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달라’ ‘밀가루 주겠다’ 남북 정권 다투는 동안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2012.09.19 03:00 입력 2012.11.05 17:33 수정
특별취재팀 전병역·손제민·송윤경·심혜리 기자

[북한 인권,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항아리에 물을 채워 고개를 박는다. 인간은 4분 이상 산소공급이 차단되면 치명적 뇌손상을 입기 시작한다. 북한 황해도의 김모 할머니는 올봄, 그 시간을 모질게 버텨 죽음에 이르렀다.

“이 늙다리야, 나가 죽으라.” 퍼지다 못해 멀건 물 같은 옥수수죽으로 연명하던 김씨 자녀들은 이런 말을 자주 입에 올렸다고 했다. “사실 할머니도 아닌 나이였는데. 57세인가 그래요. 일 못하는 노인은 천대받으니까 자살 많이 해요.” 김씨를 가까이서 봐 왔던 북한 주민이 말했다.

“유서는 없었나요.” 잘못된 질문이었다. 북한에서 자살은 당에 대한 반역이고, 가족들이 처벌받을 수 있다. “물에 가꾸로 매달려 죽으면 노망해서 한 행동으로 (얘기하면) 되니까….” 노인들은 ‘빨리 가는 약’이라며 양귀비꽃으로 만든 ‘약’을 구해놓는다고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밤이면 복면을 쓴 강도가 됐다. 자전거나 옥수수 같은 식량을 빼앗으려고 인명을 해쳤다. 생존을 위협하는 식량위기 앞에서 ‘인간의 존엄’은 가녀린 촛불 같았다.

‘극한의 인권’이었다.

경향신문은 일본의 독립 저널리스트 집단인 ‘아시아프레스’의 협조를 받아 8월17일부터 약 2주간 중국을 방문한 북한 주민들을 인권을 주제로 인터뷰했다. 그 결과 올해 초부터 기근설이 떠돌던 황해도의 식량난과 인권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체제 자체의 생존과 독재를 “일반주민”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북한의 ‘민낯’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위에서 조사나오면 보통 이렇습니다. ‘이번에 여기에선 몇 명 굶어죽었나’ 그렇게 물어보면 ‘아 일없습니다. 한 명도 굶어죽지 않았습니다’ ‘그럼 저 사람들은 뭔가’ ‘병으로 죽은 겁니다’ 내가 살아야 하니까 이렇게 모른 척하는 겁니다.”(황해남도 노동당 중견간부)

북한 황해도 주민들은 취재진에게 굶주림과, 영양실조 상태에서 각종 질병으로 올해 3월부터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황해도의 중견간부에게선 “올 4월까지의 사망률이 평소의 30배가 됐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통계적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심각한 식량난과 그로 인한 고통이 다름아닌 곡창지대인 황해도를 덮치고 있다는 역설은 부인할 수 없어 보였다.

곡창지대 주민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것은 체제의 성격 때문이다. 밭을 일궈 숲이 사라진 산은 지난해 내린 큰물(홍수)을 모두 뱉어내 작물이 쓰러졌다. 그럼에도 새 지도자를 맞은 북한당국이 군량미와 평양 시민을 위한 수도미를 무리하게 걷어갔고 주민들이 직격타를 맞았다. 북 정권은 “생산지 사람의 식량을 강탈하지 않으면 체제유지를 위한 핵심지지층인 평양시민 등에게 배급을 할 수가 없는 상태”(아시아프레스 이시마루 지로 대표)였다.

“맨손 빠는 것보다는 나아서” 국가가 줘야 하는 비료마저 농장원들이 직접 사서 키운 작물을 수탈당한 셈이다. 게다가 이제 장마당에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다른 지역의 주민과 달리 곡창지대 주민들은 농장에 얽매여 장사를 할 수 없었다. 이들은 그나마 겨울철 바닷가에 나가 해산물을 채취해 장마당에 팔아 푼돈을 벌었지만, 올해는 “ ‘애도’ 기간이라고” 바닷가에 나가는 것을 막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우린 죽는 사람이 머저리라고 해요. 어떡하든 나는 살아야겠다, 그 생각이지.”

단둥의 한 찻집에서 구부정하게 앉은 한 북한 남성이 테이블 바닥을 보며 말했다. 창밖엔 다가오는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내렸다. 또다른 북한주민은 “벼를 심어놓은 지 얼마 안 돼 비가 와 다 짓뭉개놨다.”고 말했다. 대북 소식통들은 “올해 수해는 지난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것 같지는 않다”고 전했다.

그 무렵, 남한에서는 대북 수해복구 지원 논의가 일었다. 통일부는 지난 3일 “조건 없이 수해복구 지원을 하겠다”고 북에 제의했다.

그러나 불발이었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수해복구 지원물자로 쌀과 수해복구 명목의 시멘트, 자재 등을 요구했지만 통일부는 “밀가루 1만t, 라면 300만개”를 역제안했고 북은 ‘그런 거라면 받지 않겠다’고 답신했다. 체제의 권위와 체면이 우선이었다. 이들에게 죽어가는 이들의 생존권은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이런 완고한 북한 체제와 북한 정권에 도움이 될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인도적 지원도 중단하는 보수의 정치적 확신이 만난 결과, 북한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틈바구니 어디에도 최소한의 인간답게 살 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 특별취재팀 전병역·손제민(정치부), 송윤경(사회부), 심혜리(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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