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적 놀이 즐기는 누리꾼일 뿐이냐, 세력화 가능한 여론집단이냐”

2013.06.04 22:18 입력 2013.06.05 15:24 수정

(3) 일베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

“일베 ‘극우’ 규정 논란… 사이트 폐쇄보다 사회적 논쟁으로 정리해야”

1. “인터넷 하위문화다” 대 “하나의 여론 형성 집단이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NGO학과 교수는 ‘일베’를 하나의 여론형성 집단 혹은 이념 집단으로 규정짓는 것은 성급하다고 봤다. 반(反)다문화, 반여성, 반호남 등의 정서는 일베뿐 아니라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과거부터 늘 존재해왔던 모습이라는 것이다. 민 교수는 일베에서 정치적 성향의 게시물이 큰 호응을 받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자기 안에 있는 어떤 욕망을 누군가가 대신 떠들어주면, 익명성 속에서 이에 동조한다”면서 “하지만 이들은 자극을 원할 뿐이지 자신의 정체성이 노출되는 것은 싫어한다”고 설명했다.

이원재 카이스트(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일베의 ‘익명성과 재미’에 강조점을 둔다. 일베에는 ‘친목 모임 금지’ ‘반말 사용’이라는 규칙이 있다. 이 규칙 아래서 익명성이 보장된다. 익명성이 없다면 극단적인 표현을 통해 얻는 재미 또한 잃게 된다. 이 교수는 “일베 회원들의 관점에서 보면, 여자아이의 치마를 올리는 장난과 같은 심리가 과해진 것”이라며 “지금은 진보를 공격하는 것이 좋은 것인 양 인식되어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디씨>의 저자이자 인터넷문화 연구자인 이길호씨는 일베가 다소 우경화 경향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이 특정한 의지나 목표를 가지고 행동하는지는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일회 회원들이 쏟아내는 각종 극단적인 표현들은 술자리에서나 있을 법한 사적인 것이지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의 특성상 공적인 효과도 동시에 갖는다. 하지만 이씨는 “일베 회원들은 자신이 옳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신념으로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의지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면서 “가령 ‘김치녀(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라는 말은 이들의 느낌이나 인식을 ‘재미’로 표현한 것일 뿐, 한국 여성을 김치녀로 규정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베 현상’에서 한국 사회를 본다]“일탈적 놀이 즐기는 누리꾼일 뿐이냐, 세력화 가능한 여론집단이냐”

하위문화 수준을 넘어선 하나의 여론형성 집단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준영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박사는 누리꾼 개인의 관점에서 ‘놀이’일 수 있겠지만 이들의 공격적 행태는 이미 폭력적 사회 현상의 수준에 들어섰다고 본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공격이나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리틀 싸이’ 황민우군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이 쉬운 예다.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일베 회원들이 갖고 있는 ‘소수자에 의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기고, 이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일본 넷우익(인터넷 우익세력)의 모태가 된 온라인 커뮤니티 ‘2채널’과 상당한 유사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넷우익의 ‘재일 조선인은 일본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과 ‘이주민은 한국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일베의 주장이 같은 원리로 작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유럽의 네오나치즘도 하위문화에서 시작됐다”면서 “일탈적 하위문화로 치부해 면죄부를 주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밝혔다.

2. “일시적 현상으로 곧 줄어들 것” 대 “온라인상에서 반복·확대 출현 지속성 있어”

민경배 교수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생애주기’에 따라 일베 사이트도 쇠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초기에 적은 사람들이 단일한 정체성을 가지고 똘똘 뭉친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중기에는 영향력을 얻는 것과 동시에 다양한 누리꾼들이 해당 커뮤니티로 유입된다. 이로써 초기에 보였던 단일한 정체성은 희석되고 결국 해당 커뮤니티가 분화 혹은 붕괴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민 교수는 “일베 역시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디씨인사이드’에서 이 같은 방식으로 분화됐고, 일베 역시 또 다른 형태로 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문화 연구자 이길호씨는 온라인상에서 늘 각 진영끼리의 싸움이 있어왔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온라인상에서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싸움을 벌여왔다”면서 “온라인상에서 힘의 균형이 이뤄지면 일베와 같은 현상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디씨인사이드의 경우 1000개가량의 갤러리 내부에서 진보와 보수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10년간 유지해온 것이 그 예다. 그는 또 지난 10년 동안 진보가 온라인에서 주류의 목소리를 내왔지만, 새로운 세대가 온라인을 이끌면서 다른 목소리가 나타나는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상진 교수는 일베 현상이 위축될 개연성이 적다고 봤다. 전 교수는 “ ‘자신의 기득권을 앗아간 소수자에 대한 공격’이라는 일베의 행동양식은 근본적으로 사회 불평등이 강화된 데에 있다”면서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이 줄어들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일베 현상이 줄어들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연구자 임재성씨는 일베가 단순히 하나의 사이트가 아닌, 대중이 감히 공개적으로는 말하지 못한 욕망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중이 이주노동자 등에게 갖는 적대심을 일베가 대신해 표출한 것이라면, 이는 언제든지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또 일베에서 나타나는 반다문화, 반여성주의 등의 성향이 강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공격은 민주당 등 정치집단의 반발에 부딪히지만, 이주민·여성 등에 대한 공격을 막아줄 만한 정치집단은 현실에서 그보다 적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박권일씨는 시민교육의 부재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일베 현상은 지속되리라고 전망한다. 자신의 경제·사회적 불안을 야기한 자본과 국가에 저항하지 못한 채 손쉬운 공격 대상으로 소수자를 공격하는 일베식 방식은 시민교육을 통해 바로잡아져야 한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그는 “대학 내 학생운동 등 시민교육이 이뤄지는 곳이 사라지다 보니 청년들이 일베 같은 사이트를 통해 재사회화되는 것”이라며 “사회의 논쟁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교육이 없는 이상 일베 현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18일 서울 안국역 인근에서 고등학생 김시원군이 일베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왜곡에 반발해 ‘5·18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다’라는 대형 손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달 18일 서울 안국역 인근에서 고등학생 김시원군이 일베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왜곡에 반발해 ‘5·18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다’라는 대형 손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3. “오프라인 세력화 예측은 시기상조” 대 “오프라인으로 세력화될 가능성”

이원재 교수는 일베 회원들이 오프라인에서 조직화되기 위해선 ‘분노’뿐 아니라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리더십은 특정한 분노를 가지고 있는 누리꾼 혹은 집단을 이어줄 만한 인물을 말한다. 하지만 신원이 공개되면 극단적인 발언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일베의 구조에서 이러한 리더십이 나타나기 어렵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실제 이 교수팀이 일베 사이트를 분석해본 결과, 인기가 많은 회원일수록 다른 회원과의 관계를 기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인기가 많은 사용자가 여러 집단을 연결하는 리더 역할을 하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장인 ‘아고라’와 정반대의 모습이다. 이 교수는 “일베 회원들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게시물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댓글을 달며 호응하지만 댓글을 달아준 이를 찾아가 통성명하거나 이들이 모일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라면서 “일베가 일본의 우익 인터넷 사이트인 ‘2채널’처럼 현실에서 조직화되는 일은 5년, 10년 뒤에나 가능할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터넷문화 연구자 이길호씨도 조직화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극단적인 발언이 현실에서 용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일베 회원도 잘 알고 있기에 이들이 익명성에 기대어 있다는 것이다. 또 이들이 세력화할 만한 풀뿌리 조직도 없고, 이들의 행동을 촉발시킬 만한 사건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씨는 “미래의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겠지만, 현재의 일베 회원들은 귀찮아서라도 길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오프라인에서 조직화될 가능성을 크게 보는 전문가들은 일베 회원들이 특정 정치세력에 의해 이용되거나 이들과 융화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정재원 교수는 최근 국가정보원의 일베 회원 초청 강연을 그 전조로 본다.

‘5·18 북한군 개입설’을 여과 없이 방송한 일부 종합편성채널의 모습도 일베의 조직화에 촉매가 될 수 있다. 정 교수는 “단순한 논리를 가진 집단은 특정 세력에 의해 길러지기 쉽다”면서 “일베 회원들은 한국 사회를 보수화하고자 하는 특정 권력에 최고의 토대가 된다”고 경고했다.

전상진 교수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가 나타나면 ‘일베현상’은 극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대중이 강력한 지도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자신의 분노를 약자에게 표출하는 파시즘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프랑스 극우정당 지도자 마리 르펜을 추종하는 대중의 모습이 일베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일베가 현재 콘텐츠만 보면 오프라인에서 조직화될 가능성은 없지만, 상업적 이익과 결합하면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거리로 나온 넷우익>의 저자 야스다 고이치도 지난 3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철저한 익명성으로 운영된 일본의 우익 인터넷 커뮤니티 ‘2채널’도 동지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욕망으로 모여들게 됐다”면서 “일베 회원들이 이러한 욕망을 가지지 않을 것으로 단정하는 게 옳은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의 이용자들을 낮춰 부르는 말인 ‘일베충’을 캐릭터화한 ‘베츙이’가 지난달 15, 23일 연세대(왼쪽 사진)와 고려대에 나타났다. | 뉴스1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의 이용자들을 낮춰 부르는 말인 ‘일베충’을 캐릭터화한 ‘베츙이’가 지난달 15, 23일 연세대(왼쪽 사진)와 고려대에 나타났다. | 뉴스1

4. “언론 등이 호들갑 떠는 게 더 큰 문제” 대 “무시한다고 해결 안된다. 진지하게 바라봐야”

이원재 카이스트(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일베에 대한 언론의 손쉬운 접근을 비판한다. 일부 정치적 사안에 대해 우익적인 표현을 하더라도 단지 하나의 인터넷 모임의 주장을 마치 극우 혹은 보수의 여론인 양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는 “일베를 극우 사이트라 부르며 진보의견을 가진 집단과 손쉽게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이들을 극우로 규정하는 것은 일종의 ‘허수아비 오류’”라고 말했다. 일부 모습만을 과장한 채 실재하지 않는 대상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어 “일베의 게시물 내용을 정치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 논란으로 삼기보다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가 어디인가에 대한 논의에 집중해야 한다”며 “그래야 사회적 소통 역량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터넷문화 연구자 이길호씨도 일본 상황을 그대로 한국에 적용하는 언론의 ‘성급함’을 지적했다. 일본과 정치·사회·인터넷 등의 상황이 다른데도, 쉽게 일본의 ‘틀’을 사용해 비교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언론에서 일베를 ‘넷우익(일본의 인터넷 우익세력)’으로 호명해주면 아무 정체성이 없던 이들이 ‘우리가 넷우익이구나’라며 스스로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넷우익 출현에 대한 예방주사를 놓는다는 명분으로 일베를 ‘극우’로 호명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거리로 나온 넷우익>의 저자인 일본 언론인 야스다 고이치는 정반대 주문을 했다. 그는 “일본 우익 인터넷 세력의 모태가 된 ‘2채널’ 내에서 쏟아지는 극단적인 발언에 대해 일본 언론과 지식인들은 ‘소수 바보들의 바보 같은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것은 그들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라며 이를 진지하게 바라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오프라인까지 진출해 세를 불리는 우익세력이 됐다”며 “언론이 일베 현상에 대한 적극적인 보도를 통해 일베와 같은 주장은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다는 사회적 여론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5. “표현의 자유는 지켜져야” 대 “불법적인 발언은 제재해야”

일베로부터 공격을 많이 받고 있는 민주당은 일베 사이트에 대해 법원에 운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신경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일부에서 ‘표현의 자유’를 무기처럼 사용하고 있지만, 최소한의 기본을 어겨서는 안된다”며 법적 대응 배경을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민주당의 ‘일베’ 사이트 폐쇄 신청 논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사이트를 폐쇄할 만한 법적인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사이트 내에 다양한 성향을 가진 글이 존재하는 만큼 일률적인 폐쇄는 역효과만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다만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표현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표현은 구분해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권력에 대한 풍자와 비판은 허용될 수 있어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발언은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사이트 폐쇄에 대한 명확한 처벌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실정법규를 확대 적용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정 발언들이 마음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죄를 남발하는 것은 다양한 발언까지 금지하는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개입설과 같이 공론장에서 알아서 퇴출될 만한 의견을 꼭 법으로 처벌해야 하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이 기회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차별금지법을 마련해 외국인, 다문화가정, 여성,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발언만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차별금지법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으로 피해를 초래할 만한 명백한 위험을 가진 발언을 규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화 연구자 임재성씨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면서도, 그보다 문제가 되는 쟁점에 대해 사회적 논쟁을 이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그는 “홀로코스트(나치의 유태인 대학살)에 대해 왜곡하는 발언을 무조건 처벌하는 독일의 반선동법이 제정되면서 오히려 홀로코스트에 대한 생산적인 논쟁의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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