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평화 집회’

5일 집회는 ‘무탄무석’이었다

2015.12.06 22:43 입력 2015.12.06 22:48 수정
백철 기자

경찰이 최루탄을 쏘지 않으면…시위대도 돌을 던지지 않는다

다시 1980~90년대 논쟁 경찰은 “무석무탄” 주장

2차 광화문 집회가 다가오자 야당 인사들은 ‘무탄무석(無彈無石)’이란 말을 인용하며 평화집회를 강조했다. 경찰이 최루탄을 쏘지 않으면 시위 학생들도 돌을 던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차벽이 없다면 시위대들의 폭력도 없을 것이라는 비유였다.

1980년대 집회·시위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경찰은 거리에 모인 시위대에 최루탄을 쏘고 진압봉을 휘둘렀다. 시위대도 경찰에 맞서는 과정에서 돌과 화염병을 던졌다. 당시 시위 문화를 잠시나마 바꾼 것이 1985년 5월의 ‘무석무탄, 무탄무석 필담 사건’이다. 경찰과 시위대 모두 평화 기조에 동의했고 결과적으로 집회도 비폭력적으로 마무리됐다.

1985년 5월 세종대 학생들은 학교를 상대로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학교가 80%의 지지율로 당선된 총학생회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5년 5월7일 예계해 당시 서울동부경찰서장은 세종대 정문에 세워둔 진압차에 ‘무석무탄’이란 글귀를 붙였다. 학생들이 돌을 던지지 않는다면 경찰도 최루탄을 쏘지 않겠다는 뜻이다. 다음날 세종대 학생들은 ‘무탄무석’이란 말로 응수했다. 단식투쟁을 하던 이종수 당시 세종대 학생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살벌한 상황 속에서 이런 여유와 대화의 분위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예 서장도 당시 인터뷰에서 “문구의 순서에 대해선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 글귀의 정신에는 모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이틀간 이어진 세종대 학생들의 교내 집회에서 경찰은 최루탄을 쓰지 않았고 학생들도 돌을 던지지 않았다.

한동안 경찰은 시위 진압 때 ‘사랑·양보’란 글귀와 웃는 얼굴이 들어 있는 ‘스마일 방패’를 사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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