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무관한 주민들 상당수 사살 명령 어기고 풀어줬다”

2009.11.26 18:02 입력 2009.11.27 11:22 수정
이로사기자

59명중 55명 살린 ‘의로운 경찰’

일부 의로운 경찰들은 감금·관리하던 국민보도연맹 단원들을 풀어주기도 했다. 경남 합천경찰서 초계지서 순경이던 최모씨(82)가 그중 한 명이다. 합천의 보도연맹원 59명 중 55명은 최씨 도움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생존했다. 최씨는 26일 전화통화에서 “사상과 관계 없는 일반 주민들도 상당수 섞여 있었다”며 “있을 수 없는 동족간 대학살이었다”고 털어놨다.

한국전쟁 발발 초기 국군의 전세가 불리해진 7월10일쯤 마을회관 격인 ‘동사’에 보도연맹원 59명이 붙잡혀 들어와 감금됐다. 이들을 관리하고 훈련시키는 일을 맡았던 최씨는 “잡아올 당시엔 죽일 줄 몰랐다. 혹시 나쁜 짓이라도 할까 해서 합숙훈련을 시키는가보다 했다”며 “그중에는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정부 혜택이 있다고 하는 홍보를 믿고 그냥 가입한 이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열흘이 지난 7월20일쯤 본서에서 소집이 있다며 이 가운데 4명을 보내라는 명령이 왔다. 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사살됐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남은 보도연맹원 55명의 두려움은 극에 달했고, 최씨는 점점 이들을 통솔하기 힘들어졌다.

“풀어달라고 울면서 애원하는 사람들도 있어 보기가 애처로웠습니다. 해서 ‘내가 다 책임질 테니 집에 돌아가라. 대신 언제든 부르면 오겠다고 약속하라’ 하고 전부 풀어줬지요.”

7월31일, 상부에서 오후 9시까지 후퇴하라는 작전명령이 떨어졌다. 떠나기 전 연맹원들을 모아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도 함께였다. 보도연맹원들은 소집 사이렌이 울리면 최씨와의 약속대로 지서에 나타날 것이었다. 최씨는 사이렌이 울리는 동안 지서 정문 옆에 숨어 기다렸다. 잠시 후 두 명의 연맹원이 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오면 다 죽는다. 우린 9시에 후퇴하니 돌아가 다른 연맹원들에게도 전해라”며 이들을 돌려 보냈고, 9시에 명령대로 후퇴했다.

최씨는 “지금 생각하면 무고한 사람도 많았던 대학살이었으며, 동족들끼리 있을 수 없는 슬픈 일이었다. (내가 한 일은) 이적행위에 걸리는 일이라 영영 혼자만 비밀로 간직하고 살아왔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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