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재명이 연동형 비례제를 버리면

2023.12.26 20:15 입력 2023.12.26 20:16 수정

1990년 10월 제1야당 대표인 김대중은 집권 민자당에 지방자치제 전면 시행을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지자제를 실시하기에는 이르다는 이른바 ‘시기상조론’을 앞세워 관성적으로 반대하는 여권을 향해 최후의 결전에 들어갔다. 시민들이 당장 해내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었지만, DJ는 평생의 지론을 실현할 때가 되었다고 보고 정치적 명운을 걸었다. 여소야대를 뒤집는 3당 합당으로 몸집을 불린 여당은 처음엔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는 실시해야 할,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제도라는 시민의 공감대를 외면할 수 없었기에 여권은 협상에 나섰다. 김영삼 민자당 대표가 단식 나흘째에 DJ를 방문한 게 시작이었다. 그 결과, 5·16 쿠데타로 중단됐던 지방자치제가 30년 만에 부활한다. 다시 30년이 흐른 지금 지자제는 우리 정치의 근간으로 정착했다. 지방자치가 없었던들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에서 일약 정치인으로 입신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지자제 도입을 떠올린 것은 연동형 비례제를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위성정당 꼼수’로 이 제도를 망가뜨린 여당은 지금도 반대하고 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민주당의 퇴행이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나흘 전 “소속 의원 절반 이상이 병립형을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공개리에 밝혔다. 연동형을 지키려는 마음이 있으면 할 수 없는 발언이다. 하긴 이재명 대표가 한 달 전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병립형으로 후퇴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지금처럼 거대 양당이 의석을 점유하고 끝없이 대결하는 구조를 개선하려면 연동형 비례제가 유용하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병폐를 보완하면서 정당이 얻은 표만큼 의석을 가져가도록 하는 합리적 제도이다. 소수자의 목소리까지 깨알같이 반영하니 정치의 다양성을 높이기도 한다. 최근 YTN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시민들의 연동형에 대한 지지도 확인된다. 현행을 유지하자는 의견이 43%, 병립형으로 돌아가자는 응답이 37%로 나왔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49%가 현행을 고수하자고 한 반면, 병립형 회귀 의견은 33%였다. 적어도 이 제도의 개혁성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런 제도를 버리고 과거로 되돌아가자니 말이 안 된다.

민주당의 일부 구성원과 지지자들은 연동형 비례제를 망가뜨린 것은 국민의힘인데 왜 민주당만 비판하느냐고 항변한다. 이는 자신들이 누려온 지지와 상황을 오독하는 행위이다. 시민들이 민주당을 비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민주당이 이 제도가 개혁적이라며 도입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반대 입장을 바꾼 적이 없다. 반개혁적이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기대도 없는 정당에 목소리를 높일 이유가 없다. 그리고 민주당은 개혁세력임을 자임하며 표를 얻어왔다. 민주당이 누리는 위상은 그 결과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개혁 조치를 후퇴시켜놓고도 비판을 하지 말라고? 자가당착에 후안무치가 지나치다. 일찍이 보지 못한 행태이다.

민주당이 연동형을 포기할 경우 감내해야 할 타격은 가늠하기 어렵다. 지난 대선 때 연동형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한 이 대표는 더 그렇다. 민주당이 하는 양을 보면, 당장은 김건희 특검법으로 여당과 싸우다 추후에 시간이 없다며 병립형으로 여당과 합의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때 시민들은 과연 부득이하게 연동형을 지키지 못했다고 이해해줄까? 시간은 민주당 편이 아니다.

DJ가 주도한 지방자치는 관권 선거를 종식시켰고, 훗날 그 자신의 집권으로 이어졌다. DJ였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연동형 비례제를 버릴까? 평생 소수당을 이끌며 조심스럽게 정치를 했던 그로서는 결코 ‘민주와 개혁’이라는 대의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지도자는 대중의 눈치만 보지 않는다. 설득하고 이끌어나간다. 많은 지식인과 시민들이 DJ에게 비판적 지지를 보낸 이유이다. 어떤 지도자도 권력의 탄압을 받은 것만으로 시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여권의 폭주에도 민주당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 한동훈 비대위를 앞세운 여당은 혁신 조치들을 내놓을 것이다. 민주당은 무엇을 내세울 것인가. 민생 보호에 유능하지도 않은 민주당이 스스로 약속한 개혁적 정치제도까지 거부해놓고 어떻게 시민을 설득할지 의문이 든다. 민주당은 연동형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당과 헤어질 결심을 결행할 유권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34년 언론인 생활을 마감하는 마지막 칼럼으로 충언한다.

이중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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