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렉시트(기레기+탈출)’ 탈출구는 공익·신뢰

2022.10.06 06:00 입력 2022.10.06 06:39 수정

늘어나는 젊은 기자들 ‘탈언론’

[창간기획] ‘기렉시트(기레기+탈출)’ 탈출구는 공익·신뢰

젊은 기자들이 언론사를 떠나고 있다. 떠난 동료를 두고 ‘기렉시트’(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기레기+탈출)에 성공했다며 부러워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정보 접근성이 높아진 시대, 단순히 과거 누렸던 명성을 잃은 기자들의 ‘배부른 소리’로 치부하긴 어렵다. 기자들의 ‘탈언론’ 행렬은 의제 설정, 감시·비판 등 언론의 역할이 위기에 처했다는 ‘빨간불’이다. 이는 뉴스의 질 저하 → 뉴스 신뢰도 하락 → 민주주의 약화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젊은 기자들은 왜 떠나는 것일까. 이유를 찾기 위해 경향신문은 서울 주요 신문·방송·통신사의 3~13년차 취재기자 17명을 대상으로 일대일 심층 전화인터뷰를 했다. 조사 참여자는 신문사 9명·방송사 6명·통신사 2명이었고, 20대 1명·30대 15명, 40대 1명이었다. 탈언론 행렬은 높은 업무강도와 낮은 워라밸 때문만이 아니라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미디어 변화 적응 못한 언론계
“대기업 광고 끊으면 망하는 구조
”새 수익모델 창출 실패에 ‘절망’

과거에 갇힌 언론사

언론사들이 수용자 및 미디어 환경 변화 대응에 실패했다는 게 조사 참여자들의 공통 의견이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1년 언론 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종이신문 이용률은 2011년 44.6%에서 지난해 8.9%로, TV 뉴스 이용률은 95.3%에서 83.4%로 줄었다. 반면 지난해 네이버 등 인터넷 뉴스 이용률은 79.2%, 유튜브 등 동영상 뉴스 이용률은 26.7%로 매해 성장했다. 그럼에도 언론사들의 주 수익모델은 대기업 광고라는 과거 방식에 머물러 있다.

조사 참여자들은 수익모델 창출 실패를 ‘절망’으로 인식했다. 7년차 기자 A는 “언론사는 대기업이 일종의 ‘보험’을 들기 위해 집행하는 광고에 의존한다. 독자는 포털과 유튜브로 옮겨갔다”며 “산업적으로 언론사는 반등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6년차 기자 B도 “대기업이 광고 끊으면 망하는 구조”라며 “대기업 눈치를 보지 않고 언론의 가치를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했다. 7년차 기자 C는 “문제는 대기업 광고 이외의 수익모델 창출을 위한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다른 언론사 상황도 비슷하기 때문에 아예 언론계를 떠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사는 조직문화 변화에도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0년차 기자 D는 “일부 선배들은 아직도 취재원들에게 ‘우리가 보도해주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라는 태도를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이 배에서 뛰어내리지 않는다면, 저들과 함께 늙어가게 될까 두렵다”고 덧붙였다. 5년차 기자 E는 “상명하복의 문화가 강해, 사기업에서 문제가 될 법한 직장 괴롭힘이 여기선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고 전했다.

일하는 방식도 변하지 못했다. 각 언론사는 부족한 인력으로 방대한 출입처의 뉴스를 다루는 기존 방식을 고수한다. 종이신문·TV 뉴스의 품질을 유지하는 동시에 포털·동영상·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에서 조회 수도 높이는 전략을 취한다. 10년차 기자 F는 “기사 소비 방식이 바뀌었는데, 기사 생산 방식은 그대로”라며 “과거 방식으로 더 많은 기사를 생산하려니 기자들만 죽어난다”고 말했다. 12년차 기자 G도 “기자 한 명을 갈아넣어서는 좋은 기사를 쓸 수 없는 구조”라며 “하지만 회사는 기자 한 명에게 모든 것을 주문한다”고 토로했다.

조직 문화도 업무도 ‘과거 방식’
포털·플랫폼 사업자 하청 전락“
기자 갈아넣어 좋은 기사 못 써

네이버·유튜브의 하청업자

[창간기획] ‘기렉시트(기레기+탈출)’ 탈출구는 공익·신뢰

언론사가 ‘네이버·유튜브의 하청업자’로 전락한 것도 탈언론을 부추기는 요소다. 포털은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뉴스 유통의 주도권을 쥐었고, 조회 수를 높이는 흥미 위주의 기사가 크게 늘었다. 포털 기사의 40%는 자체 취재 없이 쓰인 것이라는 연구 결과(김창숙 이화여대 연구교수 등, <한국형 모바일 포털 저널리즘의 타블로이드화>)도 나왔다. 4년차 기자 H는 “우리 회사는 우라까이(베끼기를 뜻하는 은어)로 조회 수를 높이는 연성뉴스만 쓰는 직군을 별도로 운영한다”며 “내가 공들여 취재한 기사보다 우라까이 기사가 더 유통되는 걸 보면 ‘내가 지금 여기 왜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SNS를 통한 가짜뉴스 유포 등도 언론의 위기를 부채질한다. CNN 기자 출신 노벨 평화상 수상자 마리아 레사는 최근 국내 강연에서 “소셜미디어는 좋은 저널리즘에 대해 보상하지 않고, 쓰레기에 대해 보상을 해준다”고 말했다. 외부 환경이 불리한 방향으로 흐르는 속에서도 F기자는 “내부 혁신을 안 해온 언론사가 포털 등 외부 환경에 손가락질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일부 언론사는 환경 변화에 비교적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우려도 크다. 13년차 기자 I는 “변화된 미디어 시장에 적응한다면서 ‘어떻게 맛깔스럽게 포장해서 전달할까’만을 고민한다. 프리랜서 직군을 데려다가 빨리빨리 조회 수가 잘 나오는 콘텐츠를 만들라고 주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과정에서 감시·견제 등 언론의 제 역할을 잃었다”고 했다.

”정치 입장따라 ‘가짜뉴스’ 공세
공들여 기사 써도 ‘기레기 낙인’
번아웃 겹친 젊은 기자들 “탈출”

기자는 왜 ‘기레기’라 불리나

‘기레기’라고 불리는 이유에 대해 조사 참여자들은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기사의 질이 낮거나 언론사의 정파성이 강한 탓이라고 보는 의견과 여론 지형 자체가 정파적으로 형성된 탓이라고 보는 의견이다. 8년차 기자 J는 “얼토당토않은 표본으로 진행한 여론조사를 근거로 ‘기업 총수를 사면해줘야 한다’고 쓴 기사가 있다”며 “‘그러고도 네가 기자냐’라고 하면, 부끄러워진다”고 말했다. 11년차 기자 K는 “수해로 피해 입은 사연을 보도하면서 ‘단독’이라고 다는 게 맞나”라며 “단독·속보 경쟁 때문에 피해자와 약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9년차 기자 L은 “포털에서 돌아다니는 파편적인 기사만 보고 기레기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냥 욕하면서 스트레스 푸는 대상이 기자가 된 것 같다”고 했다. 5년차 기자 M은 “정치인조차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는 ‘가짜뉴스’로 낙인찍고, 지지자들은 이에 동조한다”고 말했다. A기자는 “‘우리가 아무리 좋은 기사를 써도 너네들이 안 보잖아’라는 냉소가 언론계에 깔려 있다”며 “뉴스 이용자와 건강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사 참여자 중 10명은 기레기라는 멸칭이 퇴사를 고려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반면 7명은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했다.

E기자는 “항상 최선을 다해 기사를 썼는데 기레기라고 욕먹는다”며 “공익에 기여하고 싶어 기자가 됐는데, 이럴 바엔 사기업에서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게 공익에 더 기여하는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J기자는 “내 아이가 자라서 ‘우리 아빠가 기자야’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모습이라면 아이에게 도움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F기자는 “엄청나게 공들여 쓴 좋은 기사도 욕을 먹으니까, 이제는 기레기라는 말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B기자도 “누군가의 평가는 시대가 바뀌게 되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래도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조사자 대부분 실낱 같은 ‘희망’

‘번아웃’된 기자들, 희망의 끈은?

조사 참여자 대부분은 번아웃 증후군(극도의 피로감으로 무기력증·자기혐오 등에 빠지는 증상)을 겪고 있거나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스스로 체크한 번아웃의 강도는 10점 만점에 평균 7.9점이었다. 11년차 기자 N은 “너무 힘들어서 출근할 때 울고, 꼭 받아야 하는 전화가 아니면 피한 적이 있다”고 했다. 업무로 공황장애를 얻었다는 B기자는 “동료들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위로하지만, 그 위로가 도움된다고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번아웃의 유일한 해결책은 비교적 노동강도가 약한 부서로 이동하는 것뿐이었다. 7년차 기자 O는 “버틸 수 없어 그 부서를 나왔다. 힘들어하는 동료들도 ‘그냥 버티다 부서 옮길게요’라고 말할 뿐이다”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조사 참여자들은 희미하게 희망을 품고 있었다. 조사 참여자 대부분은 기자로 남아 있는 이유에 대해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F기자는 “소소하더라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사를 쓰고 싶다. 그게 아직 언론사에 남아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G기자는 “내 기사를 보고 누군가 도움을 받을 때, 그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4년차 기자 P는 “비즈니스 모델 발굴과 조직문화의 변화”를, 9년차 기자 Q는 “기자 재교육과 휴식 제도”를 대안으로 언급했다. N기자는 “정보 접근성이 높아진 ‘만인 기자 시대’에서, 기자의 전문성을 키우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국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시민들의 높은 정보 접근성, 포털 중심의 유통 구조 등 미디어 환경이 변했고, 그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언론사의 경영과 문화가 기자들의 ‘탈언론’을 가져온 것”이라며 “공익 추구라는 언론의 기능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콘텐츠 유료화·후원제로 성장 기반 재확보…이용자 세분화 통해 소통도 ‘성공’
📌해외 언론의 위기 극복법

뉴욕타임스 15년 노력 끝에 유료 구독자 1000만 확보 등 ‘구독 모델’
맞춤형 기사 제공 넘어 분야별 콘텐츠 등 강화…‘필터 버블’ 우려도
포털 중심 국내 상황선 한계…뉴스레터 통한 소통·수익 성공 사례


위기에 놓인 한국 언론사들의 탈출구는 무엇일까. 해외 언론은 ‘유료 구독’과 ‘후원제’를 비즈니스의 축으로 삼아 다시 성장하고 있다. 뉴스 이용자를 세분화해 그들과 소통하고, 뉴스 편집·제작 시스템을 정보기술(IT)로 자동화하려는 노력이 더해진다.

유료 구독모델은 ‘구독자 확보 → 구독자 데이터 구축 → 구독자 맞춤형 기사·광고 → 수익 확대’라는 선순환을 꾀한다. 돈을 내지 않으면 콘텐츠 일부나 전부를 읽지 못하도록 하는 지불장벽(PayWall)이 보편화됐기 때문에 가능한 모델이다. 일반 개인들이 블로그 등에 기사를 무단전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요소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15년간의 노력 끝에 지난 2월 유료 구독자 1000만명(종이신문+디지털 유료 구독)을 확보했다. 스포츠매체 ‘디 애슬레틱’(The Athletic), 제품 추천사이트 ‘와이어커터’(Wirecutter), 단어 게임사이트 ‘워들’(Wordle) 등을 인수하며 콘텐츠를 다각화한 것도 성장의 발판이 됐다.

구독모델을 도입한 언론사들은 구독자가 설정한 주제, 읽은 기사, 연령, 지역 등에 따라 개인 맞춤형 기사를 제공한다. 타깃형 광고도 내보낸다. 독일 언론사 ‘빌트’(Bild)는 구독자에 따라 구독료도 달리 책정한다. 단, 이 모델은 이용자가 관심 있는 뉴스만 보게 되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을 낳는다는 우려가 있다.

다른 비즈니스 모델은 후원제다. 공익을 위한 뉴스는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에서다. 영국 ‘가디언’은 2019년 정기 후원자 90만명, 1회 이상 후원자 150만명을 확보했다. 전 세계 영어권 독자들이 1억5000만명에 달하고, 높은 브랜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로 평가된다. 단, 후원제 모델은 브랜드 가치가 높지 않은 언론사들이 시행하기엔 어렵다.

유료 구독·후원제 모델은 포털 중심의 국내 환경에서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포털 내에서 똑같은 모양의 기사가 유통되는 구조에선 각 언론사의 브랜드를 각인시키거나 콘텐츠 차별화를 꾀하기 어렵고, 자사 홈페이지 구독을 유도하더라도 콘텐츠 유료화 시도가 힘들다는 것이 국내 언론사의 공통된 인식이다.

뉴스 이용자를 세분화한 버티컬 콘텐츠도 성장의 한 요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해 2월부터 기후변화와 환경 전문 콘텐츠를 제공한다. 재테크, 여성, 육아, 동물 등 특정 주제에 관심이 있는 뉴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뉴스레터도 각광을 받는다. 뉴욕타임스는 90여개 뉴스레터를 운영한다. 국내서도 뉴스레터로 소통은 물론 수익화 성공 사례가 나오고 있다.

편집·제작 과정의 자동화도 수익 개선 방향으로 시도되고 있다. 영국 ‘BBC’는 텍스트로 기사를 작성하면 자동으로 그래픽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노르웨이 ‘아그데르포스텐’은 편집자가 기사를 골라 어느 정도의 크기로 종이신문에 실을지 결정하면, 이후 작업은 인공지능(AI)이 디자인해주는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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