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사랑하세요, 상대방의 결핍까지 끌어안고”

2015.05.22 21:24 입력 2015.05.23 00:14 수정

(5) 작가 임경선의 ‘사랑의 태도’

인생은 유한하고,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작가 임경선씨는 사랑에 대해 취해야 할 단 한 가지 태도가 있다면 ‘관대함’이라고 말한다. 우리 인생에 사랑만 한 ‘사치’는 없기에, 내일이 찾아오지 않을 것처럼 사랑해야 한다. 사랑할 때는 그 사람의 결핍까지 끌어안아야 하고, 때로 이별의 순간에도 상대의 마음까지 이해해야 한다. 관대함은 사랑의 시작이자 끝이다. 나 자신이 우선 단단해져야 이런 관대한 태도를 지닐 수 있다.

임씨는 ‘사랑의 태도’를 주제로 삼아 경향신문 연중기획 ‘심리톡톡 시즌2-사랑에 관하여’ 5월 강연을 진행했다. 일과 사랑, 인간관계와 삶의 태도에 관한 다양한 글쓰기를 보여준 작가는 지난 11년 동안 신문·라디오를 통해 수많은 이들의 인생 상담을 받았다. 지난 19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강연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전문은 경향신문 홈페이지의 심리톡톡 코너(all.khan.co.kr)에서 볼 수 있다.

지난 19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심리톡톡 시즌2-사랑에 관하여’ 5월 강연에서  임경선 작가가 ‘사랑의 태도’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지난 19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심리톡톡 시즌2-사랑에 관하여’ 5월 강연에서 임경선 작가가 ‘사랑의 태도’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 ‘있는 그대로의 나’라는 함정

강연에서 꼭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사랑하면 상처받을까봐 두렵다. 나 좋다는 사람은 싫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한테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연애를 안 하고 평생 혼자 살자니 그렇고, 눈 낮추고 주변을 둘러봐도 멀쩡한 사람은 다 기혼이다. 대체 괜찮은 남자들은 왜 없나.”

저는 거꾸로 묻고 싶어요. 당신은 스스로를 사랑하느냐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고. 그러면 또 ‘잘 모르겠다’고 하세요. 나도 나를 모르는데 어쨌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나보다 더 이해하고 사랑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요.

사랑에 있어서 자발성, 능동성이 발휘되지 않으면 그 대신 자존심이나 자의식이 작용합니다. 자기는 껍데기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으면서 내심 누군가가 껍데기를 깨고 들어와 주길 바랍니다. 자신의 문제를 상대에게 투영하거나 내가 채우지 못한 결핍을 대신 채워줄 상대를 기다립니다. 조금 불안한 기미가 보이면 내가 버림받을 거라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서 먼저 마음의 문을 닫습니다.

자존감은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나의 좋은 점과 부족한 점을 직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를 알고, 할 수 있는 것을 좀 더 잘하고자 하는 태도입니다. 나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 꾸준히 노력해 나가는, 일상 속의 성실함이 자존감을 만듭니다. 이런 자존감이 왜 중요하느냐면 나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쓸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하는 상대의 불완전함을 이해할 포용력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임경선 작가는 이날 강연에서 “상대에게 바라거나 기대기보다 내가 유연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 먼저 사랑에 대해 기꺼이 관대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서성일 기자

임경선 작가는 이날 강연에서 “상대에게 바라거나 기대기보다 내가 유연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 먼저 사랑에 대해 기꺼이 관대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서성일 기자

■ 사랑도 중요하지만, 내가 더 중요해

사랑은 잘나고 강하고 멋진 사람을 어떻게 내 사람으로 만들까 하는 연애 기술을 고민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저 사람의 약한 점을 있는 그대로 품을 수 있을까, 저 사람 때문이라면 기꺼이 상처를 입어도 좋다, 그런 ‘기꺼이 항복하게 만드는’ 감정이 절로 일 때 ‘사랑’이 시작됩니다.

차인 것을 “사랑에 실패했다”고 표현하는데 저는 반대합니다. 내가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했는데 이별의 형태로 끝났다면 그건 실패가 아닙니다. ‘밀당’(밀고 당기기)도 하지 마세요. 마케팅에 비유하자면 제품력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노력하는 게 중요합니다. 사랑도 중요하지만 내가 나와 살아가는 기간이 제일 길지요.

우리는 주변의 이런 소리에 시달립니다. “너무 잘해주지 마. 너를 만만하고 당연하게 생각할 거야.” 사랑하는 사람들은 “왜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자존심을 내세워야 해?”라고 반문합니다. 상대를 더 많이 좋아한다 해도 관계의 약자라고 생각하면서 미리 두려워하고 피해 의식을 가지지 않았으면 해요. 너에 대한 나의 감정을 네가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그건 ‘너’의 문제이지 ‘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강하고 단단한 사람들은 사랑할 때 상대 앞에서 자신 있게 무력해질 수 있습니다. 진짜 약한 사람들은 내가 먼저 상대에게 상처를 주려는 가혹한 사람들입니다.

사랑에서 취해야 할 단 하나의 태도가 있다면 나 자신에게는 ‘진실함’, 상대한테는 ‘관대함’입니다. 저는 항상 얘기합니다, 사랑에 관대해지자.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라고 생각해요. 그런 극치감은 일생에서 많지 않습니다. 그 기회가 왔을 때는 무조건 누려야 합니다. 순수하게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 시대의 가장 호사스러운 사치일지도 모릅니다.

■ 우리는 약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랑에 있어서 ‘관대한’ 태도가 가장 필요할 때가 언제일까요. 바로 그 사랑이 끝날 때, 이별할 때입니다. 이별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렇다고 먼저 이별을 입에 올렸다고 해서 나쁜 것도, 가해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이별을 거부한 사람이 피해자도 아닙니다. 둘 다 감정에 솔직한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프지만 그 누구의 잘못도 없습니다. 상대가 원한다면 그를 놔줘야 합니다. 계속 칼을 갈면서 상처를 자양분 삼는 사람들은 이미 그 연애와 관계없이 상처에 의존하면서 나는 피해자라는 상황에 안주하는 겁니다. 어떤 시점이 지나면 그 어두컴컴한 방에서 스스로 걸어 나와야 합니다. 정말 고통스럽지만 나의 아픈 마음을 보듬는 만큼 상대가 나한테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왜 계속 가장 중요한 사랑의 태도가 ‘관대함’이라고 얘기하는가 하면, 첫 번째는 인생의 유한성 때문이에요. 개인적으로 몸이 아팠던 경험이 많았어요. 그래서 내일이 찾아오지 않을 것처럼, 기회가 되면 연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둘째는 인간이 정말 불완전한 존재라는 점입니다. 나의 결핍과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만큼 상대방의 결핍과 불완전함도 인정하는 것이지요.

이별을 통해 성장한다는 말은 거창한 게 아니에요. 나를 이해하는 만큼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 그리고 이별의 고통을 겪어도 시간이 되면 우뚝 일어서서 나대로 인생을 걸어 나갈 수 있다는 것, 이게 바로 성장인 것 같아요. 아울러 사랑 그 자체가 내 인생에 온 것을 소중히 여기는 순수한 마음, 그 사람들에 대한 좋은 마음, 또 이 사랑이 끝나도 새로운 사랑이 내게 도래할 거라는 당연한 믿음, 그런 게 있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바로 그 순간이 슬픔에 아름다움이 깃드는 순간일 겁니다. 상대에게 바라거나 기대기보다 내가 유연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 먼저 사랑에 대해 기꺼이 관대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점점 더 계산하고, 비교하고, 못 견뎌하는 게 많아지고 있어요. 우리, 그 정도로 약한 사람들은 아니잖아요. 우리에겐 본래 누군가를 깊이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겁니다. 그 본능을 믿어주세요.

‘심리톡톡 시즌2-사랑에 관하여’ 5월 강연 참석자들이 임경선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청중들은 강연이 끝난 뒤에도 1시간여 동안 각자의 고민을 작가에게 풀어내기도 했다. | 서성일 기자

‘심리톡톡 시즌2-사랑에 관하여’ 5월 강연 참석자들이 임경선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청중들은 강연이 끝난 뒤에도 1시간여 동안 각자의 고민을 작가에게 풀어내기도 했다. | 서성일 기자

강연 뒤 질의응답 시간에 마지막 질문자는 이렇게 물었다. “3년 전 말기 암 선고를 받았지만 감사하게도 치료가 잘 끝났고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어요. 하지만 사람을 만나고 연애하고 결혼하는 건 여전히 주저하게 돼요.”

임경선 작가는 답했다. “고통을 경험한 사람은 두 부류라고 했어요. 하나는 나만 당할 순 없다는 억울함에 남에게 더 가혹해지고 상처를 내는 사람들. 또 다른 하나는 타인의 아픔에 대해 훨씬 더 공감할 수 있게 된 사람들. 우리는 후자여야만 하고, 아마도 후자일 것 같아요. 아까 인생의 유한함 때문에 제가 선택한 사랑의 태도가 관대함이라고 했습니다. 아프면 죽음에 대해 생각하잖아요. 그러면 많은 것들이 더 다르게 다가와요. 오히려 더 줄 수 있는 힘이 생겨요. 나는 이미 그 아프고 고통스러운 걸 겪고 소화해냈기 때문에 너의 아픔을 이해해줄 수 있어, 그리고 너를 결코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그런 너그러운 마음까지 가질 수 있는 것이지요. 그건 고통을 담보로 얻은 선물이에요. 질문자를 앞으로 만나실 분은 행운아라고 봅니다.”

▲ 사랑을 잘하는 사람의 특징
잘 반하고 장점을 잘 찾고 결핍도 사랑하고


예전에 <라디오천국>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DJ 유희열씨와 격하게 공감한 것이 있습니다. 음악이 돌아가는 동안 우리끼리 한 얘긴데요. 이성에게 사랑받는 사람들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본인들 자체가 이성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여자라면 남자를 참 좋아하고, 남자라면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투명하게 티내는 사람들. 보통 이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밝힌다, 헤프다 이런 선입견이 있는데 저는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굉장히 기쁨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가만 보면 사랑에 잘 빠지는 사람들은 특징이 있더라고요.

첫째, 무엇이든 열정적으로 잘 반합니다. 좋아하는 감정 자체를 즐기고 좋아하고, 사랑을 주면서 행복해합니다. 선물받는 것보다 주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지요. 물론 무언가를 줬을 때 상대방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이기적인 마음도 들어있어요. 하지만 주면서도 본전 생각을 안 합니다. 좋아하는 감정 자체에 충분히 만족하는 겁니다.

둘째,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 안에서 자기만이 발견하는 장점을 찾아내고 그걸 소중하고 애틋하게 생각합니다. ‘이 사람의 이런 멋진 부분은 나밖에 모른다’는 거지요. 주변에서는 ‘그 사람이 뭐가 좋으냐’고 그러지만, 본인에게는 유일무이한 사랑인 겁니다.

셋째,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 사람의 결핍도 사랑합니다. 보통 장점을 좋아하는 것까지는 쉽습니다. 만난 지 3개월쯤 되면 그 사람의 단점이 드러나고, 나와 안 맞는 부분이 보이면서 그때 감정이 많이 흔들리지요. 내가 생각했던 그 남자, 그 여자가 아닌데,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하나 고민합니다.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기고 사랑이 깊어지면 어느덧 그 사람의 결핍을 판단하지 않고 수용하고 포용하게 되는 거지요. ‘이 사람의 이런 못난 모습은 나밖에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 사람의 이런 점이 정상인가요, 어떻게 하면 변할 수 있을까요’라는 상담 e메일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상·비정상이 어디 있을까요. 슬픔과 고통을 나눌 수 있는 경지까지 가면 그 사람의 결핍을 내가 채워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상대방의 결핍이 나를 공격하는 도구로 쓰인다면 그 남자든 여자든 멀리해야 하지만, 그게 아니라 그냥 있는 그 자체의 결핍이면 내가 같이 품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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