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교수 행적’ 엇갈려 논란

2003.10.01 22:37

국가정보원이 1일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가 ‘김철수’라는 가명으로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됐고, 매년 2만~3만달러씩의 자금을 받았으며 공작활동을 했다고 조사결과를 밝혔으나 송교수측은 이들 혐의 일부에 대해 반박, 향후 검찰 수사에서는 혐의내용의 사실 여부가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당 후보위원 신분여부=국가정보원은 송교수가 북한 당서열 23위이자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라고 스스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송교수가 1973년 9월 독일 거점 북한 공작책 이재원(71)에게 포섭돼 모스크바를 거쳐 입북, 2주간 초대소에서 주체사상 학습 및 공작원 교육을 받고 노동당에 가입했다는 게 국정원의 수사결과다.

이에 대해 송교수의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법리학적으로 처음에 누군가와 만났을 때 다 포섭이라고 얘기해왔다”며 “정보기관이 수십년간 그렇게 생각해온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국정원은 또 송교수가 91년 5월 입북, 묘향산별장에서 김일성 주석과 면담한 뒤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격상됐으며 처음에는 송교수 자신도 이를 몰랐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면담 후부터 북한의 예우가 전보다 훨씬 좋아져 자신의 신분과 위상에 큰 변화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국정원이 밝힌 송교수 진술의 요지다. 이와 함께 송교수가 자신의 신분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은 94년 7월 김주석 사망 직후였다고 국정원은 설명했다.

당시 북한의 독일 주재 이익대표부에 있는 북한 공작원(미국 망명중)으로부터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장의위원에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고 입북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또 노동신문에 김철수라는 이름이 서열 23위로 게재돼 있는 것을 보고 정치국 후보위원이 된 것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밝혔다. 하지만 이 대목에 대한 송교수측 설명은 다르다. 김변호사는 “중요한 것은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활동한 사실이 전혀 없고 (국정원의) ‘김철수’라는 말에 송교수가 크게 항의했다는 것”이라며 “송교수는 노동당 입당원서를 통과의례처럼 생각없이 썼다”고 말했다.

김변호사는 또 “국정원 조사과정에서 (이런 부분들에 대해 송교수가) 아니라고 여러차례 강력하게 부인했는데도 국정원 조서에는 대체 어떻게 쓰여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91년 이후 송교수에 대한 북쪽의 예우가 좋아진 정황을 가지고 국정원이 짐작해 유도한 것 같다. 유도신문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송교수는 그런 부분에 대해 시인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행적=송교수는 지금까지 모두 18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파악됐다. 송교수는 74년 재독 한국인 유학생 등을 규합, 민주사회건설협의회를 결성, 활동한 데 이어 80년대 들어 북한 입장에서 북한을 이해하자는 ‘내재적 접근론’을 국내 간행물을 통해 제시했다고 한다.

92년 5월 자수한 독일 유학생 오길남씨의 입북을 권유한 혐의도 받고 있다. 그는 86년 11월 오씨가 유럽에서 망명 신청을 했을 때 오씨에게 “내가 오형이라면 북한에 다시 들어가겠다”고 재입북을 권유한 사실을 시인했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또 오씨가 북한으로 가겠다고 하자 “어디 가서든 잘 살라. 우리가 기댈 언덕은 북한밖에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 국정원측 설명이다.

이와 함께 그는 북한의 9·9절 또는 10·10절 때마다 10여차례에 걸쳐 “장군님, 만수무강을 기원합니다”라는 내용의 충성맹세문을 작성해 보냈다고 국정원이 밝혔다고 정형근 의원이 전했다. 그는 또 94년 김주석 장례식에 참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손을 붙잡고 우는 모습도 사진에 잡혔다.

하지만 김변호사는 북한인사와 편지로 내통했다는 이유로 적용된 ‘회합통신’ 혐의에 대해선 “송교수가 독일에서 학술회의와 관련해 북한 학술원 관계자와 편지를 주고받은 사실은 있지만 전혀 정치적인 의도가 없는 순수한 학술목적”이라고 주장했다. 95년 7월부터 김용순 및 김경남 등의 지시로 중국 베이징과 평양 등에서 6회에 걸쳐 남북 및 해외학자 통일학술회의를 주도했다. 김변호사는 “대한민국 정부는 뾰족한 선택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며 “자기 발로 들어온 사람에게 감옥행이나 추방을 한다면 국제사회에서 망신을 당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송교수측은 그러나 국정원이 밝힌 행적 가운데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특별한 반응을 하지 않은 채 “자세한 내용은 2일 송교수가 직접 입장표명을 통해 밝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금수수=송교수는 독일 유학생 포섭 및 조국통일사업을 위한 지식인 중심의 조직결성 등 지시와 함께 매회 미화 1,000~2,000달러를 받았고, 91년 5월 김주석 면담 이후 95년까지 독일 내 공작원을 통해 연구비 등 명목으로 매년 2만~3만달러를 수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73년 통일사업을 위한 활동비조로 1,000달러를 받은 것을 비롯, 74년 3월에는 독일에서의 활동을 보고한 뒤 다시 돈을 받았다고 국정원은 보고했다.

이후 북한 조평통 부위원장인 전금철로부터 “유능하고 똑똑한 학생을 소개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1,000달러를 받은 것으로 밝혔다. 또 96년 8월 부친 사망 때는 김정일의 친필 지시에 따라 독일주재 북한 이익대표부로부터 1,500마르크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김변호사는 “송교수 스스로 방북 때 보통 500달러의 경비를 북한에서 받은 사실이 있다고 말한 것을 금품 수수로 몰았다”며 “넓은 의미에서 학술활동과 관련된 남북학자들의 교류를 주선하면서 사용한 경비는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중근기자 harub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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