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5) 알파레이디는 없다!

2013.05.10 06:00 입력 2013.05.10 07:22 수정
특별취재팀

한국 사회에 여성 지도자는 많지 않다. 지난 수십 년간 여성 권익 목소리가 커지면서 성공한 여성의 숫자가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아직은 소수이다. 한국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지만 정계, 관계, 법조계, 재계에 포진한 여성은 손꼽을 정도이다. 여성들의 사회적 성공에 발목을 잡은 것은 출산·육아 부담이다.

남성주류 조직문화는 개인기로 돌파가 가능하다. 하지만 육아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해결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회적 돌봄서비스 같은 공동체 차원의 대책이 확충되지 않는 한 여성의 성공 스토리는 요원해 보인다.

■ 권선주 기업은행 부행장
“믿고 맡길 도우미 없었다면 승진 꿈도 못꿔”

[왜 지금 ‘여성 일자리’인가]1부 (5) 알파레이디는 없다!

2011년 초 기업은행에는 첫 여성 부행장이 탄생했다. 수석부행장을 포함해 기업은행 부행장 15명 중 유일한 여성 권선주씨(57)다. 한국씨티은행(3명)이나 SC제일은행(1명)에도 여성 부행장이 있지만 국내 자본 가운데는 처음이다.

권 부행장은 1978년 공채 17기로 입사했다. 55명이 은행에 들어왔고 그중 여성은 4명이었다.

당시 여성들이 으레 그랬듯 여성 동기 3명은 결혼하자마자 바로 그만뒀다. “1998년 처음 지점장이 되자 경영진에서 전화가 왔어요. 여성으로서 어려움이 많을 텐데 쉬운 업무만 하고 어려운 건 옆 지점에 넘겨주라고 했어요. 아무래도 선입견이 있었죠.” 권 부행장은 “문제는 여성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가 적고 신뢰하지 않는 데 있지 성별 차이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직장 내 유리벽·유리천장보다 더 어려웠던 건 육아라고 말했다. 당시에 출산휴가는 1개월밖에 못 갔다.

아들, 딸을 키우기 위해 10년간 한 돌봄 도우미의 손을 빌렸다. 이웃 아주머니였지만 가족처럼 믿을 수 있어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처럼 모시며 퇴근 후에는 저녁도 같이 먹는 사이였다.

낮에는 그분이 자신의 집에 데려가서 아이를 키워줄 만큼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운좋게 그런 도우미를 만나지 못했으면 현재 자리는 불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권 부행장은 회고했다.

밤에 퇴근한 뒤에는 육아에도 노력했다. 그는 “당시 한 손으로 업은 애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 책을 들고 책임자 시험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야근을 하더라도 시댁 제사는 밤늦게라도 꼬박 참석했다. 아이들이 공부에 소홀할까봐 초등학교 6학년까지는 직접 가르쳤고, 소풍갈 때 김밥은 한번도 사먹이지 않고 손수 싸서 보냈다.

■ 유순신 유앤파트너스 대표
“기혼여성이라면 슈퍼우먼이 될 생각 마라”

[왜 지금 ‘여성 일자리’인가]1부 (5) 알파레이디는 없다!

헤드헌팅업체인 유앤파트너스를 이끌고 있는 유순신 대표(56)는 여성계의 대표적인 성공인물로 꼽힌다. 젊은 여성들에게 강연을 하며 멘토 역할을 한다.

그는 직장 여성들에게 일과 가사를 다 잘하겠다는 이른바 ‘슈퍼맘 콤플렉스’를 벗어던지라고 말한다.

유 대표는 1982년 결혼 직후 항공사 승무원 일을 그만뒀다. 여학생들은 대학 3학년 때 약혼하고 4학년 때 시집가는 게 최고였던 시절이다. 하지만 그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도 일하는 외국 항공사 여직원들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를 낳은 뒤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었고 결국 재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이를 낳고 일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힘들어 마음속에 항상 사표를 품고 다녔다고 한다.

친정어머니도 힘들고 자신도 힘든데 굳이 다녀야 하나. 남편이 멀쩡한 대기업에 다니는데 왜 아내가 일을 하느냐, 집에 문제가 있느냐는 말까지 들었다. 하지만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만두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것 같아서 버텨냈다. 또 여성 후배들에게 멘토가 되면서 사명감 같은 것도 생겼다.

후배들을 향한 충고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여성은 업무 성과도 높고 인간관계도 좋은데 정작 책임자로 올리려고 할 때 대표성을 띨 만큼 리더십이 있을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남성 위주 사회에서 남자 직원은 저녁에도 약속을 잡으면서 인맥 관리를 잘하는데 다수의 여성들은 ‘주어진 일만 잘하면 되지 그렇게까지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하느냐’ ‘왜 내 일이 아닌데 이런저런 일을 시키느냐’고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간부까지는 한 분야만 파면 되지만, 임원이 되려면 전체를 아우르는 리더십과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른바 더 강한 여성이 돼야 조직에서 살아남는다는 논리다.

다만 유 대표도 “육아 등 가사노동 부담이 큰 여성들이 일터에 남아서 네트워크를 만들기란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유 대표는 “기혼여성이라면 슈퍼우먼이 될 생각을 하지 마라. 집안일이든 바깥일이든 둘 다 잘하려다가 본인이 망가진다. 못하는 건 못한다고 ‘노’라고 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게 현명하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슈퍼맘’ ‘알파레이디’라는 이미지를 지키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게 유 대표의 지론이다.

유 대표는 요즘 마케팅, 서비스 같은 여성 친화적인 비즈니스가 늘어서 감성적인 노동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성평등이라는 혜택 차원이 아니라 사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여성을 쓰는 일이 늘어나는 것은 긍정적 신호라고 봤다. 그는 기업에도 “기업들이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똑똑한 여성인력을 관리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여직원의 아이는 회사의 아이로 돌봐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
“친정엄마, 육아분담 덕분에 CEO”

[왜 지금 ‘여성 일자리’인가]1부 (5) 알파레이디는 없다!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49)는 행정고시에 합격해 교육부 사무관을 지내다가 3년 만인 1999년 한경희생활과학을 창업한 여성 최고경영자(CEO)다. 사업을 시작한 건 둘째가 태어난 뒤였다. 맞벌이였던 한 대표는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를 함께 모시고 살았고, 가사 도우미도 한 명 있었다. 본인이 일을 해도 주변에서 육아를 도와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셈이다.

한 대표는 “첫째 아이 때부터 집안 살림은 주로 도우미 아주머니가 했다”며 “육아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주로 하고 친정어머니가 거드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가끔 늦어질 때에도 집안에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일하는 엄마로서 아이를 직접 돌보지 못한 부담감은 항상 가지고 있다. 그는 “통상적으로 엄마들은 ‘반드시 내가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아빠들보다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극성스러운 엄마여서가 아니라 ‘일하는 엄마라서 정보가 뒤처졌다’는 말을 듣는 게 싫었다”며 “다만 경영자로서 시간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 가능했지 일반 직원이었으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우리 문화에서 엎드려 걸레로 청소하기가 싫어서 편하면서도 깨끗하게 청소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스팀청소기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5급 공무원만 해도 성공적이지만 여전히 부인, 며느리로서 넘지 못할 벽이 있었고 그게 오히려 창업의 계기가 됐다고 한다. 한 대표는 “중소기업 여성도 출산하고 일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김희정 여성가족위 위원
“밤 늦게 돌봐준 어린이집 도움 커”

[왜 지금 ‘여성 일자리’인가]1부 (5) 알파레이디는 없다!

국회의원 300명 중 여성은 47명이다. 비율은 15.7%. 김희정 여성가족위원회 위원(42·새누리당)도 그중 한 명이다.

지난 2일 오전. 그는 첫째 아이를 안고 출근했다. 한국 정치권에선 낯선 풍경이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원(17대) 배지를 달고 결혼한 그는 지난해 5월에는 헌정사 처음으로 회기 중에 출산한 기록을 갖고 있다.

선출직이라는 특성상 출산휴가도 며칠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김 의원은 “4·11 총선 때 ‘당선되더라도 애 낳고 1년 쉬면서 월급만 챙길 것’이란 일부 후보의 비판을 받고, 또 의원직을 길게 비울 수가 없어서 애 낳고 10일 만에 국회로 출근했다”고 밝혔다. 그는 2009년 초대 인터넷진흥원장 때도 첫째 아이를 출산한 직후 디도스 사건이 터지면서 1주일 만에 일터로 나왔다.

그는 육아문제에서는 1.5세대에 속한다. 주로 친정엄마에 의존했던 선배 세대들을 1세대라면 그는 친정엄마와 제도적 도움을 동시에 받는다.

첫아이의 구원투수는 친정엄마였다. 첫아이 때는 친정엄마가 서울에 1년 동안 올라와 있었다. 2011년 청와대 대변인이었을 때는 오전 6시50분쯤 어린이집에 가서 교사든 누구든 먼저 온 사람이 있으면 고구마, 떡, 계란, 우유를 넣은 아침 도시락을 전하며 아이를 밤 10시까지 맡겼다.

둘째 아이도 친정엄마에게 6개월 맡긴 뒤 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다. 오전 8시쯤 육아도우미가 오면 시간되는 대로 남편이나 자신이 맡기고 출근한다. 주말마다 지역구인 부산에 아이를 데리고 간다. 특히 5월처럼 지역행사가 많은 철에는 아예 둘째 아이는 친정에 맡겨둔다.

김 의원은 “이유식이나 기저귀 주문 서비스, 마트에서 전화배달 쇼핑처럼 선배 세대보다도 세상이 편리해져서 일·가정 양립이 가능해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식이 아이를 낳으면 부모가 봐주는 시대는 우리 세대로 끝나야 한다. 앞으로 국가가 보살피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17대 국회 때 ‘파파 쿼터제’라고 해서 육아휴직 최대 12개월 가운데 아버지도 일정 이상을 쓰게 하자는 법안을 내기도 했다. 지난 대선 때 아버지도 별도로 1개월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하자는 ‘아빠의 달’ 공약은 당론으로 추진하고 있다.

■ 특별취재팀 전병역(산업부)·김재중(정책사회부)·남지원(사회부)·이혜인(전국사회부)·이재덕(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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