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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안보수사국, 규격 미달 무선도청 탐지기 수의 계약

2024.04.08 16:29 입력 2024.04.08 17:17 수정

무선도청 방지하기 위한 탐지 장비

경찰 요구한 기능과 다른 기능 탑재

7대 1억850만원에 수의계약한 듯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국이 수의계약한 ‘무선도청 탐지 장치’가 경찰이 요구한 규격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무선도청을 방지하기 위한 탐지 장비를 조달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요구했던 기능과 다른 개념의 기능을 탑재한 제품을 선정한 것이다.

8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국은 무선도청 탐지시스템 구축사업을 위해 지난달 28일 국내 보안장비업체 A사와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경찰은 입찰을 공고하며 제시한 제품 규격서에 ‘초광대역 신호 전송기 탐지-초광대역을 사용하는 신호 전송기의 탐지가 가능하여야 함’이라는 조건을 명시했다.

A사 제품 설명서를 보면 ‘초광대역 신호 탐지’라는 내용은 없다. ‘디지털 광대역의 도청탐지 가능’이라는 설명이 있을 뿐이다. A사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3㎓(기가헤르츠) 이상부터 초광대역이라 하고 우리 제품은 6㎓까지 탐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안보수사국이 요구한 규격에 맞는 제품이라는 취지의 말이다.

하지만 초광대역은 A사의 설명처럼 특정 대역 이상을 넘어서는 고대역 주파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매우 넓은’ 광폭의 주파수 대역을 한 번에 사용해 낮은 강도로 전파를 송수신하는 무선 통신기술을 말한다. 초광대역은 UWB(Ultra Wide Band)라고 부르는데 와이파이·블루투스·LTE 같은 통신기술 중 하나다.

이런 기술은 남의 대화를 엿듣기 위한 무선도청 장치에도 쓰인다. 무선도청 탐지는 평상시 통신 주파수 대역을 모두 파악해 저장한 뒤 의심스러운 주파수가 나타나는지 감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초광대역은 강도가 낮고 광폭의 주파수를 사용하므로 무선도청 탐지 모니터에는 ‘잡음’처럼 인식될 수 있다. 이런 특징을 가진 초광대역을 이용한 무선도청이 이뤄지는지 탐지하려면 특유의 기술이 필요하다.

장병준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UWB는 주파수 대역이 500㎒(메가헤르츠) 정도로 넓은 대역을 쓴다”며 “초광대역 도청 탐지라고 하면 넓은 대역을 쓰는 아주 작은 강도의 잡음 같은 도청 신호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어 “이런 탐지 기술이 없으면 UWB를 쓰는 도청 장치는 탐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안보수사국 측은 ‘A사 제품에 초광대역 도청 탐지 기능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질의에 “이 제품이 주파수 호핑(Frequency Hopping) 탐지 기술을 가지고 있어 가능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하지만 여러 대역을 빠르고 강하게 이동하는 통신 기술인 호핑은 초광대역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안보수사국은 A사 제품 7대를 1억850만원에 수의계약한 것으로 파악됐다. A사가 조달청 ‘혁신장터’에 올린 판매 희망 가격은 1대에 1980만원이었다. 업체가 애초 매긴 가격보다 3000만원 이상 낮은 금액으로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안보수사국 관계자는 “A사 제품은 조달청 혁신제품으로 지정돼 수의 계약이 가능하다”며 “타사 제품 중 특허 내역이나 혁신제품으로 지정된 것이 있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검수 과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제품을 받아보고 실제 규격에 맞는지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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