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6건씩 처리… 민원 기록 제대로 볼 시간도 없어”

2015.07.16 22:08 입력 2015.07.16 22:11 수정
강진구 노동전문기자

전 근로감독관의 하소연

▲ 사업장 지적사항 많으면
야근하고 주말에도 일해야
부담 줄이려 타협 권유해

전직 근로감독관 ㄱ씨는 지난 14일 “노동자들이 감독관을 불신하는 이유를 알지만 우리 속사정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에서 30여년간 재직하다 지난해 퇴직한 그는 경향신문과 만나 “수도권 지역의 경우 감독관 한 명이 보통 70~100건의 사건을 갖고 있고 하루에 오전 2건, 오후 4건 정도 처리해야 한다”며 “제대로 기록을 들춰보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기록은 산더미같고 사건 처리가 지연돼 민원이 발생할 것을 생각하면 체불 사업주 형사처벌보다는 양자가 합의해서 가급적 사건을 조기 매듭짓도록 분위기를 잡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ㄱ씨는 근로감독관들의 사업장 지도·점검이 지나치게 형식적이라고 불만이 터져나오는 배경도 설명했다.

“사업장 점검을 나가면 임금·휴일근무·단협 등 전반적인 사항을 지도하게 되죠. 감독관이 후속조치 이행 사항까지 점검해야 하는데 문제는 지적사항이 많을수록 자기 일이 늘어나는 겁니다. 야근하고 주말에도 나와서 일해야 하는 감독관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죠.”

그는 “기업 인사담당자들이 처음에 감독관들이 점검 나온다고 하면 이것저것 잔뜩 서류를 준비해 놓지만 한 번 점검을 받고 나면 요령이 생겨서 다음부터는 감독관들이 빨리 일을 마치고 돌아가도록 사소한 지적사항 몇 가지를 미리 준비해서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공단지역에서 근로감독관들이 불법파견을 알고도 공공연히 묵인하고 있다는 지적에도 그는 할 말이 많았다.

“사내하도급 점검·지도를 위해 공장에 나가보면 한눈에 봐도 100% 불법파견이구나 하는 느낌이 와요. 명찰만 다를 뿐 원청에서 다 작업 지시를 하는 거죠. 하지만 형사처벌하려면 생각을 한 번 더 하고 망설이게 돼요.”

ㄱ씨는 “혐의를 입증하고 조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불법파견 판정 기준이 까다로워서 일이 엄청나게 늘어난다”며 “결국 사업주에게 문제 삼지 않을 테니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지시하는 선에서 타협하게 될 때도 적잖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 후라고 했다. 그는 “감독관들이 돌아가고 나면 사업주들이 파견이나 용역 노동자들에게 ‘정규직으로 전환을 원하지 않는다’는 확인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하곤 한다”며 “비정규직들은 당장 일을 계속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대부분 사업주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불법파견 근절을 위해서는 현장 지도를 나가는 감독관에게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주고 불법파견 판정 기준을 쉽게 만들어 노동자들에게도 ‘‘내가 법으로 가면 이길 수 있겠구나’ 하는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노조에 대한 근로감독관들의 부정적 시각에 대해서도 “솔직히 모든 근로감독관들이 균형 잡힌 사고를 갖고 있다고 하긴 어렵겠지만 더 큰 문제는 감독관들을 지휘하는 노동부 고위간부들의 인식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부 내에서조차 ‘노조가 만들어지면 그 사업장은 끝’이라는 편향된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다”며 “노동부에서 교육업무를 담당했던 한 간부는 ‘근로자’ 대신 ‘노동자’라는 표현을 쓰면 얼굴색이 달라지고 격하게 싫어하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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