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주사파 발언 파동

2015.10.21 22:35 입력 2015.10.23 08:40 수정
박태균 서울대 교수·국사학

박홍, 근거 없이 “김정일 지령 받는 학생 있다”…매카시즘 횡행

1994년 7월9일 북한 최고지도자 김일성의 사망은 한반도 전체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한국 사회를 혼돈으로 치닫게 한 것은 김일성 사망을 둘러싼 논쟁이 아니라 박홍 서강대 총장의 주사파 발언이었다. 박 총장은 1994년 7월18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학총장 간담회에서 “대학 내에 북한 김정일의 지령을 받는 학생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을 ‘주사파’로 지칭하면서 이들 중에는 테러단체도 있다고 주장했다. 박 총장은 또 “북한은 우루과이라운드 비준 반대와 미군기지 반납 서명운동을 벌이도록 이미 지시를 내려놓고 있으며 (나는) 그 증거를 가지고 있다. 주사파 뒤에는 사노맹이 있고, 그 뒤에는 북한 사노청, 그 뒤에는 김정일이 있다”고 했다.

박 총장의 발언은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대학가에 분향소가 설치되고, 야당인 민주당이 정부의 조문 필요성을 제기한 직후 나왔다. 사노맹은 주사파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는 점에서 박 총장의 발언은 기본적인 사실 파악조차 돼 있지 않은 주장이었지만, 그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했다. 주사파 발언이 나온 직후 동아일보는 박 총장과 인터뷰를 했다. 그는 베를린, 베이징, 도쿄, 타슈켄트 등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남북한 학생들이 서로 연계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으며, 베이징에서 만난 김일성대학 이관수 교수에 의하면 남한에서 보내온 팩스가 평양에 수북이 쌓여 있다고 말했다. 3년 전인 1991년 5월 김기설 분신 사망 사건에 배후세력과 분신조가 있었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그 세력들이 북한과 연계돼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사회 뒤흔든 주사파 발언

주사파 발언 파장은 박 총장을 납치하려 한다는 정보가 입수돼 신변보호가 필요하다는 경찰의 발표가 있으면서 증폭됐다. 보수 언론들은 “대다수 시민들은 박 총장의 ‘용기 있는 발언’을 평가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1994년 7월18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학총장 간담회에서 “대학 내에 북한 김정일의 지령을 받는 학생들이 있다”고 말해 논란이 된  박홍 서강대 총장이 그해 8월 여의도클럽 토론회에 나와 ‘주사파’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4년 7월18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학총장 간담회에서 “대학 내에 북한 김정일의 지령을 받는 학생들이 있다”고 말해 논란이 된 박홍 서강대 총장이 그해 8월 여의도클럽 토론회에 나와 ‘주사파’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언론은 박 총장 발언 띄우기에 나섰다. 동아일보는 대학교육협의회가 합의문을 내기도 전에 ‘23개대 총장 박 총장 발언 지지’라는 기사를 그해 7월23일자에 실었다. 사회적 여론에 대한 보도도 나왔다. 동아일보는 박 총장의 발언이 나온 지 일주일도 안된 시점에서 ‘대북 교신 각계 반응’이란 기사(1994년 7월23일자)를 게재했다. 이 기사는 당시 YMCA연맹 사무총장, 교수, 작가, 정의구현사제단 신부, 우리농업지키기범국민운동 간사, 변호사(4월회 회장), 삼성전관 이사, 보험감독원장 등과 함께 회사원, 주부, 자영업 종사자, 학생 등 16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16명의 인터뷰 중 박홍 총장과 검찰의 발표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은 5명도 채 되지 않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고, 박홍 총장과 검찰 발표를 통해서 학생운동 전체를 매도하거나 공안정국으로 몰고가서는 안 되며, 아울러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이 기사에 대해 “무분별한 행동 잘못 - 통일정책 혼선 불러, 친북성향 충격 - 박홍총장 발언 시기 적절‘로 부제를 뽑았다.
 주사파 발언의 파장은 정부와 국회에까지 확산되었다. 그러나 민자당의 손학규 부대변인은 청와대 내 김정남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을 포함한 일부 수석 비서관의 전력과 사상에 시비가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면서 “김수석이 단지 ‘운동권’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끝까지 좌우 어느 한편에 세우려 한다면 그것은 사물을 ‘흑 아니면 백’으로 보는 분화되지 못한 이분법적 단순사고의 전형”이라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기부는 박홍 총장의 발언 시기에 맞추어 북한에 5개의 핵탄두가 이미 개발되었다고 주장하는 북한 총리 강성산의 사위 강명도의 망명을 발표하였다.

 그해 8월 중순 박총장은 야당에 750여명의 주사파가 있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이 발언이 야당의 강한 반발로 이어지면서 그는 야당뿐만 아니라 언론, 종교계까지를 모두 합한 숫자라고 말하면서 발언을 수정했다. 박홍 총장은 야당에 대한 발언이 강한 역풍을 받으며 밀리게 되자 주사파의 99.95%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이들이 북한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 자신의 발언 목적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검찰 조사과정에서 박 총장은 국회의원 보좌관의 다수가 주사파이지만, 사제로서 선서를 했기 때문에 제보자를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또 주사파에 대한 새로운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제3자에게서 들은 것이거나 시위 현장의 유인물, 학회 자료 등이 전부라는 입장을 밝혔다.

■근거 없는 주장에 매카시즘 횡행

박 총장은 남한의 해외 유학생들이 북한 돈을 받고 있다는 발언도 했다. 이로 인해 해외 유학생(당시 베를린자유대 석사과정 수료)과 함께 현직 교수 2명이 안기부로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독일 유학 때 이른바 ‘김일성 장학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안기부는 이들 교수에게 뚜렷한 혐의가 있다기보다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연행했다고 밝혔지만, 언론에는 실명이 거론됐다. 사실규명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수 언론은 박 총장의 발언이 마치 증명된 것처럼 비중 있게 다뤘다. 특히 체포된 사람 중에는 진보적 활동에 적극 참여했던 교수가 포함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1994년 7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박홍 서강대 총장의 ‘주사파’ 발언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4년 7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박홍 서강대 총장의 ‘주사파’ 발언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결국 실명이 거론된 두 교수는 무혐의로 풀려났다. 하지만 박 총장의 발언이 모두 증명된 것처럼 여론이 형성됐다. 두 교수는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하지만 보수 언론들은 독자들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작게 사과문을 게재했다. 이후에도 박 총장은 독일 유학생 간첩 사건 증인으로 법정에서 진술했으며, 재판 이후에는 안기부에 자수한 독일 유학생이 자신을 암살하려 했다고 밝혀 또다시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또 북한이 한국통신의 노조원을 조종했다고 주장했다가 “표현의 의미가 잘못 전달되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박 총장 발언의 핵심은 주사파 존재 여부가 아니었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그의 발언이 여론을 흔들어 놓았다는 점이었다. 이후 진보 인사들을 북한 추종세력으로 모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했다. 여론은 언론의 보도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그때부터 한국 사회에서 매카시즘(극단적 반공주의)이 횡행했고, ‘좌빨’ ‘종북’이란 용어가 남발되기 시작했다. ‘상식’이 사라진 한국 사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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