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가 청년 자살 원인”이라던 ‘지식인 500명’, 알고보니···

2015.10.21 14:38 입력 2015.10.22 07:10 수정

‘좋은 교과서, 정직한 교과서, 올바른 교과서를 지지하는 지식인’을 표방한 이들이 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회견에는 정성희 목사, 서석구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상임대표, 전우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계성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대표, 여명 한국대학생포럼 대표, 조우석 미디어펜 주필, 주옥순 엄마부대봉사단 대표 등 30여명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지식인 500인”이 참여했다는 공동선언문에는 “기존 국사교과서들은 아이들로 하여금, 대한민국이 수치스런 과거를 가진 부패한 사회라는 어두운 착각을 가지는 한편, 하루하루 땀 흘리며 살아가는 부모가 이 불의한 체제에 빌붙어 기생하는 존재라는 끔찍한 오해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같은 착각과 오해는 삶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도록 만듦으로써 청년층 자살 및 정신질환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현행 검정 역사교과서가 높은 청년층 자살률의 원인인양 주장한 것입니다.

(▶보수 원로 등 500명 “현행 역사교과서, 청년 자살 중요 원인”)

이들은 회견 마지막에 “북한 범죄 숨기는 친북 교과서 추방하자” “공산주의 옹호하는 좌경 교과서 추방하자” “대한민국 폄훼하는 친북 교과서 추방하자” “대한민국 국군을 모욕하는 좌경 교과서 추방하자” 같은 구호를 외쳤습니다.

[기타뉴스]“역사교과서가 청년 자살 원인”이라던 ‘지식인 500명’, 알고보니···

회견 소식이 기사로 나간 뒤 많은 독자들이 경향닷컴과 SNS에 분노를 나타냈습니다. “현재 교과서가 (청년층) 자살 원인이라면 국정교과서로 배운 노인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건 어떻게 설명할 거냐”며 이들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음을 지적한 분도 있었습니다.

가장 많은 독자들은 “저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대체 누구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향이네’가 직접 이들이 누군지 알아봤습니다.

이 소식을 전한 인터넷신문 <뉴데일리> 기사(▶지식인 500여명 “국사교과서 국정화가 필요한 이유는..”)에는 주최 측이 공동선언문에 이름을 올린 500인 명단이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언문에 본인 이름이 도용됐나거나, 명단 공개에 동의한 적이 없다는 항의가 빗발쳐 현재는 명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명단은 관료 출신을 비롯해 학계, 교육계, 종교계, 법조계, 언론계, 의료계, 출판계 등 각계 보수 인사들을 아우릅니다. 자유총연맹, 재향군인회, 서북청년단과 같은 관변·보수단체 출신이나 ‘탈북지식인’ ‘탈북방송인’이라고 직업이 표기된 사람들도 눈에 띕니다. ‘주부’ ‘회사원’ ‘사업가’ ‘일반시민’도 있습니다. 심지어 한 방문판매업체 회원이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지식인 500인”이라고 하기엔 뭔가 어색해 보입니다. 중간중간 중복된 이름들도 발견했습니다.

명단 속 주요 인사들을 살펴볼까요.

먼저 뉴라이트 학자들이 명단에 여럿 속했습니다. 2008년 대안교과서를 쓴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대표적인 식민지근대화론자입니다. 2013년 교학사 교과서를 쓴 이명희 공주대 교수, 국정교과서 집필진으로 언급되는 강규형 명지대 교수도 포함됐습니다.

2008년 3월25일 교과서포럼 공동대표 이영훈 서울대 교수(오른쪽 두번째)가 서울 세실레스토랑에서 열린 ‘한국 근ㆍ현대사 대안교과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8년 3월25일 교과서포럼 공동대표 이영훈 서울대 교수(오른쪽 두번째)가 서울 세실레스토랑에서 열린 ‘한국 근ㆍ현대사 대안교과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 9월11일 새누리당 김무성 당시 의원과 ‘교학사 역사교과서’ 집필자 이명희 공주대 교수(왼쪽)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교실’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박민규기자

2013년 9월11일 새누리당 김무성 당시 의원과 ‘교학사 역사교과서’ 집필자 이명희 공주대 교수(왼쪽)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교실’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박민규기자

익숙한 이름들도 보입니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복거일 소설가,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최우원 부산대 철학과 교수가 함께했네요. 이 중 최우원 교수는 지난 6월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전자개표기 사기극으로 당선된 가짜 대통령이라고 주장하고, “2002년 대선 개표가 조작됐다는 증거를 찾아 대법관 입장에서 판결문을 쓰라”는 과제를 내고, 일베에 관련 글을 올린 인물입니다. 그는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나한테 교과서 집필 제의가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들어가서 쓰겠다”고 말했습니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이상훈 기자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이상훈 기자

복거일 소설가 |경향신문 자료사진

복거일 소설가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4년 10월25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 인근에서 최우원 부산대 교수(오른쪽)와 안소희 파주시의원이 대북전단 살포를 두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최우원 교수는 대북전단 살포에 적극 나서왔다. |연합뉴스

2014년 10월25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 인근에서 최우원 부산대 교수(오른쪽)와 안소희 파주시의원이 대북전단 살포를 두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최우원 교수는 대북전단 살포에 적극 나서왔다. |연합뉴스

또 <조선일보> 부사장을 지낸 안병훈 <뉴데일리> 이승만연구소 회장, 최성규 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도 명단에 있습니다.

2006년 2월6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이·취임식에서 최성규 목사가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6년 2월6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이·취임식에서 최성규 목사가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삼 정부 마지막 안기부장이었던 권영해 전 국방장관은 1997년 대선 때 북풍사건을 일으킨 혐의로 1998년 구속기소돼 징역 7년10월을 선고 받았던 인물입니다. 건강 악화로 2000년 1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가 2006년 6월 재수감됐고 2008년 다시 풀려나 병원 생활을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8·15 특별사면을 받았습니다. 전두환 정부 때 대법관에 임명된 정기승 국가정상화추진위원장,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에서 각각 공직생활을 한 이용만 전 재무장관과 송정숙 전 보건사회부 장관도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비서관을 지낸 현진권 자유경제원장과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 출신으로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교육정책자문팀에서 활동했던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도 이름을 올렸네요.

1998년 5월4일 ‘북풍사건’을 일으켜 안기부법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 첫 공판을 받기 위해 수의차림으로 서울지법 남부지원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8년 5월4일 ‘북풍사건’을 일으켜 안기부법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 첫 공판을 받기 위해 수의차림으로 서울지법 남부지원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밖에 박상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지지선언에 참여했습니다.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8월 <문화일보> 칼럼(▶끝까지 反법치로 기우는 세월호法)에서 “강경 유가족 대표들의 억지에 동조해 끌려가는 이러한 사태의 진전은 국회의 존재 의의와 국고의 지원까지 받는 헌법적 공당의 존재 의의를 질문케 한다” “진상조사위원회에 대한 수사권·기소권 부여, 특검추천위원회 위원추천권, 의상자 수준의 보상 등 가족대표들의 주장은 우리나라 헌법의 기초(권력분립·대의민주주의·법치주의 등)를 허무는 내용이다” “또 다른 ‘광화문 촛불’ 사태는 결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2014년 2월17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신임 이사장으로 임명된 박상증 목사(왼쪽)가 서울 중구 정동 사무실을 방문하려다 낙하산 인사를 거부하는 직원들에 의해 저지당하고 있다. /김정근기자

2014년 2월17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신임 이사장으로 임명된 박상증 목사(왼쪽)가 서울 중구 정동 사무실을 방문하려다 낙하산 인사를 거부하는 직원들에 의해 저지당하고 있다. /김정근기자

※<뉴데일리>를 인용했던 500인 명단을 21일 오후 9시20분 삭제합니다. 이날 저녁 이후 노환규 전 의사협회장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주최 측에 명의를 도용당했다. 국정교과서 찬성 성명에 이름을 올리겠다고 한 적이 없다”고 연락해 왔기 때문입니다. ‘성명 명의 도용’에 관한 <경향신문> 22일자 기사 링크를 아래에 붙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추가 취재를 통해 22일 알려드리겠습니다.

‘국정화 지지 500인’ 본인 동의 없는 이름 수두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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