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최저임금 대폭 인상’ 물결

2023.04.26 13:51 입력 2023.04.27 00:42 수정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2021년 총선 당시 ‘최저시급 12유로’ 공약을 내걸고 지지를 호소했던 포스터. 지난해 10월 최저시급이 12유로로 인상된 뒤 “약속을 지켰다”는 문구가 추가돼 있다. 독일 사회민주당 제공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2021년 총선 당시 ‘최저시급 12유로’ 공약을 내걸고 지지를 호소했던 포스터. 지난해 10월 최저시급이 12유로로 인상된 뒤 “약속을 지켰다”는 문구가 추가돼 있다. 독일 사회민주당 제공

최근 전 세계적으로 최저임금 인상 기조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물가, 금리 등이 급등하면서 실질임금이 감소하자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이 잇따르고 있다.

불평등과 빈곤 감소를 위한 ‘처방전’으로 최저임금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노총은 내년 최저임금 노동계 요구안을 1만2000원으로 제시한 근거 중 하나로 각국의 최저임금 인상 흐름을 꼽았다.

유럽연합, 최저임금 올리는 ‘입법지침’ 채택

유럽연합(EU) 의회는 지난해 10월19일 ‘적정 최저임금에 관한 입법지침’을 채택했다. 회원국은 이 지침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입법지침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최저임금의 적정성 확보다. 지침은 중위임금의 60%, 평균임금의 50% 등의 지표를 적정 최저임금 수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회원국 대부분의 법정 최저임금은 이 지표보다 낮다. 다시 말해 향후 몇 년간 회원국 최저임금이 인상될 가능성이 크다. 유럽의회 녹색당그룹 무니르 사투리 의원은 “이 지침으로 2500만명의 노동자 임금이 20% 상승하고, 남녀 임금 격차도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침은 또 단체협약 적용률이 80%에 미치지 못하는 회원국은 이 비율을 높일 수 있는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노동조합이 사측과 단체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을 맺는 것이 최저임금을 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다시, 최저임금③]세계는 지금 ‘최저임금 대폭 인상’ 물결

EU 회원국인 독일은 지난해 10월 최저시급을 10.45유로에서 12유로로 인상했다. 2021년 9.6유로였던 독일 최저임금은 지난해 1월 9.82유로, 지난해 7월 10.45유로로 각각 인상됐다. 이후 석 달 만에 최저시급은 다시 12유로로 올랐다. 1년 10개월 만에 최저임금이 25% 인상됐다. 독일이 빠른 속도로 최저임금을 올린 것은 2021년 말 새로 출범한 ‘신호등(사회민주당-빨강·자유민주당-노랑·녹색당-초록) 연립정부’가 연정 협약에서 최저임금을 12유로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올해 1월부터 월 최저임금을 지난해보다 8% 오른 1080유로로 올렸다. 지난해 인플레이션으로 식품,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것을 반영했다.

비(非) EU권 국가인 영국도 23세 이상 노동자 최저시급을 이달부터 10.42파운드로 10%가량 인상했다. 호주는 2022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적용되는 최저임금을 5.2% 인상했다. 이는 2006년 이후 최대 인상률이다.

미국 곳곳에서 보이는 최저임금 인상 흐름

미국에서도 최저임금을 끌어올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나오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연방 최저임금을 2025년까지 15달러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했다. 당시 연방 최저임금은 2009년 이후 7.25달러를 유지하고 있었다.

연방 최저임금 인상안이 의회 반대에 부딪히자 바이든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지난해 초 연방정부 노동자, 연방정부와 계약을 맺은 업체 소속 노동자들의 최저시급을 15달러로 인상했다. 이 행정명령으로 37만명의 노동자가 임금인상 혜택을 받게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 패스트푸드 업체 노동자들이 지난해 AB257 법안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Fight for $15’ 트위터 갈무리

미국 캘리포니아 패스트푸드 업체 노동자들이 지난해 AB257 법안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Fight for $15’ 트위터 갈무리

연방 최저임금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중에도 주별 최저임금은 계속 올랐다. 50개 주 중 23개 주에서 올해 1월부터 최저임금이 인상됐다. 인상 폭이 가장 큰 주는 네브래스카주로, 9달러이던 최저시급이 10.5달러로 올랐다. 세바스티안 마르티네즈 미국 경제정책연구소 보조연구원은 지난해 말 CNN에 “높은 인플레이션은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분명히 보여준다”며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도 혼자 사는 성인이 시급 15달러를 받고 생활할 수 있는 카운티는 없었다”고 말했다.

법정 최저임금 인상과 별개로 산별 최저임금을 올리려는 시도도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최저시급이 올해 기준 15.5달러로 미국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이 주가 정한 최저임금 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지난해 ‘패스트푸드 책임 및 표준 회복법(AB257)’을 통과시켰다. 이 법으로 맥도널드·도미노피자·서브웨이 등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산별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는 교섭 틀이 법제화됐다. 프랜차이즈(원청사)를 대표하는 2명, 프랜차이즈 점주를 대표하는 2명, 노조 대표 2명, 노동시민단체 대표 2명, 캘리포니아 주 정부 대표 2명 등 총 10명이 교섭을 진행해 올해 최저시급을 최대 22달러까지 높일 수 있도록 했다. 원청이 교섭 테이블에 참여해 산별 최저임금 인상의 실효성이 보장된다.

프랜차이즈 업계는 이 법을 무효로 하기 위해 주민투표를 발의했다. 이 때문에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내년 11월까지 법의 효력은 잠정 중지됐다. 주민투표에서 이 법을 지지하는 주민들이 더 많으면 미국에서도 산별 최저임금 교섭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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