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인문주의, 인간과 삶에 대한 질문 : 이어령과 김우창

2013.12.01 21:45 입력 2013.12.02 13:51 수정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새 한국문화를 창조하자”는 이어령식 해법, “이성적 사회를 회복하자”는 김우창식 해법

사상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과 내용을 말한다면 그 주체는 당연히 인간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어떤 사상이라 하더라도 출발점을 이루는 질문이다. 서양 근대 철학을 연 르네 데카르트는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로 봤고, 정신분석학을 개척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자크 라캉은 인간을 무의식 또는 욕망의 존재로 이해했다.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을 생물학적 존재로 파악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인간이 이성과 감성을 지닌 하나의 소우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탐구는 인문주의의 핵심 영역을 이룬다.

인간에 대한 탐구를 인문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때 이어령(왼쪽 사진)과 김우창(오른쪽)은 한국의 인문주의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다. 이어령이 한국의 문사철 전통에 기반한 인문주의를 일궈냈다면, 김우창은 한국 사회와 세계 사회의 경계에 서서 인문주의 본래의 정신을 탐구해 왔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인간에 대한 탐구를 인문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때 이어령(왼쪽 사진)과 김우창(오른쪽)은 한국의 인문주의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다. 이어령이 한국의 문사철 전통에 기반한 인문주의를 일궈냈다면, 김우창은 한국 사회와 세계 사회의 경계에 서서 인문주의 본래의 정신을 탐구해 왔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문사철의 인문학자’ 이어령, 정감 있는 디지털문화 설파
‘지식인들의 사상가’ 김우창, 인문주의 본래의 정신 강조

■ 인문주의란 무엇인가

인문주의(humanism)란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좁은 의미의 인문주의는 14세기 이후 서양에서 등장한 르네상스 정신을 지칭한다. 이탈리아의 단테, 네덜란드의 에라스무스, 영국의 토머스 모어 등 르네상스 지식인들은 그리스·로마 사상의 재발견을 통해 중세의 신본주의를 거부하고 인본주의를 제창했다. 넓은 의미의 인문주의는 르네상스 정신을 기반으로 해 발전된 인간 중심의 사상, 즉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 놓아두고 역사와 사회를 이해하려는 사상적 흐름을 통칭한다. 서구 계몽주의는 이런 광의의 인문주의의 한 전형을 이룬다.

우리 사회에서 인문주의는 나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전통적인 유교문화는 ‘문사철(문학·역사학·철학)’을 중시했고, 서양에서 유입된 제도로서의 대학 역시 인문학을 그 중심에 놓아뒀다. 돌아보면 우리 사회 인문주의는 이중적 과제를 안고 있었다. 전통적 인문주의의 재해석이 하나였다면, 서구적 인문주의의 주체적 수용은 다른 하나였다. 이러한 이중적 과제는 한국인이란 누구인가라는 구체적 질문에서 출발해 인간이란 누구인가라는 보편적 질문으로 나아갔다.

인문주의가 대학과 학문의 중심을 이뤄온 만큼 우리 인문주의 발전에 기여해온 인문학자들은 결코 적지 않다. 우리 전통사상을 연구한 철학자 박종홍, 예술의 사회적 의미를 탐색한 영문학자 도정일, 서양 문명을 심도 깊게 소개한 역사학자 주경철 등은 우리 인문주의를 대표해온 지식인들이다. 여기서 나는 두 인문주의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적 인문주의’를 일궈온 이어령과 ‘보편적 인문주의’를 탐구한 김우창이 그들이다.

■ 이어령, 한국적 인문주의

이어령의 <디지로그>

이어령의 <디지로그>

나는 천재라는 말을 별로 믿지 않는다. 타고난 것보다 익히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 세 사람은 정말 천재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왔다. 아홉 번 연속 장원급제한 율곡 이이와 서자로 태어났음에도 당당하게 자기 시대를 열었던 초정 박제가, 그리고 해방 이후 종합 인문학자로 활동해온 이어령이 그들이다. 이어령은 국문학자·문화학자·기호학자·소설가 등을 아우르며 천재적인 글쓰기의 역량을 발휘해 왔다.

이어령은 1934년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공부했고 이화여대에서 가르치다 은퇴했다. 출발부터 그는 범상치 않았다. 대학을 다니던 스물두 살에 기성세대를 비판하고 새로운 세대의 출발을 알린 <우상의 파괴>(1956)를, 스물네 살에 한국전쟁으로 모든 게 파괴된 이 땅에 창조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는 <화전민의 선언>(1958)을 발표해 전후세대를 이끄는 기린아로 등장했다.

이어령을 종합 인문학자로 널리 알린 책은 1962년 경향신문에 연재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였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인이란 누구인가, 우리 문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 체험의 원형은 무엇인가를 묻고 또 답했다. 전통문화의 비판적 성찰을 통한 새로운 한국문화의 모색은 그가 추구한 평생의 과제였다. 그는 1970년대 ‘신바람 문화’를 제시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선 남북 분단과 동서 냉전을 극복하려는 ‘벽을 넘어서’를 선보였다. 또 <축소 지향의 일본인>에서는 이웃 일본 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줬다.

숱한 베스트셀러를 출간해온 그는 최근 <디지로그>(2006)에서 ‘디지로그(digilog)’를 선언했다. 디지로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결합한 조어다. 그의 메시지는 정감 있는 디지털 문화를 창출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세계 사회의 새로운 리더가 되자는 데 있다. 디지로그론은 우리 문화의 특수성과 세계 문화의 보편성 사이에 가교를 놓으려 했던 이어령식 문화론의 결산인 것으로 보인다. 정보사회 안에 내재한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 하드웨어적 특성과 소프트웨어적 속성을 생산적으로 결합하려는 그의 발상은 역시 그답게 신선한 아이디어들로 가득 차 있다.

일생에 걸쳐 이어령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산업사회와 정보사회를 가로질러 사유해 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재해석하고, 이에 기반해 우리 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다. 번득이는 영감들로 가득한 그의 책들은 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한다. 물론 이러한 통찰들에서 논리적 연관성과 경험적 엄밀성이 다소 취약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그가 펼친 아이디어들은 우리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새롭게 만들어가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김우창, 보편적 인문주의

김우창의 <정치와 삶의 세계>

김우창의 <정치와 삶의 세계>

사상가의 독자는 대중과 지식인의 둘로 나뉜다. 누구는 대중의 사상가인 반면, 또 누구는 지식인들의 사상가다.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들의 사상가’를 한 사람 꼽으라면 그는 김우창이다. 한국 사회와 세계 사회의 경계에 서서 이성과 감성, 개인과 구조, 구체성과 보편성의 의미를 묻고, 인간성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모색해 온 그는 인문주의 본래의 정신에 가장 충실한 보편적인 인문주의자라 할 만하다.

김우창은 1936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미국 하버드대에서 문학·철학·경제사를 공부했다. 고려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다 은퇴한 다음 이화여대에서 가르쳐 왔다. 그는 1970년대 ‘세계의 문학’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특유의 문학평론과 사회비평을 선보였다. 그의 <궁핍한 시대의 시인>(1977)과 <지상의 척도>(1981)는 학부 시절 내가 문학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들이다.

이른바 ‘진영 논리’가 두드러진 우리 사회에서 김우창은 이채로운 존재다. 그의 문학평론은 민중문학론과 자유주의문학론의 이분법을 거부했고, 그의 사회비평은 보수와 진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의 이분법 역시 넘어서 있었다. 그가 추구한 것은 ‘심미적 이성’과 이에 기반한 ‘이성적 사회’였다. 심미적 이성이란 말을 쓴 메를로 퐁티에 따라 그는 유동하는 현실을 주목하고, 그것을 이성의 질서 속에 거두어들여 이론과 현실, 개인과 사회의 새로운 공존 및 조화를 추구했다.

김우창의 저작들 가운데 내 시선을 특히 사로잡은 것은 2000년에 출간된 <정치와 삶의 세계>다. 내가 이 책을 주목한 이유는 인문학자로서 그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저작이라는 데 있다. 우리 사회를 재생산해온 조정원리가 발전국가에서 신자유주의로 변화된 중대한 전환점이었던 1997년 외환위기와 그 결과에 대해 그는 탁월한 인문학적 성찰을 보여줬다.

김우창의 메시지는 규범의 회복이다. 폭력적인 근대화 과정에서 잃어온 이성과 성실성, 도덕적 가치를 새롭게 정초(定礎)하는 것만이 삶의 작은 행복들을 가능하게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경제위기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시급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과 삶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다.

우리 삶을 구성하는 합리성, 양심, 예절, 환경, 지역공동체, 세계화, 그리고 정치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통해 그는 좋은 사회를 위한 정신적 토양을 탐구한다.

독문학자 문광훈은 김우창의 인문주의가 갖는 특성을 ‘이성적 사유의 현대적 가능성’ ‘내면성의 사회적 확산’ ‘반성적 사유의 교향악’으로 파악한다. 온당하면서도 정확한 평가다. 철학적 인간학에 기반해 이성적 사회의 실현을 꿈꿔온 그의 인문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관찰할 수 있는 가장 넓고 깊은 사상의 모험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책들이 대중들이 더 많이 접근할 수 있도록 좀 더 쉬운 언어로 쓰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물론 없지는 않다. 하지만 복합사회에 대응하는 사유의 복합성을 강조하는 그에게 이는 쉽지 않은 일인 것으로 보인다.

■ 인문주의의 미래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인문학 열풍’이 거세다. 주목할 것은, 사회에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에 반해 정작 대학 안에선 무관심이 커져 왔다는 점이다. 이러한 차이는 세대가 놓인 서로 다른 위치에서 비롯된다. 젊은 세대에겐 취업이 당장 중요한 문제라면, 제법 나이든 세대에겐 이제 삶이 중요한 문제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문학 열풍은 현대사회의 구조변동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는 두 요인이 중요하다. 현대사회가 낳아온 소외와 관료화에 따른 삶의 황량함에 대한 자각이 하나라면, 최근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정보사회의 진전에 따른 노동시장의 변동이 다른 하나다. 특히 후자가 가져온 청년실업, 퇴출의 공포, 조기 은퇴, 노후 일자리 부족 등은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이 강조하듯 인간성을 부식시키는 자본주의 현실에 맞서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던지게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결국 왜 사느냐, 어떻게 사느냐, 무엇을 위해 사느냐로 귀결된다. 인간의 모습이 하나가 아니듯, 삶의 의미도 하나일 수는 없다. 우리 인간은, 우리 한국인은 같은 존재이면서도 다른 존재다. 존재의 의미를 묻고 자신에게 걸맞은 삶을 기획해야 하는 것은 현재 우리에게 부여된 중요한 과제이며, 이에 대한 응답은 인문주의가 맡아야 할 마땅한 책무다. 우리 인문주의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모색하는 데 이어령과 김우창의 인문주의는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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