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전문가가 말하는 논술

2013.01.08 22:11 입력 2013.01.08 22:53 수정

논술, 학교서 가르치지도 않고 당국의 감독도 없이 ‘손놓고’ 20년

김정빈 한국교육연구소 부소장(51·사진)은 한국의 대입 논술을 깊이 들여다본 전문가다. 그는 지난해 한국과 프랑스의 대입 논술시험 제도를 비교연구한 논문으로 동국대 교육학과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한국의 논술시험 문제는 공교육에서 제대로 준비할 수도 없고, 교육당국의 감독도 전혀 없어 사실상 통제 밖에 있다”며 “공교육과 동떨어져 있는 대학 논술시험은 근본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사교육 안 받고는 불가능
고등사고능력 평가 취지
제대로 반영하는지 의문

▲ 출제자도 못 풀 문제 허다
공교육 수용이 가장 시급

[신년 기획 - 대학입시 현장보고서 2013](3) 전문가가 말하는 논술

- 박사논문 주제를 한국과 프랑스의 대입 논술 비교로 잡은 이유가 무엇인가.

“논술시험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 거의 20년이 돼 가는데, 이에 대한 실증적인 평가 없이 비판만 계속되는 것을 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들여다보고 싶었다. 흔히 논술의 대안모델로 거론되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철학논술시험이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 들었다.”

- 대학이 왜 논술시험을 출제하나.

“크게 세 가지 이유다. 첫째, 주입식·암기식 교육을 탈피해 고등사고능력을 가진 학생을 뽑겠다는 명분이다. 둘째, 내신과 수능 변별력에 대한 의문 때문이고, 마지막으로 좋은 대학의 이미지로 비치고 싶어서다.”

- 우리나라 논술시험의 문제점은 뭔가.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논술을 정규 교육과정 안에서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논문을 쓰면서 조사해 보니 학교마다 방과후학교나 사교육에 맡기고 있는 상태다. 또 논술시험을 도입할 때의 취지대로 고등사고력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지, 교육과정과 연계돼 출제하고 있는지 교육당국이 엄격히 관리해야 하는데 전혀 감독이 없다. 문제 출제도 짧은 기간에 고교교사들의 참여 없이 대학교수들이 출제하다 보니 교육과정과는 유리될 수밖에 없다.”

- 논문에서 수도권 소재 대학 30곳의 논술 출제자를 인터뷰했다. 눈에 띄는 차이점이 있었나.

“꼭 상위권 대학이라고 시험문제가 어렵고 중·하위권이라고 쉽지도 않았다. 학교마다, 해마다 지문 수준이 천차만별이었다. 자기 분야가 아니면 출제한 사람들도 못 풀겠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인문계에서 수리논술을 내거나 영어 지문을 내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고력과는 관계없는, 학력을 측정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출제위원들은 공통적으로 마땅한 지문을 찾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전에 냈던 문제나 다른 학교의 기출문제, 모의문제들과 겹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제약이 크다고 했다. 또 며칠의 한정된 시간에 문제를 출제하려다 보니, 현재의 보편적 이슈와 시험을 볼 아이들의 수준을 고려해 좋은 문제를 출제할 수 있는 여건도 안되는 듯 보였다.”

지난해 말 서울의 한 대학 수시 2차 일반전형에 지원한 학생들이 논술고사를 치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해 말 서울의 한 대학 수시 2차 일반전형에 지원한 학생들이 논술고사를 치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프랑스와 한국의 대입 논술시험 차이는 뭔가.

“한국은 여러 제시문의 독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논제를 모두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단문의 논증형 문제 두 개와 텍스트 논평형 문제 하나 등 3문제 중 하나만 쓰면 된다. 우리는 대학별 선발고사로 객관적인 변별력이 중요하지만, 프랑스는 합격 여부만 가리면 된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프랑스는 1년에 걸쳐 문제를 일상적으로 출제하는 체제이지만 한국은 대학별로 짧은 기간 합숙하며 출제하는 것도 다르다.”

- 너무 고통이 크다 보니 대입 논술을 차라리 없애자는 얘기도 나온다.

“객관식 찍기시험으로 돌아가자는 건 석기시대로 가자는 것이다. 논술시험의 취지는 고등사고능력의 측정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힘은 교육적인 가치가 있다. 부작용이 있다고 없애기보다는 교육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학교에서 논술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학생들이 최소한 논술을 1년 이상 배울 수 있도록 정규 교육과정으로 들어와야 한다. 모든 대학이 논술전형을 실시하지는 않는 만큼 선택과목으로 들어오면 된다. 인문계는 사회·철학 전공 교사가, 자연계는 수학·과학 교사가 논술교육 책임을 맡고, 지난 20년간 각 대학이 공통적으로 출제한 부분들을 주제별로 공부하면서 다른 교과 내용이 필요할 때 담당선생님이 들어와 함께 수업하는 방식이 좋을 것 같다. 또 출제 과정에 고교 교사가 검토위원으로 참여해 문제의 완성도와 난이도, 교육과정 연계성을 함께 보도록 해야 한다. 각 대학이 시험 출제에서 채점까지 논술시험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강제해야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 논술문제는 교육과정을 벗어날 수 없도록 감독도 강화해야 한다. 교과서 지문을 늘려 문제 자체는 쉽게 하되 사고력을 평가할 수 있는 문제를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 학교가 논술을 가르칠 준비가 안돼 있다는 의견도 있다.

“논술을 공교육에서 가르칠 수 있도록 교사 역량에 대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대학과 고교 교사들의 활발한 교류로 논술 문제의 콘텐츠 개발과 고교 교수법의 변화 등도 뒤따라야 한다. 학교가 준비가 안됐다는 말도 있는데, 충분히 잘하고 있는 학교들도 있고, 학원강사가 할 수 있는 일을 학교가 못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는 학교교육 전 과정에서 논술의 바탕이 되는 독서교육이 내실 있게 진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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