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지키며 어찌 사업 하겠냐며 되레 짜증… 노동경찰 이름뿐”

2015.07.16 22:10 입력 2015.07.16 23:02 수정
강진구 노동전문기자(공인노무사)

(4) 종이호랑이 전락한 근로감독관

▲ 노동법 지식 부족하고
행정지침에만 의존
배당사건 조기 종결하려
노골적 사측 편들기도

“근로감독관 하면 사업주들이 엄청 무서워할 것 같죠? 노동청에 한 번 다녀온 사업주들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아요. 감독관이 체불금품을 알아서 깎아주면서 노동자에게 합의하라고 유도하니 오히려 체불 사업주들은 감독관이 고마운 존재가 될 때도 많죠.”

수년 전 지방노동청에서 근무한 고용노동부의 고위공무원 ㄱ씨(49)는 근로감독관이 ‘노동경찰’이 아니라 ‘체불임금 조정관’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한국이 임금체불에 가장 관대한 나라일 것”이라며 “사업주들이 임금을 체불해도 큰 범죄로 생각하지 않고 체불임금의 70~80%만 주고 합의하면 없던 일로 처리되니 누가 근로감독관을 무서워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 노동경찰보다 체불조정관

노동부가 2010~2014년 5년간 최저임금법을 어긴 4만8349건을 적발했지만 사법처리를 위해 검찰에 이송된 것은 55건에 불과했다. 최저임금 미지급은 헌법으로 보장된 노동자 기본권을 무시하는 행위지만 현실에서는 경범죄만도 못하게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외려 근로감독관을 통하면 미지급 임금을 다 주지 않고도 합의를 할 수 있다 보니 악용하는 사업주들도 있다.

하지만 노동현장에서 제기되는 근로감독관 문제는 체불임금에 관대한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상당수 감독관들은 노동법의 엄격한 집행자라는 본연의 직분에서 벗어나 배당 사건을 조기에 종결짓기 위해 노골적으로 사업주 편에 서서 노동자들을 압박하기도 한다.

민주노총 일반노조 최강연 노무사는 지난해 초 서울동부고용노동지청을 찾아갔을 때 겪은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하루 17시간 가까운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10년 넘게 제대로 수당을 못 받아온 강동구청 폐기물처리업체 미화원노조 조합원들을 대리해 노동청을 찾아갔어요. 임금체불, 부당노동행위, 단체협약 위반, 근로계약서 미교부, 취업규칙 미게시 등 죄목이 좀 많기는 했죠. 그런데 근로감독관이 진정 내용을 쭉 훑어보더니 ‘대한민국에서 노동법을 다 지키면 어떻게 사업을 하겠느냐’고 갑자기 짜증을 내는 겁니다. 정말 황당했습니다.”

■ 헌법 위에 있는 행정지침

근로감독관이 정책적 고려로 만든 행정지침을 사건 처리의 절대적 기준으로 인식하는 것도 문제다. 헌법 32조에 모든 근로조건은 법률로 정하도록 돼 있지만 감독관에겐 행정지침이 우선되는 것이다.

김모 노무사(30)는 지난 3월 분양대행사 퇴직 직원 ㄴ씨를 대리해 노동청을 찾아갔다. ㄴ씨는 한 달에 이틀만 쉬고 주말에도 밤늦게까지 일하고 한 달에 100만원을 받았다. 회사에선 “ㄴ씨는 노동자가 아니라 분양실적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개인사업자”라며 연장·야간·휴일수당과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김 노무사가 계산해보니 체불금액만 1억원이 넘었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은 “‘떴다방’으로 불리는 기획부동산(분양대행사) 직원은 노동자로 인정하지 말라는 내부 지침이 있다”며 “진정해봐야 내사종결할 수밖에 없다”고 손사래부터 쳤다. 누가 만든 지침이냐고 묻자 “검찰과 본부(고용노동부)가 협의해서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청에 진정하거나 검찰에 고소해봐야 마찬가지 결과가 나올 테니 정 억울하면 민사소송으로 가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노동자에게 유리한 법원 판례가 있어도 노동부가 종전 지침을 바꾸지 않는 한 근로감독관들은 오불관언하기 일쑤다. 택시 부가세 경감분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는 문제를 둘러싼 택시업계의 해묵은 노사분쟁도 그런 사례다. 조세특례제한법은 택시업계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부가세 납부액을 90% 줄여주고, 이 경감분을 택시기사 처우 개선과 복지 향상에 사용토록 했다. 하지만 택시회사들은 기사들의 반발 속에 경감분을 최저임금(정액급여)에 포함시켰고, 노동부도 이를 승인했다. 올 2월 대법원은 ‘택시 부가세 경감세액을 최저임금에 산입하는 것은 위법행위’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감독관들은 택시기사들의 체불 진정이 잇따르자 ‘노동부 지침이 바뀌지 않았다’며 종전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이미경 조직국장은 “노동부 근로기준정책국에 언제 지침을 변경할 거냐고 질의해도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공허한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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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적인 포괄임금제 묵인 방조

장시간 연장근로가 불가피한 사업장에서 복잡한 수당을 손쉽게 계산한다는 명분으로 널리 퍼져 있는 포괄임금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은 근무시간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효력을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은 계약서에 포괄임금 문구만 있으면 구체적인 사정도 들으려 하지 않고 사용자를 두둔하다 도마에 오르고 있다.

지난해 9월 인천 아시안게임 기간에 선수단 수송 버스를 운전했던 ㄷ씨는 계약서엔 하루 10시간 근무하는 걸로 돼 있었지만 실제로는 경기가 지연돼 하루 12시간씩 근무하는 날이 많았다. 노무사 도움을 받아 그는 초과 운행시간을 날짜별로 체크해 노동청에 제시했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은 ‘포괄임금계약의 경우 초과수당을 요구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4월 외식매장에서 10개월간 근무하다 퇴직한 김모씨는 “근로감독관이 ‘구두로 포괄임금에 대해 설명했다’는 사용자 말만 믿고 312시간이나 되는 연장수당을 어물쩍 넘어가려 해 하마터면 밀린 임금을 못 받을 뻔했다”고 털어놨다. 내부 지침으로 문제를 처리하려다 법원 판례를 들이밀자 뒤늦게 물러선 사례였다.

■ 노동법리도 모르는 감독관

노무법인 로맥의 문영섭 노무사는 지난해 8월 서울강남노동지청에 퇴직금 미지급 사건을 진정했다가 ‘전출’과 ‘전적’을 구분하지 못하는 근로감독관 때문에 소송까지 가야 했다. 2009년 입사한 의뢰인이 회사 지시로 2011년부터 미국법인에 근무하다 퇴사했는데 감독관은 미국법인 근무는 근속기간에서 제외했다. 별도 독립 법인이라 연속된 근속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문 노무사는 “회사의 ‘전출’ 명령을 받고 해외에서 근무한 것을 감독관은 근로관계가 종료된 뒤 다른 회사로 옮겨간 ‘전적’으로 판단한 것”이라며 “결국 소송까지 가서 제대로 된 결정을 얻어내는 데 1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근로감독관이 잘못된 노동법 지식을 갖고 ‘진정 내봐야 이기기 어렵다’며 노동자들에게 합의를 권유하다 분쟁을 키우기도 한다. 노무법인 굿컴퍼니 김희영 노무사는 “수습노무사 시절 ‘계절적 비수기 때 휴직한 일용직 노동자는 퇴직금을 안 줘도 된다’고 결정한 감독관 때문에 전화로 장시간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며 “일용직에 대한 기본적인 판례나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인천의 노동법률상담소에서 근무하는 최현아 노무사는 “감독관들이 자신도 없고 사유를 구체적으로 적으면 문제가 될 것 같으니 무혐의 사유를 ‘증거불충분’ 또는 ‘혐의 없음’으로 적어서 통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유상철 회장은 “근로감독관들이 노동인권의 파수꾼이라는 인식보다 사건을 조기에 털어내는 데 급급하고 있다”며 “노동법 지식이 부족하고 행정지침에만 의존해 사용자 편을 드는 경우가 많다 보니 노동자들의 불신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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