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심정지·중증외상환자들 ‘SOS’…속절없는 응급의료 체계

2018.03.16 06:00 입력 2018.03.16 09:50 수정

급성심근경색으로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 되살아난 환자가 처음 이송된 병원에서 특수장비(에크모)를 단 채 구급차를 타고 서울아산병원에 도착해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급성심근경색으로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 되살아난 환자가 처음 이송된 병원에서 특수장비(에크모)를 단 채 구급차를 타고 서울아산병원에 도착해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6년 10월 서울 남부지역의 한 경로당에서 이세정 할머니(81·가명)가 갑자기 얼굴에 청색증이 나타나더니 쓰러졌다. 심장의 기능이 떨어지는 심부전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그동안 큰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사고 당일 누군가와 심하게 다투면서 심실세동·중증심장부정맥의 일종인 심장발작이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119센터 기록을 보면 신고는 오후 3시25분에 접수됐고, 구급차는 6분 만에 도착했다. 구급차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대학병원 응급실에 16분 만에 도착한 할머니는 집중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사고 발생 2시간이 채 안된 4시16분에 안타깝게 사망했다.

이 병원 응급의학과장은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에 가슴 압박이나 자동심장충격기를 활용한 심폐소생술이 있었다면 충분히 살릴 수 있는 경우였다”고 말했다.

[우리는 충분히 ‘돌봄’ 받고 있는가](4)심정지·중증외상환자들 ‘SOS’…속절없는 응급의료 체계

2017년 9월 경기도 김포 지역의 한 건축 공사장에서 추락한 50대 환자 정모씨는 119구급대에 의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검사 결과 머리 안쪽에 경막외출혈과 다발성 척추 압박골절이 확인됐다. 다행히 의식은 깨어났지만 출혈량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응급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다. 보호자가 연고지 관계로 타 병원으로 이송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의료진이 뇌출혈이 증가할 가능성과 이송의 위험성을 재차 설명하였으나 보호자는 이송을 강력히 희망해 결국 일반 구급차에 응급구조사를 태워 출발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뇌출혈량이 늘었는지 환자는 의식이 저하됐다. 결국 호흡부전이 발생해 인공호흡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도착했지만 상태가 너무 나빠져 치명적인 후유장애를 입었다.

해마다 3만명이 넘는 사람이 심정지 등 심장질환으로 사망한다. 대부분 급성심근경색이나 중증부정맥에 따른 돌연사다. 하지만 대한응급의학회에 따르면 현장에서 일반인 목격자에 의한 심폐소생술이 이뤄지는 경우는 10%를 넘지 못한다. 이런 탓에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은 4~5%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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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매년 10만건이 넘는 교통사고나 추락·화재사고 등으로 중증외상을 당한 경우 응급조치 후 일반 구급차로 현장에서 병원으로, 또 작은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이송하는 도중 사망하는 사례가 상당하다.

▶심폐소생·환자 이송 ‘기반 미비’로 생명 살릴 시간 허비

평소 업무 스트레스가 심하고 술·담배를 많이 하던 강모씨(47·서울 강동구)는 계단을 오르거나 운동을 하면 가슴이 뻐근한 느낌을 받았지만 쉬고 나면 괜찮아져 그대로 지나쳤다. 그러던 지난 2월7일 밤 술을 마시고 혼자 귀가하던 그는 극심한 가슴통증을 느끼며 동네 가게 앞에서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주변에서 119에 신고하자 10여분 만에 구급차가 도착해 강씨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며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했다. 검사 결과 심장혈관(관상동맥) 3개 중 2개가 막혀 있었다. 이날 사고로 강씨는 심장근육 일부 괴사로 인한 심부전과 허혈성 뇌손상을 입었다. 주치의는 “119구급차 도착 전 몇 분이라도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면 후유증을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5일 오후, 서울 중구에 위치한 회사에서 심장자동충격기와 마네킹을 이용한 심폐소생술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15일 오후, 서울 중구에 위치한 회사에서 심장자동충격기와 마네킹을 이용한 심폐소생술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 심폐소생술 인프라 ‘태부족’

심정지 사고는 각종 심장질환, 뇌혈관질환뿐 아니라 과로, 격한 운동, 과음, 흥분, 질식, 외상, 충격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일어난다. 촌각을 다투는 급성심근경색이나 중증부정맥은 갑자기 심장이 멎을 수도 있어 3~4분 안에 즉각적이고도 집중적인 심폐소생술이 이뤄져야 한다. 국내 심정지 사고 발생 장소는 가정 등을 포함한 비공공장소가 60~70%, 공공장소 20~25%, 나머지는 장소 미상이나 기타로 알려져 있다. 하루 평균 70명 가까이 심정지로 사망하며, 심정지 환자 생존율은 5% 정도에 불과하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응급진료센터 통계를 보면, 응급실 환자는 매년 늘어나는 반면 도착 전 사망(DOA) 환자의 숫자와 비율은 꾸준히 줄고 있는 추세다. 2012년 7만130명 중 476명(0.68%)에서 2017년 9만5318명 중 367명(0.39%)으로 크게 낮아졌다. 응급실 도착 전 사망 환자의 상당수는 심장이벤트(응급실로 실려가는 심장 발작)가 원인이다. 도착 전 사망이 줄어든 이유는 지난 5년간 응급의료 시스템에 1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심폐소생술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등이 높아진 데 따른 효과로 분석된다.

하지만 2016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심정지 응급대처의 필수장비인 자동심장충격기(AED·자동심장제세동기)의 일반인 목격자 사용 건수는 2011년 5건, 2012년 12건, 2013년 19건, 2014년 30건, 2015년 26건 등에 그쳤다. 전체 심정지 건수의 0.1% 수준이다. 중앙응급의료센터 통합응급의료정보 인트라넷에 등록된(등록신고 의무가 있는 장소의 AED만 집계·3월13일 현재) 자동심장충격기는 3만2482대다. 인구에 대비해 보면 대당 약 1500명꼴로, 대당 약 130명인 미국이나 290명인 일본에 비해 열악한 편이다.

■ 사망 위험 높은 중증외상환자에 취약한 응급의료체계

2015년 4월 어느 날 밤 서울 동부지역. 여고생 김모양은 버스에서 내려 깜깜한 4차로 길을 건너다 승용차에 치였다. 의식·맥박·호흡이 없는 상태였지만 곧바로 출동한 119구급대는 김양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서 근처 병원에 도착했다. 집중 심폐소생술과 수액치료로 심박동은 돌아왔지만 머리 쪽 손상이 심했다. 두개골절이 만져지고 동공이 확대된 상태였다. 계속적인 처치로 혈압이 다소 안정된 상태에서 보호자가 도착한 뒤 응급 외상 수술이 가능한 대학병원으로 이송키로 했다. 중증외상 환자를 이송하기 위한 특별한 이송체계가 없었던 때라 일반 구급차에 수액을 주렁주렁 달고 수혈팩을 손으로 짜 수혈하며 이동했다.

이송하는 30여분간 혈압은 점차 낮아졌고, 차량의 진동이 심해 머리와 팔다리에서 나오는 출혈량이 점점 증가했다. 결국 대학병원 응급실 도착 전 심박동이 늘어지고 맥박이 촉진되지 않아 심폐소생술을 계속했지만 응급실에 도착해 손쓸 겨를도 없이 사망했다.

2016년 5월 경기 서부지역. 50대 여성이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 트럭에 치여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검사 결과 갈비뼈 7군데와 복강내출혈(비장열상·비장동맥 급성출혈)이 발생했다. 응급 수혈을 준비하다 환자에게 맞는 혈액이 없어 수혈이 불가능하자 권역 외상센터로 이송할 수밖에 없었다. 외상센터까지의 이동 시간은 최소한 30여분. 일반 구급차로 응급구조사만 태우고 가기에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결국 이 환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구급차에 탑승한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아슬아슬하게 외상센터에 도착한 끝에 목숨은 건졌다. 이 병원 응급의학과장은 “기존 일반 구급차로는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는 데 위험한 상황을 무릅써야 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2014년 3월 경기도 일산 지역. 11세 남자아이가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다 갑자기 쓰러졌다. 어머니는 오후 4시40분쯤 119응급구조센터에 “아이가 쓰러졌다”고 신고했다. 그 후 어머니는 상담원의 지시에 따라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4시46분에 출발한 119구급차는 4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기도를 확보하고 자동심장충격기 사용 2회를 포함해 집중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7분 뒤 아이의 심장이 다시 뛰고 호흡이 돌아왔다. 5시13분 대학병원에 도착해 처치와 기관 내 삽관을 하자 환자가 안정을 되찾아 7시48분 환자가 다니던 다른 대학병원으로 이송하기로 했다. 일반 구급차에 응급구조사와 의사(인턴)가 동행했다. 그런데 8시17분 병원에 도착했을 때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환자가 경련을 일으켰다. 결국 이 환자는 식물인간 상태로 2개월 뒤 다른 재활병원으로 이송됐다. 무리한 병원 간 이동이 치명적인 환자 상태를 악화시킨 원인 중 하나였다.

외상환자의 현장에서 병원 간 이송, 병원과 병원 간의 중증외상 환자 이송은 심정지나 각종 사고의 현장 대처와 더불어 한국 응급의료체계가 해결해야 할 해묵은 과제다. 더욱이 어느 병원의 중환자실에 일단 들어가면 다른 의료기관으로 옮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송 도중 환자가 사망했을 때 법적인 책임 소재가 뒤따르고, 현행 일반 구급차로는 안전한 이송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7년 12월 서울 북부지역. 이모씨(70)는 깔고 자던 전기장판 과열로 난 화재로 얼굴부터 몸통, 다리까지 전신에 70% 이상의 화상을 입었다. 이웃의 신고로 119구급대가 도착했을 당시 의식이 없어 현장 심폐소생술 후 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 병원에서 다시 심폐소생술 후 기도삽관과 응급처치를 시행했으며, 전문적인 치료를 위해 화상전문 병원으로의 이송이 필요했다. 병원 측은 서울대병원에 ‘SOS’를 쳤다. 이송 중에도 중환자 처치가 가능한 서울시중환자이송팀(SMICU) 특수구급차를 부르기 위해서였다. 환자는 미라처럼 온몸이 붕대로 감겨 있었고, 인공호흡기와 약물주입펌프 등 7가지(전해질, 혈압상승제 등) 수액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씨는 SMICU 특수구급차에 탑승한 의료진으로부터 각종 처치를 받으며 화상 전문병원에 약 40분 만에 도착했다. 일반 구급차로는 이송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정부는 열악한 응급의료체계를 정비하기 위해 2013년부터 5년간 1조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전국 36개 권역응급의료센터를 구축했으며, 권역외상센터 또한 올해까지 13개소로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응급환자 이송 문제는 여전한 과제로 남아 있다. 경기 김포 뉴고려병원 최석재 응급의학과장은 “환자를 사고 현장에서, 혹은 1·2차 치료병원에서 3차 의료기관이나 응급·외상 권역센터로 옮기는 이송체계 수준을 지금보다 더 높여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 119구급대 출동에서 현장까지 10분 이상 비율 15%

경북 봉화군에 사는 직장인 최모씨(48)는 지난 1월 중순 불의에 어머니(82)를 여의었다. 모친은 말초성 어지러움증으로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외래 진료를 받으러 다니는 것 외에는 건강상 큰 문제가 없었다. 그날은 오후 2시쯤 마을 경로당에 간다며 나갔는데, 평소보다 귀가 시간이 늦는다는 연락을 받고 퇴근길에 모시러 갔다. 같이 걸어서 귀가하는 길에 집 근처에서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즉시 119에 신고한 뒤 맥박과 호흡이 거의 없어 가슴을 압박하는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최씨의 부인과 옆집 사람들도 뛰어나와 팔다리를 주물렀다. 그러나 구급차는 20여분 뒤에야 도착했다. 자동심장충격기를 사용하고 가슴압박을 계속 시행하며 인근 병원 응급실에 50분 만에 도착했다. 20분 동안 집중적인 심폐소생술과 약물 처치를 했으나 끝내 최씨의 모친은 일어나지 못했다.

2017년 기준 전국 응급의료 취약지는 226개 시·군·구의 44%(99곳)에 달한다. ‘30분 이내 지역응급의료센터 도달이 불가능하거나, 1시간 이내 권역응급의료센터 도달이 불가한 인구가 지역 내 30% 이상인 지역’이다. 이런 응급의료 취약지일수록 고령인구가 많고, 응급의료의 ‘시간과 거리’ 장벽이 높다. 게다가 일반 구급차의 장비와 인력도 열악하다. 심폐기능 감시장치나 자동심장충격기 같은 기본 필수장비 탑재는 2017년 12월1일 개정된 관련 법률에 의해 의무화됐을 뿐이다.

대한응급의학회 신상도 정책이사(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장)는 “119구급대원 출동에서 환자 접촉까지 걸리는 시간이 ‘10분 이상’인 비율이 2016년 기준으로 15.3%나 된다”면서 “구급차가 제때 도착하지 못하는 열악한 곳이 아직도 수없이 많다는 것이 한국 응급의료의 한 딜레마”라고 지적했다.

서울시 보라매병원 홍기정 교수(응급의학과)는 “심정지 후 1분이 경과할수록 사망률은 7%씩 높아지고, 4분이 넘어가면 심장을 살려도 뇌가 망가져 거의 소용이 없다”면서 “현장에서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에 가슴압박과 자동심장충격기 사용을 포함한 심폐소생술을 제대로 시행하면 사망률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자동심장충격기 사용법

심장·호흡정지 때 응급처치…분당 100회 이상 압박

[우리는 충분히 ‘돌봄’ 받고 있는가](4)심정지·중증외상환자들 ‘SOS’…속절없는 응급의료 체계


심장이나 호흡정지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일반인 심폐소생술의 기본 수칙은 우선 119에 신고한 뒤, 가슴을 강하고 깊고 빠르게(1분당 100회 이상) 계속 압박하는 것이다. Y셔츠 세번째 단추 부위, 정확히 말하면 양 가슴의 젖꼭지를 연결한 선의 중간 지점(명치 끝 부위)에 손꿈치를 대고, 다른 한 손을 그 위에 포개어 깍지를 끼고 꾹꾹 눌러준다. 구급대가 도착할 때까지 지속한다. 자동심장충격기(AED)가 있으면 즉시 사용한다.

중앙응급의료센터 응급의료포털 E-Gen(www.e-gen.or.kr)에 가면 전국 읍·면·동 단위의 자동심장충격기 설치 장소와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 방법을 자세히 알 수 있다.


특별취재팀

박효순·홍진수·노정연·이유진 기자공동기획·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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