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돋보기

범죄피해자, 민사소송과 형사배상신청 동시에 할 수 있나?···대법 “경우에 따라 가능”

2022.09.10 13:00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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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피해를 당했을 경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형사재판을 통해서, 가해자에게 피해에 대한 배상을 받아내는 건 민사재판을 통해서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사기·폭행·절도 등 재산상의 피해가 존재하는 사건의 경우 형사재판 단계에서 배상까지 함께 받을 수 있다. ‘형사배상명령’ 제도를 통해서다.

‘형사배상명령’은 재산 피해액의 산정이 어렵지 않고 액수가 명확한 경우 별도의 민사소송을 거치는 수고와 비용을 들이지 않고 신속하게 피해자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제도다. 그래서 피해자가 이미 가해자를 상대로 별도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상태라면 형사배상명령 신청은 불가하다.

그런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손해배상 청구’가 아닌 ‘대여금’이나 ‘약정금’ 반환 청구 소송을 낸 경우라면 형사배상명령도 동시에 신청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당시 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와 B씨에 대해 각각 벌금 500만원과 벌금 300만원을 선고하고 A씨와 B씨가 함께 피해자 C씨에게 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형사배상명령을 내린 원심을 지난 7월28일 확정했다.

A씨 등은 2009년 C씨에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어 합의금이 필요하니 3000만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이어 ‘대구시의회 의장에게 맡겨둔 돈이 있으니 곧바로 갚겠다’고도 했다. 이에 C씨는 3000만원을 B씨의 계좌로 입금했다.

그러나 사실 A씨 등은 형사합의금이 아닌 사업상 반환할 계약금으로 쓰기 위해 3000만원이 필요한 상태였고, 대구시의회 의장에게 맡겨둔 돈도 없었다. 또 30억원이 넘는 채무를 지고 있어 돈을 갚을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결국 A씨 등은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과 2심 모두 A씨 등이 C씨를 속여 금품을 가로챈 것으로 판단해 사기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그리고 C씨에게 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형사배상명령도 내렸다.

그런데 A씨는 형사배상명령이 위법하다며 상고했다. 피해자 C씨는 A씨 등에 대한 형사재판이 시작되기 전 이미 A씨를 상대로 사기 피해액 3000만원을 포함한 1억9000여만원의 반환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낸 상태였다.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26조 제7항은 ‘범죄행위로 발생한 피해에 관해 다른 절차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가 법원에 계속 중일 때에는 배상신청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A씨는 피해금액에 대해 별도의 민사사송이 진행 중인 상태라 형사배상명령 신청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송촉진법이 규정하는 ‘다른 절차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란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경우”만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즉 C씨가 A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면 형사배상명령을 신청할 수 없지만, 약정금 반환 청구 소송을 낸 것이기 때문에 형사배상명령을 함께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손해배상 청구’는 ‘불법행위에 의한 피해를 배상하라고 요구하는 것’인 반면, 대여금이나 약정금 반환 청구는 불법행위 여부와 관계 없이 ‘빌린 돈이나 주기로 약속한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여금 반환 청구도 피해금액의 반환을 요구한다는 점에서는 손해배상 청구와 본질적으로 같아 형사배상명령을 동시에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어 왔다”면서도 “가해자가 재산을 은닉하기 전 피해를 신속히 구제하기 위해 도입된 형사배상명령 제도가 보다 적극 활용될 수 있게 하려는 취지로 이 같은 판단을 한 것”이라고 했다. 다만 형사배상명령을 통해 돌려받은 피해금액은 약정금 청구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반환 대상에서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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