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가 스마트폰에 빠진 이유 - 초등생 집담회

2012.07.22 21:27 입력 2012.07.23 09:53 수정

“카톡 안 하니 대화·약속 못해 불안, 친구들도 불편해해요”

초등학생들은 스마트폰 중독의 심각성을 알고 있을까. 경향신문은 지난 14일 스마트폰 중독 증세를 보이는 초등학생 5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아이들은 “나는 스마트폰에 심각하게 중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취재팀과 대화를 나눈 2시간 동안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2~3분에 한 번씩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대화를 하는 도중에 친구들과 카카오톡을 하며 현장을 생중계했다. 아무런 알람벨 소리가 울리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습관적으로 ‘혹시 카톡 메시지가 뜨지 않았나’ 살피기 위해 화면을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기자가 “너희들 오늘 대화하는 도중에 계속 스마트폰 들여다본 것을 알고 있니?”라고 묻자 아이들은 “저희가 그랬나요?”라고 답했다.

이날 집담회에는 ‘스마트폰 일주일간 끊어보기’(경향신문 7월19일자 4·5면 보도) 실험에 참가했던 고승현·조민정(12·가명)양이 참여했다. 민정양과 같이 별도로 스마트폰 끊기 실험을 한 동생 세진군(9·가명)도 함께했다. 같은 학교 친구인 이건우·이승화(12)군은 본인과 부모의 동의를 얻어 실명으로 집담회에 참가했다.

지난 14일 스마트폰 중독에 관한 경향신문 집담회에 참석한 초등학생들이 어두운 방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지난 14일 스마트폰 중독에 관한 경향신문 집담회에 참석한 초등학생들이 어두운 방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 스마트폰 안 쓴다고 공부할 생각은 안 들어
폰이 있고 없고 따라 친구들도 끼리끼리 놀아

-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은 일주일 동안 어땠나요.

승현 = 친구들이 도대체 왜 그런 실험에 참가했느냐고 그러더라고요. 애들이 많이 불편해했어요. 카톡으로 친구들이랑 대화도 하고, 약속도 잡아야 하는데 채팅방에 들어가지 못하니까 애들이랑 만나기도 힘들고, 저에게만 누가 따로 문자메시지나 전화 연락을 해줘야 하니까 애들이 귀찮아하더라고요. 원래 친구들끼리 약속을 잡으면 카톡 프로필에 ‘몇 월 며칠 어디’ 이렇게 표시를 해놓는데요. 제가 그것도 확인을 못하니까…. 카톡을 못해서 친구들이랑 같이 놀러가지 못한 경우도 있었어요. 일주일 동안 정말 힘들었어요.

민정 = 제가 스마트폰을 쓰지 않을 때도 애들은 분명히 자기들끼리 카톡을 하고 있을 거잖아요. 그런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니까 불안해지는 거예요. (승현이처럼) 약속이 잡혀도 카톡 확인을 못하니까 못 갈 수도 있고요. 그리고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다고 ‘이제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어요. 그냥 멍하게 있는 거예요.

승화군은 집담회 중간중간 촬영 소리가 나지 않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집담회 현장을 몰래 사진으로 찍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신문사를 방문하는 것도, 기자와 대화하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기 때문이었다. 승화군은 이렇게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전송하며 실시간으로 아이들에게 상황을 중계했다. 집담회 도중 친구들로부터 반응이 오면 또다시 카톡에 집중했다.

- 스마트폰이 필요한 이유가 꼭 친구들과 카톡으로 대화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드네요.

승화 = 스마트폰이 있는 애들은 있는 애들끼리만 놀고, 없는 애들은 없는 애들끼리만 놀아요. 가끔 스마트폰이 있는 애들하고 어울리고 싶어서 스마트폰을 사는 애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애들 중에서도 우리랑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가 걔네들을 카톡방에 초대를 안 해주거든요(웃음).

승현 = 그런 애들은 ‘찐따(덜떨어진 사람을 일컫는 속어)끼’가 있을 때가 많아요. 찐따도 종류가 있는데요. 성격이 이상하고, 잘난 척하고 재수없는 애들이 있어요.

건우 = 음… 찐따는 친구도 없고 ‘찌질한(보잘것없고 더러운 사람을 일컫는 속어) 애들’이고, 왕따는 찌질하지는 않은데 그냥 친구가 없고. 그리고 더러운 애들이랑은 같이 안 놀아요.

건우군과 승화군은 승현양의 소개로 이번 집담회에 참석했다. 그러나 이들 셋은 한번도 같은 반이었던 적이 없다. 이들은 카톡에서 처음 만난 뒤 자신들이 옆반 친구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 서로 같은 반도 아닌데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었나요.

승현 = 카톡방에 사람이 많이 있잖아요. 거기에 들어와 있는 아이들을 제가 따로 친구추가를 해놨었어요. 이후에 제가 다시 카톡방을 만들었는데 그때 얘네(건우·승화)를 초대했어요. 대화하다가 친해지기 시작한 거예요. 처음에는 얘네 얼굴도 모르고 전화번호도 몰랐거든요(카톡 친구추가는 상대방의 번호를 알지 못해도 가능하다). 그러다가 나중에 얘네가 제 옆반에 있는 걸 알았어요.

건우 = 승현아, 나는 아직도 네 전화번호가 없어.

- 전화번호도 없이 오늘 집담회 약속은 어떻게 잡았나요.

건우 = 카톡으로 잡았어요. (승화가) 전화는 원래 잘 안 해요. 전화하는 것보다 카톡이 더 빨라요. 카톡방에서 이야기하면 한번에 끝나잖아요.

- 어른들은 카톡방을 잘 몰라요.

승현 = 그냥 서로서로 친구추가를 해서 같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아 맞다. 카톡방에서 막 싸우기도 해요. 저도 모르게 어떤 카톡방에 초대됐는데 그 방에 싸가지 없는 애들이 있으면 카톡방에서 싸워요. 다른 학교 애들이나 중학생들이랑 카톡방에서 싸우는 경우도 있어요.

- 카톡으로 싸움을 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승현 = 그러니까 친구가 다른 학교 애랑 싸움이 붙잖아요. 그러면 자기 친구들을 그 카톡방으로 초대하는 거예요. 그렇게 모인 애들이 카톡방에서 서로 욕하면서 싸우는 거예요. 카톡방에서 말을 많이 하고, 욕을 많이 하면 이기는 거예요. 저번에 싸웠던 중학생은 3명이었는데, 우리 쪽이 사람수가 더 많으니까 우리가 이겼어요.

건우 = 그 중학생들이 우리보고 초딩이라면서 자꾸 건드리는 거예요. 저희한테 먼저 욕을 했어요. 그래서 우리도 같이 욕을 하고, 막 별명도 지어주고…. 그렇게 싸우다 보면 몇 명은 나가고 남은 애들끼리는 또 새로 방을 만들어서 싸워요.

- 카톡방에서 말다툼을 하다 실제로 만나서 싸우는 경우도 있었나요.

승현 = 그때 중학생들과 카톡방에서 싸우다가 우리가 “ㄱ초등학교로 와”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중학생들이 온다고 했는데 안 왔어요.

승화 = 멀어서 만나서 싸울 수가 없어요. 사실 얼굴도 모르고, 학교가 어디인지 모를 때도 있어요. 그냥 카톡 안에서 문자로만 싸우는 거예요.

▲ 카톡하며 모르는 애들과 친해지고 싸우기도 해요
내 꿈은 휴대폰 판매원… 새것 제일 먼저 쓰잖아요

- 스마트폰을 너무 자주 만지작거리네요. 스마트폰을 쓴 뒤로 성적이 떨어지지는 않았나요.

건우 = 전 원래 되게 성실했어요(웃음). 그런데 스마트폰이 생기고 나니까 좀 많이 노는 것 같아요. 원래는 공부도 잘했었는데, 스마트폰이 생기고 난 뒤로 성적이 좀 떨어졌어요. 성적이 떨어지니까 엄마가 걱정을 많이 하세요. 이제는 엄마가 매일 스마트폰을 얼마나 썼는지 일일이 확인해요.

승화 = 카톡을 하느라 새벽 1~2시쯤에 자니까 엄마가 싫어해요. 밤에는 주로 애들 욕하고, 뒷담화(남을 헐뜯는 얘기)를 해요. 뒷담화할 애들이 너무 많아서 잠을 늦게 잘 수밖에 없어요.

- 아침에 다시 하면 되잖아요.

승화 = 아니에요. 뒷담화를 할 때 해야 돼요.

승현 = 그때그때 생각날 때 바로 카톡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늦게까지 카톡을 해요. 보통은 우리끼리 욕하는데 가끔은 뒷담화하고 싶은 애를 대화방에 초대한 다음에 대놓고 욕도 해요. 우리가 뒷담화하는 애들은 어차피 찐따들이라 상관이 없어요. 걔네들은 우리를 날라리로 보고 우리는 걔들을 찐따라고 생각하는 거죠.

건우 = 그러면 초대된 애들이 채팅방에서 우리가 하는 말 보고도 아무 말 못하고 그냥 나가요.

승화 = 가끔 용기 있는 애들은 카톡방에서 “니들 왜 그래” 그러기도 하고요. 실제로 만나서 카톡방에서처럼 욕하는 경우도 있어요. (욕하고 싶은) 애들이 화장실 칸에 들어가면 일부러 그 앞에서 얘기해요. 애들이 저절로 들으라고요.

민정 = 카톡에서 욕하다가 얼굴 보고 얘기하는 애들도 있어요. 옆에서 소곤소곤 말하는 척하면서 일부러 들리게 하는 거예요.

- 카톡 외에도 ‘라인’(네이버)이나 ‘마이피플’(다음), ‘틱톡’ 등 여러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이 있는데 왜 카톡만 하나요.

승현 = 애들이 카톡만 하니까 하는 거죠. 카톡은 보이스톡도 되니까 돈 안 들이고 전화도 할 수 있고요. 다른 건 안 써요.

건우 = 카톡이 없으면, 틱톡을 쓰고, 틱톡이 없으면 마플(마이피플의 준말), 마지막이 라인.

- 스마트폰은 여러분들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승화 = 사랑하는 여자친구예요. 스마트폰에는 가수 ‘아이유’가 담겨 있어요. 스마트폰으로 아이유 사진도 보고 팬카페 들어가서 응원도 해요. 저는 컴퓨터를 안 하니까 스마트폰 없으면 아이유를 마음대로 볼 수가 없어요.

건우 = 저에게 스마트폰은 휴게소예요. 심심할 때마다 들를 수 있는 휴게소요. 제 꿈이 휴대폰 파는 직원이에요. 휴대폰 직원은 새 휴대폰 나오면 제일 먼저 쓸 수 있잖아요.

민정 = 없어서는 안될 친구요.

승민 = 스마트폰은 제 ‘분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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