관장은 박물관을 종합 문화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문화 체험교실을 열었다. 박물관 앞 5층 건물에 문화체험관과 사랑방을 만드는 공사도 진행 중이다. 박물관 앞마당도 서당 겸 한옥공연장으로 만들 예정이다.

■ 북촌동양문화박물관 가는 길

서울 삼청동 한옥마을 북촌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정독도서관 쪽 길은 15~20분 거리. 30분 정도 잡고 한옥마을을 둘러보며 가면 좋다.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에서 02번 마을버스를 타고 ‘빌라앞·대사관’ 정류장에 내려 걸어가도 된다. 제1전시실엔 간다라 불두를 비롯, 세계 불교 미술품들이 전시된다. 유교관인 제2전시관에는 명성황후의 친필 서간, 안동 권씨 선조들의 서책·유묵 등 한국과 중국의 선비문화 유물·유품이 있다. 야외전시장에는 삼국과 고려시대 기와들과 권영두 관장이 직접 제작한 용(龍)그림벽, 수복강녕 굴뚝, 추원·경앙·승선 세 개의 중문이 있다. 2층 고불헌은 문화체험과 휴식 공간이다. 차를 마시며 서울의 주산인 북악산(북현무)과 낙산, 인왕산, 남산(남주작)을 건너다보며 쉴 수 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35-91 (02)486-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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