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한탕 승부 논술

2013.01.08 22:12 입력 2013.01.09 00:05 수정

“교수인 내가 봐도 논제 어려워… 솔직히 10명 중 8명은 당락 애매”

대학별 논술고사가 치러지던 지난해 11월 중하순 입시현장에서는 “한탕으로 승부를 가르는 게 논술”이라는 소리가 많이 들렸다. “학교에서의 체계적인 교육은 없고, 테크닉과 족집게식 사교육만 판치고 있다”는 공감이 너나없이 컸던 것이다.

논술전형을 준비해온 학생과 학부모들은 “최소한 학교에서는 가르쳐야 할 것 아니냐” “논술학원비가 너무 비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선 교사들은 “학교에서 논술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는 구조”라고 했고, 논술 채점 교수들도 “이렇게 출제하고 채점하는 게 맞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독서에 바탕을 둔 고등사고능력을 키운다는 취지로 도입된 논술시험의 포장과 현실은 달랐다.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교육과정과 환경의 변화 없이, 사교육에 방치된 채 방향을 잃었다는 비판이 무성했다.

그래픽 | 윤여경 기자

그래픽 | 윤여경 기자

▲ 경기도 재수생
“고1 때부터 준비하는데 학교선 논술 못 배우니 과외나 학원 갈 수밖에”

▲ 일산 학부모
“결국 대학서 원하는 건 고액 사교육을 받은 학생이 아닌가 싶기도”

#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는 논술, 사교육으로 내몬다

서울 강북 고3 수험생 = 2학년 6월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3학년에 들어가 시작하면 늦으니까 논술을 시작하라고 추천해서 학원에 다니게 됐다. 그때부터 중계동 주변에 있는 과외식 논술학원을 다녔다. 친구들 모두 학원에 다닌다. 2학년 때는 책 읽고 독후감 쓰고 하다가 3학년 들어오면서 각 대학들 기출문제 풀고 모범답안을 그대로 쓰는 식으로 수업했다. 여름방학 때부터는 지원한 대학 유형에 맞춰 집중 공부했다. 그런데 결국 내신이 안 나와서 논술전형을 못 썼다. 그래도 다들 하는 논술준비를 안 하면 불안하니까 기회비용이다 생각하고 학원을 다니는 거다. 일주일에 한 번 가고 30만원을 냈다.

경기도 재수생 = 2학년 때부터 학교 방과후학교에서 논술을 배웠다. 방과후 논술 전문업체가 따로 있더라. 교육청에서 인가받은 방과후학교 전문업체가 와서 하다가 질이 안 좋다고 해서 대치동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대치동 선생님이 3학년 3월부터 9월까지 했다. 첨삭도 해주고 제시문 보고 같이 문제도 풀었다. 학교에선 수업시간에 논술준비를 안 해주고, 인터넷강의에서도 첨삭을 안 해주니 방과후학교에서라도 들을 수밖에 없다.

강남구 맞벌이 주부 = 논술학원에 보내는 시기도 당겨졌다. 고2 때부터 대치동 다니는 건 일반화됐고, 1학년 때부터 준비하는 친구들도 많다.

경상도 고3 학부모 = 우리 애는 이과라서 그나마 크게 문제가 없었던 것 같은데, 문과 논술은 장난이 아니라고 하더라. 작은애는 문과인데 최소 고등학교 1, 2학년 때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고 들었다.

평촌 학부모 = 학교에서도 논술을 봐주긴 하는데 애 말로는 조금만 벗어난 걸 물어보면 선생님도 잘 모르신다고 하더라. 기존 교과목 교사들이 논술을 가르칠 텐데 그걸 가르칠 시간과 역량이 안될 것 같다. 그래도 논술학원에는 각 대학과 전공에 맞춰서 세분화된 선생님이 있지 않나.

일산 학부모 = 수도권 대학이 논술을 전부 다 보는데, 학교는 논술교육 안 시키지 않느냐. 원래 다니던 논술학원에서 아는 분 소개로 영등포 학원으로 옮겼다. 강남이 아닌데도 서울대, 연·고대 많이 간다고 입소문이 나서 특목고생들이 많이 오는 학원이다. 오전 10시에서 오후 10시까지 세 번 쓰고 하루 세 번 첨삭받는 학생도 있다고 들었다. 한 번에 7만5000원인데 강남에 비해선 엄청 싼 가격이라고 하더라. 이렇게 준비를 해도 결국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문제를 낸다고 하니 너무 고통스럽다. 이게 일부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들, 전체 수험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에게 해당되는 얘기라는 게 너무 화가 난다.

서울 고3 담임 = 일선 학교에선 논술을 가르치기 힘들다. 모든 아이들이 논술시험을 다 보는 것도 아니고, 대학마다 유형이 다르기 때문에 일일이 맞춰주기도 사실상 어렵다.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일과 업무를 빼 팀을 만들어주고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는 학교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게 학교가 뜨는 길이니까 키워주는 것이다. 대치동 논술은 각 대학의 특징을 찍어주는 건데 그런 정보력은 우리가 못 쫓아간다. 나는 방과후 논술에서 4명씩 토의하고 발표하게 하고 마무리 코멘트로 정리한다. 애들이 쓴 답안지를 걷어서 다음 시간에 첨삭도 해주는데, 수업시간이 최소 100분의 블록수업으로 확보돼야 하고 여러 과목의 통합교육으로 교육과정도 바뀌어야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다.

서울 고3 담임 2 = 학교에서 논술을 커버할 수가 없다. 방학에는 국어교사, 사회교사가 1명씩 나와 논술을 가르치고 있지만, 선생님들이 준비하거나 첨삭해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한계가 있다. 학부모들이 학원에 놀아나는 부분도 많은 것 같다. 우리반 47명 중 22명이 논술전형에 지원했다. 절반이 지원을 한 거다. 그런데 과연 서울 시내 논술전형으로 뽑는 정원이 그렇게 많은 것인지, 이 많은 사람들이 시간, 비용 대비 그만큼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대치동 논술강사 = 고등학교의 논술대비법은 학교마다 천차만별인 것 같다. 학교에서 꽤 준비를 잘 시켜주는 곳도 간혹 있지만 대개는 방과후에 논술업체가 경쟁입찰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논술지도를 떠맡긴다. 외고 등 특목고에선 강남권 학원강사를 특기적성 강사로 초빙하기도 한다. 보통은 일반논술을 가르치고, 어쩌다가 수리영역을 가르치는 교사가 있는 곳도 있다. 과목별 협력체계가 잘되는 학교는 잘 못 봤다. 아이들이 불안하면 강남 학원가로 온다.

[신년 기획 - 대학입시 현장보고서 2013](3) 한탕 승부 논술

# 교육과정 벗어난 출제, 채점기준도 모호 … 교수들도 ‘이렇게 해도 되나’

서울 중위권 대학 인문계 논술 채점 교수 = 실제 채점을 해보니 비용은 엄청나게 드는데 변별력 있는 시험으로 작용할 것인지 의심스럽다. 10명 중 2명 정도는 아주 뛰어난 대답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데 8명은 합격과 불합격을 말하기가 아주 애매하다. 몇 점을 더 받고 덜 받았다고 사고력과 수학능력에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 확실하게 얘기하기 어렵다. 내가 봐도 잘 모를 만큼 문제가 어려웠다. 학교에서 실제 배웠던 개념과 내용인가, 그 내용으로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인가를 물으면, 아니다. 좁은 의미의 교육과정은 확실히 벗어난 문제들이었다. 내가 맡은 인문사회 부문은 일주일간 세 명이 한조로 같은 문제를 세 번 보는 방법으로 채점했다. 채점자 간 점수 편차가 크면 재채점을 했고, 결국 다른 교수와 편차를 줄이기 위해 어중간한 점수를 주게 되는 것 같다. 채점 과정에서도 변별력이 줄어드는 셈이다. 채점을 시작하기 전에 채점기준에 대해서 회의는 했지만 주로 출제의도 설명에 그쳤다. 채점의 형평성을 확보했다고 보긴 어렵다. 채점관(채점조)이 누구냐에 따라 점수가 짜게 매겨질 수도, 후하게 매겨질 수도 있다는 거다. 대학들로서는 채점기준을 명확히 밝히고 왜 떨어졌는지 설명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자연계 논술 채점 교수 = 모두 3개 문제였는데, 일주일 동안 한 문제를 채점했다. 응시자가 많아 2000개 정도를 채점했다. 일주일이라고는 하지만 강의, 회의 등 다른 일정으로 채점에 쓸 수 있는 실제 시간은 하루 남짓(10여시간)밖에 안됐다. 시험지를 집에 가지고 갈 수도 없고 채점장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나마 단답형 문제였기 때문에 이 정도 시간으로 가능했지만 좀 복잡한 문제를 맡은 교수들은 정말 고생했다더라. 수험생 절반 정도가 결시했기 때문에 2000개 정도인데 수험생이 다 왔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아무리 채점기준에 대한 설명을 들었어도 채점 초반에는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다. 30~40명 정도 소위 ‘튜닝’ 과정을 거쳐야 채점이 안정화되는 것 같다. 어떤 교수는 200~300개쯤 채점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어 채점한 문제들을 다시 고쳤다고 얘기하더라.

입시전문가 = 논술 문제 출제가 그리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들었다. 짧으면 일주일, 길어도 2~3주일 안에 출제를 해야 하는데 고교 과정에 대한 이해도 없는 교수들이 그 시간 안에 적절한 주제를 정하고, 제시문을 찾고 교육과정에까지 맞춰 좋은 문제를 낸다는 것은 힘들다고 본다. 출제를 어떻게 하는지, 채점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대학들은 못 밝힐 것이다.

입시전문가 2 = 대학들은 수능이 변별력이 없어져 논술시험을 본다고 하지만 사실상 중위권 대학은 논술이 내신보다 변별력이 없을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원서접수할 때부터 논술을 준비한다. 논술을 제대로 배운다기보다 해당 대학의 출제방향에 맞춰 테크닉 연습 수준의 대비를 하는 것이다. 대학 관계자들로부터 채점 교수의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서 점수가 달라질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평촌 학부모 = 작년 수능에서 언어·수리·외국어가 5·2·2 등급 나왔는데 서울 중위권 대학 경제학과에 논술전형으로 들어간 애 친구를 봤다. 언어가 5등급인데 논술전형으로 들어간 것이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 주변에선 거의 신의 수준이라고 뒷말이 많았다.

대치동 학부모 = 자기 학교의 논술 문제를 못 푸는 대학교수들도 있다고 하던데, 제대로 채점이나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엄마들 사이에서는 애가 시험볼 때가 아니라 교수들이 채점할 때 기도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 말 많은 논술시험 교육적 효과 있나

서울 고3 교사 = 초·중·고교의 교육과정 자체가 바뀌어야 논술시험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교육의 프레임이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서 내가 필요한 것을 찾아가는 걸 도와주는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논술이 수업으로 들어오려면 교육의 이런 프레임 변화에 사회 전체가 동의해야 한다. 논술수업은 지식 전달이 아니라 ‘넌 그렇게 생각하니?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토론하면서 사고력을 발현시키도록 도와주는 수업이 돼야 한다. 교육과정 내에서 아이들의 생각이 맘껏 뻗어나갈 수 있도록 돕는 확산형 질문으로 수업하고 이런 문제들이 논술시험에 나온다면 논술학원에서 준비할 게 없어진다. 기발한 아이디어는 사교육으로 길러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의 논술시험은 학원에서 훈련받은 기술이 일정 부분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다. 아이들도 찍기 비슷하게 테크닉을 가르치고 쉽게 기억이 잘 나게 해주는 논술강사를 좋아한다.

일산 학부모 = 논술 기출문제들을 읽어봤는데 너무 어렵더라. 대학들이 왜 이런 문제를 내는 것인지 모르겠다. 결국 대학에서 원하는 우수한 학생은 고액 사교육을 받은 학생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안성 재수생 = 이번 인문계 논술이 대체적으로 쉬웠다고 하더라. 작년 거는 풀지도 못했는데 이번에는 풀긴 풀었다. 논술선생님 말로는 30%만 맞히면 합격선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 논술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뭐가 잘 쓴 글인지도 모르겠고 어려웠는지 쉬웠는지조차 모르겠다. 논술준비했다고 남는 건 별로 없는 것 같다.

인문계 논술 채점 교수 = 채점해보니 글의 첫 시작을 어떻게 하느냐가 점수에 많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판에 박힌 대답을 하는 애들보다는 첫 문장을 임팩트 있게 가는 애들이 확실히 중간 이상의 점수를 받는다. 이런 애들은 사교육을 받았을 것 같다는 의심이 가면서도 점수는 잘 주게 된다. 논술을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문제에 대해서도 더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논술이 의미 있는 시험임은 틀림없는데 시험을 위해서 준비하다보면 단기간 답을 쓸 수 있는 테크닉만 가르치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렇게 되면 의도했던 목표는 이루지 못하고 교육기회의 불균등만 생기는 셈이다.

대치동 논술강사 = 논술고사가 제대로 자리잡으려면 폭넓은 독서교육이 선행되고 교육과정 전반에 글쓰기, 말하기가 들어와야 한다. 가령 사회탐구영역을 발표 중심으로 하고, 괜찮은 견해를 현실에 적용시켜서 글쓰기로 표현하는 교육이 일상적인 모습이 된다면 문제 해결 중심의 교육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선결조건이 안 갖춰져 있다. 학부모들도, 학생도 어느 날 튀어나온 입시정책 변화에 대해서 그냥 해야 하는가보다 생각하고 무조건 학원에만 떠미는 것이고 공정성 시비도 이런 맥락에서 생기는 것이다. 교과 조정, 독서교육 등 사전작업 등이 충분히 있고, 이에 대한 평가가 축적된 상태에서 입시가 바뀌어야 하는데 입시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오니까 부작용이 생긴다. 프랑스는 초등부터 고등까지 논술을 위해 철학교과에서 수업을 하고 있고, 독일은 교육청에서 읽어야 할 책을 공개하고 이 범주에서 시험을 낸다. 우린 그런 장치들이 전혀 없다. 논술시험의 부작용 때문에 이를 없애는 것보다 공교육에서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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