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조정’ 경찰 반발·위기감 증폭···경찰 내부 기류변화, 왜?

2019.05.10 10:12 입력 2019.05.10 15:23 수정

경찰청은 브리핑 검토 후 취소…민갑룡 경찰청장은 ‘지구대 방문’ 행보

검·경 수사권 조정안의 한 축으로서 공식 대응을 자제하던 경찰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조직 내부에선 최근 검찰 측의 수사권조정안 관련 발언들에 대해 반발하는 기류가 터져나오고 있다. 경찰청 수뇌부도 검찰에 대한 반박에 나설지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0일 경찰청 관계자에 따르면 경찰 내부 인트라넷에선 검찰의 수사권조정안 관련 발언 등에 대해 검찰을 비판하는 글과 댓글들이 잇따르고 있다.

한 경찰관은 ‘검사의 고소사건, 이렇게 바뀔 수 있습니다에 대한 진실’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현재도 검사는 대형 비리 사건같이 폼 나는 것만 수사하고 서민사건들은 다 경찰한테 보내서 처리했지 않나. 왜 이제 와서 일반 시민들 신경 쓰는 척인가”라며 “경찰이 별다른 조사도 없이 사건을 종결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검찰은 김학의 사건처럼 마음대로 혐의 없다고 사건을 종결하나본데, 경찰은 그러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검찰이 지난 8일 대검찰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고소사건 이렇게 바뀝니다’(부제 : ‘재경지검 10년차 현직검사가 Q&A로 알려드리는, 일반 국민들에게 수사권조정이 미치는 영향’)으로 올라온 글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이 경찰관은 검찰의 재수사 요청 문제에 대해 “얼토당토 않은 요청이 아니면 경찰이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동안 말도 안 되는 수사지휘를 해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할 시점”이라며 “불기소할 사건 굳이 송치 받아서 뭐하려고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검사가 시키면 경찰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민주사회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경찰의 기소 요구에 불응할 경우 검사의 직무배제나 징계가 가능하다고 하면 받아들이겠나”고 적었다.

또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가 언제나 정당하고 필요하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이다”,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피신조서)의 증거능력은 불필요한 이중조사와 자백강요, 강압수사를 초래하는 근본 원인이라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등의 주장이 담겼다.

그러면서 “수사권 조정은 어느 한 기관이 아닌 국가 전체의 이익과 국민의 권익을 위한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그러나 검찰의 반발은 그보다는 조직과 개인의 이익을 위함이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고 언급했다.

댓글들은 찬성하는 분위기가 대부분이었다. “경찰수사는 삼류·오류덩어리, 검찰은 절대선이라는 생각하고 쓴 글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기관 대 기관이 통제라는 표현을 계속 쓰는 것도 웃기고, 똑같은 사람이면서 도덕적으로 자신들이 낫다고 착각하는 것도 해괴하다” “수사지휘서 달랑 한 장 붙이고 경찰에 일을 떠넘기던 검찰이 이제 와서 민생사건에 신경을 쓴다니” 등 대체로 검찰 주장에 대해 ‘부글부글’한 모습이 역력했다.

내부 여론이 점점 격화되자 전날 경찰청에선 문무일 검찰총장과 검찰 측의 문제제기에 대해 ‘침묵 모드’를 멈추고 적극 설명에 나서는 브리핑 자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찰청은 오후쯤 브리핑 개최 여부를 저울질하다가 최종적으로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경찰로선 불필요하게 검찰과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어 일단 하지 않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다만 민갑룡 경찰청장이 10일 오후 서울 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를 전격 방문하기로 했다. 서울 시내에서도 가장 일이 많기로 알려져 있는 홍익지구대를 꼽아 경찰 수장이 직접 홍익대 주변을 순찰하고 경찰관들을 격려하겠다는 계획이다. 검찰과 달리 민생에 직결되는 치안 부분을 담당하는 경찰의 모습을 일부러 내보여주는 식으로 홍보에 나서는 전략이 읽힌다.

이처럼 ‘신중 모드’ 속에서도 기류변화가 느껴지는 이면엔 경찰 안팎의 상황 변화가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지난 1일 문 총장의 ‘수사권 조정안에 동의하기 어렵다’ 등 첫 발언이 나온 이후 경찰은 발끈하면서도 애써 침묵을 지켜왔다. 경찰에선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경찰에 수사권을 넘기는 내용의 수사권조정안을 포함시킨 이후 ‘이제 8부능선은 넘어갔다’는 분위기였다. 경찰 입장으로는 지난 50여년 간 해묵은 숙제였던 수사권조정 문제의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컸다.

그러나 문 총장의 발언으로 내부의 반발 기류가 증폭된데다가, 문 총장 발언 다음날인 지난 2일 경찰청이 ‘설명자료’를 내며 곧바로 반박하는 모양새를 띈 것을 두고 ‘검·경 갈등’이 표면화되자 내부에서부터 “뭐하러 싸움을 받아주냐”며 비판이 나오면서 부담이 늘었다는 해석이다.

특히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찰의 1차 수사종결권에 대한 검사의 사후적 통제방안은 마련돼 있지만, 이 우려는 깔끔히 해소돼야 한다. 문 총장의 우려 역시 경청돼야 한다”고 밝히면서 경찰의 위기감은 더해졌다. 여기에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오는 13일 ‘당정청 협의’를 열어 자치경찰제 등 경찰개혁 방안에 대한 후속 논의에 나서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현재의 수사권조정안이 경찰 수사권에 대한 검찰의 통제를 보완·강화하는 식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게 기류가 바뀐 것이다.

일선 경찰들은 안팎의 복잡한 사정에 대해 불만도 내보였다. 경찰청의 한 간부는 “문 총장이 저러는 게 수상했는데 결국 기류가 바뀌고 있지 않냐”며 “경찰청장을 비롯한 수뇌부가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의 모습은 전략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경찰서 간부는 “버닝썬 사건으로 경찰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인데 (통과하려면) 한참 남은 수사권조정안을 두고 지금부터 이렇게 진흙탕싸움으로 보일 필요가 있냐”며 자제를 해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뉴스분석]‘수사권조정’ 경찰 반발·위기감 증폭···경찰 내부 기류변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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