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상 탑차’ 택배기사 이렇게 9년째…“허리가 남아나지 않아요”

2021.05.09 21:03 입력 2021.05.09 21:11 수정

‘저상 탑차’ 택배기사 이렇게 9년째…“허리가 남아나지 않아요”

하루 400개 배송 권지훈씨
“복대·무릎 보호대는 필수
디스크 생겨 시술도 두 번”

“물건 한 번에 다 못 실어”
저상 탑차 중지 청원글도

권지훈씨(38)는 이미 2012년 9월부터 이른바 ‘저상 탑차’로 택배 배송을 해왔다. 권씨가 일하는 경기 김포 신도시의 한 아파트 단지가 그해부터 택배차량의 지상 출입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지하주차장은 제한 높이가 2.3m라 탑차 높이만 1.8m인 일반 차량은 진입이 불가능했다. 권씨는 9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당시 1.8m 높이의 차량을 1.27m 높이의 저상 탑차로 바꾸기 위해 330만원을 부담해야 했다고 말했다.

돈만 문제가 아니었다. 신장 178㎝의 그가 1.27m 높이의 저상 탑차에서 택배 물건을 싣고 내리기 위해서는 허리를 굽히는 것으로는 모자라 무릎을 꿇어야 한다. 하루 평균 400여개의 택배를 배송하는데 복대와 무릎보호대는 필수다. 디스크가 생겨 두 차례 시술을 받기도 했다.

8년이 지난 지금 서울 강동구 고덕동 A아파트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택배기사들에게 차량을 2.3m 높이의 지하주차장에 출입 가능한 저상 탑차로 바꾸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작 저상 탑차를 운행 중인 택배기사들은 저상 탑차가 제대로 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를 중심으로 같은 논란이 있었을 때, 2019년부터 지상공원형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높이를 2.7m 이상으로 만들 것을 의무화하는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고덕동 A아파트처럼 그 전에 건설이 시작돼 바뀐 규칙이 적용되지 않은 아파트가 대다수다. 전국택배노조가 택배기사 23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지상 출입을 금지하는 아파트는 179곳(중복 포함)으로 집계됐다.

지난 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택배사는 갑질 아파트 택배 요금 인상하고, 노동부는 저탑차량 운행중지 명령을 내려주실 것을 청원합니다’라며 글을 올린 택배기사 B씨도 권씨와 같은 고충을 호소했다. 저상 탑차로 배송하고 있다는 B씨는 “하루에 3~4번씩 30분간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상자를 정리한다. 허리가 남아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물류터미널에 들러야 하는 횟수도 늘었다. B씨는 “(높이가) 1.8m인 차량은 어떻게든 짐을 욱여넣을 수 있었는데, 1.27m인 저탑차량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한 번에 짐을 다 실을 수가 없다”며 “저탑차량으로 운행하면서 물건을 싣기 위해 터미널에 하루에 한 번씩 더 가야 한다”고 썼다.

택배노조는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신선식품 위주로 배송을 거부하는 부분파업을 예고했다. 이들은 지상공원형 아파트 단지들의 택배차량 지상 출입 금지 조치 해결을 위해 택배사와 노동부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파업 돌입 시기는 ‘불가피하게 결행해야 하는 상황’을 위원장이 판단해 정하기로 했다.

권씨는 “문 앞 배송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택배보관함을 운영할 수도 있고 신체에 부담이 가는 만큼 수수료를 올려주는 방법도 있다. 저상 탑차 비용도 택배사 등이 나눠서 부담할 수 있어야 한다”며 “같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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