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보험 사각’에 법정까지 간 초등생

2019.06.27 06:00 입력 2019.06.27 07:05 수정

보험 처리 자동차와 달리

사고 합의 못한 미성년자도

가해 책임 땐 더 엄한 처벌

“관련 보험제도 정비하고

자전거도 차량, 교육 필요”

자전거 ‘보험 사각’에 법정까지 간 초등생

충북 청주에 사는 김모군(12)은 지난달 ‘교통사고 피의자’로 소년보호재판에 넘겨졌다. 운전면허도 따지 못하는 초등학생이 교통사고로 법정까지 간 사연은 이랬다.

김군은 지난 4월11일 아파트 단지에서 자전거를 타다 주행 중이던 자동차를 들이받았다. 자동차 운전자와 동승자 2명이 급히 브레이크를 밟다가 목이 삐었다며 각각 2주의 진단서를 제출했고, 김군 부모는 피해자와 합의를 하려 했다. 합의 금액을 두고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았다.

사건을 맡은 청주 청원경찰서는 김군을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상 혐의로 지방법원 소년부에 넘겼다. 당시 사건을 맡은 수사관은 “양측 합의가 결렬되면 경찰은 조금이라도 더 잘못이 있는 사람을 가해자로 다룰 수밖에 없다”며 “어린 소년이 법정까지 간 사건은 처음이라 안타까웠다”고 했다.

2017년 5월에는 사고 당시 16살이었던 승모군이 대구의 한 경기장에서 자전거를 타다 반대편에서 오던 보행자를 넘어뜨려 소년보호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사건 발생 직후 피해자에게 안부를 묻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했고, 그의 부모도 치료비를 일부 지급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했다”면서도 “피해자가 전치 6주라는 가볍지 않은 상해를 입었다”며 승군을 소년부로 송치한 뒤 보호처분을 내렸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자전거도 자동차로 간주한다. 자전거 사고를 낸 운전자도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과실이나 피해자 상해 정도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 전체 자전거 사고 가해자의 28%(2017년 경찰청 통계)인 미성년자도 예외는 없다. 법에 따라 자전거 사고를 낸 청소년들이 자동차 운전자보다 무거운 처벌을 받는 경우도 발생하곤 한다.

전치 6주의 상해를 입힌 운전자는 ‘3주 이상 상해’에 대해 15점, ‘안전운전의무 불이행’으로 10점 등 최소 25점 벌점의 행정처분을 받는 정도에 그친다. 한 일선 경찰서 교통조사팀장은 “보험이 있으면 불기소 처분을 받고, 보험이 없으면 합의를 해야 한다. 합의가 결렬됐을 때 재판에 넘겨진다”며 “실명, 뇌장애 등 불치 또는 난치의 장애를 입힌 경우를 제외하면 자동차 운전자가 재판까지 가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따르면, 보험에 가입한 자동차 운전자들은 중앙선 침범 등 12개 중대과실을 범하거나 피해자가 중상해를 입지 않는다면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이 내려진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과 구청에서 보험 미가입 차량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제재를 하기 때문에, 대포 차량을 제외하고 보험에 들지 않은 차량은 드물다”고 했다.

하지만 자전거는 별도 보험이 없어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사고 정도가 경미하고 일부 손해배상을 하더라도 피해자와 합의되지 않으면 처벌을 피할 수 없다. 가해자가 미성년자일 경우 합의금을 마련하는 것도 까다롭다. 부모가 운전자보험에 가입하면서 ‘가족일상생활배상책임’ 특약을 신청했다면 자녀가 자전거 사고를 낼 때 사고처리비용도 충당할 수 있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경제·사회적 지원을 받기 어려운 미성년자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전문가들은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성렬 삼성교통안전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자전거 이용 활성화 정책을 펴는) 일부 지자체가 운전자의 신체적 피해를 보상하는 자전거 보험을 운영 중이지만 대물·대인 보상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2009년 이명박 정부 때 ‘녹색교통활성화’ 명목으로 출시된 자전거보험도 수익성 악화로 사라졌다고 한다. 이 수석연구원은 “청소년 자전거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며 “지자체나 공공부문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에 대한 교육 필요성을 강조하는 의견도 나왔다. 정의석 도로교통공단 교육운영팀 차장은 “자전거도 차량의 일종임을 청소년들이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학교에 안전교육 이수시간을 마련했지만, 자전거 안전 등 교통안전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선 정해진 매뉴얼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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