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끝이 아닌 시작…합리적 대체복무제 마련되면 따르겠다”

2018.11.01 21:49 입력 2018.11.01 22:07 수정

판결 당사자 오승헌씨 “2만여명 선배·동료들 인내 덕분”

여호와의증인 “지난 65년 동안 전과자로 받은 고통 위로”

시민단체, 국방부 ‘36개월 복무안’에 “징벌적 성격” 비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오·남용 우려 씻게 성실하게 복무”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형사처벌을 해선 안된다는 판결을 내린 후 소송의 당사자인 오승헌씨가 취재진에게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창길 기자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형사처벌을 해선 안된다는 판결을 내린 후 소송의 당사자인 오승헌씨가 취재진에게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창길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일 양심적 병역거부를 형사처벌해서는 안된다는 판결을 내놓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지난 세월을 함께한 동료들을 먼저 떠올렸다.

이날 대법원이 선고한 병역법 위반 사건의 피고인인 ‘여호와의증인’ 신도 오승헌씨(34)는 선고 직후 법정 앞에서 ‘누가 가장 먼저 생각나냐’는 질문에 “가족뿐 아니라 저처럼 법원의 문을 두드려온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 변호사들에게 감사하다”고 답했다. 그는 “징역형을 살아야 했던 2만여명의 선배이자 동료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인내 덕분에 이번 판결이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2004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대법관 11 대 1의 다수의견으로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후 지금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대부분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살아야 했다.

또 다른 양심적 병역거부자 박상욱씨(25)도 이날 선고 뒤 대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감회가 새롭다”며 판결을 환영했다. 박씨는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내려진 2004년을 ‘한국의 이라크 파병 시기’로 기억했다. 그해 2월 이라크 평화재건 사단(자이툰 부대)이 이라크로 갔다. 그는 “이라크 파병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분들의 염원을 저버리는 유죄 판결이 나오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감옥행은 계속됐다”며 “오늘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걸린 14년은 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린 연대의 시간들이었다. 함께한 모두가 평화운동의 당사자”라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 7월 수감됐다가 9월 출소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재판을 받고 있는 참여연대 간사 홍정훈씨(28)는 경향신문이 소감을 묻자 “솔직히 지난 6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뒤에 대법원에서도 무죄가 나올 거라 생각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감옥에 가야 하는 아픔이 있었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오늘 결정으로 그 아픔을 치유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국내 대다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속한 여호와의증인 한국지부도 이날 성명을 내고 “지난 65년 동안 전과자로 온갖 불이익을 견뎌온 2만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 가족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오랜 기간 오씨 등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대리해온 오두진 변호사는 “감옥밖에 갈 수 없었던 청년들이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준 법원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이날 남은 과제도 언급했다. 여호와의증인에 따르면, 양심적 병역거부로 대법원과 하급심 재판을 받고 있는 여호와의증인 신도는 총 930명이다. 오씨는 “이러한 모든 판결에서도 전향적이고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날 대법원 선고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고 했다. 그 시작의 중심에는 대체복무제를 둘러싼 논쟁이 놓여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향후 대체복무제를 합리적·인권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6월 헌재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 규정을 마련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한 뒤 정부는 대체복무제 마련을 위해 의견을 수렴했다. 박씨는 대체복무제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평화주의적 이상’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방부는 교도소나 소방서 등지에서 현역병의 2배인 36개월을 복무하게 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대체복무제안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등 시민단체들은 선고 전날 입장문을 내고 “현재 정부안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또다시 처벌하고 차별하는 징벌적 대체복무제”라며 비판했다. 법무법인 지향의 김수정 변호사는 이날 “국방부안은 인권기준에 맞지 않아 보여 매우 우려된다”며 “사실상 교도소와 같은 교정시설에 36개월 가둬놓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합리적인 대체복무제가 마련되면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오씨는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대체복무제가 병역기피로 오·남용되지 않을까 하는 국민들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도록 성실히 복무하겠다”고 말했다. 여호와의증인 한국지부는 “앞으로 선량한 젊은이들이 양심에 반하지 않으면서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민간 대체복무를 통해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성명을 내고 “그동안 우리 사회는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을 형사처벌해 전과자로 만드는 잘못을 반복해왔다. 형사처벌을 받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재심 등 적극적인 구제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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