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①우린 붕괴를 원한다]너도나도 숨막히는 ‘일의 노예’…‘쉼표’가 필요해요

2015.12.31 22:04 입력 2016.02.02 18:09 수정

청년들이 원하는 미래 사회 위해 가장 시급한 의제는?

청년들이 꼽은 ‘정책에서 고려돼야 할 가치’를 중요도에 따라 글자 크기를 다르게 표현했다.

청년들이 꼽은 ‘정책에서 고려돼야 할 가치’를 중요도에 따라 글자 크기를 다르게 표현했다.

원하는 미래 사회를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뭘까. 청년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집어들었다. 여가를 즐길 수 있고 삶의 질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뜻이다. 정부 정책에서는 인간의 존엄성, 신뢰, 공정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봤다. 지금은 결여돼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5년 12월 경향신문이 청년 103명을 집단면접하면서 선호하는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다뤄져야 할 의제가 무엇인지 물었다. 정치·경제·사회문화·환경·과학기술 분야에서 제시된 8~9가지 의제 중 1순위는 3점, 2순위 2점, 3순위는 1점의 가중치를 줘 고르게 했다. 청년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선택한 의제는 사회문화 분야에서 제시된 ‘일과 삶의 균형 - 여가 및 삶의 질을 중시하는 노동 문화’(212점)였다. 선호하는 미래가 달라도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받고 ‘저녁과 쉼표가 있는’ 삶을 더 누리고 싶은 마음은 직장인, 취업준비생, 대학생 모두 같았다.

주중·주말 아르바이트를 겸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는 대학생 ㄱ씨(26·서울)는 “인문학을 바탕에 두고 웹디자인을 배워 뭔가를 창조하는 일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시도조차 불가능하다”고 했다. “최저시급 겨우 받으면서 한 달 빡세게 일하고 나면 그 돈으로 조금 쉴 수 있을 뿐”이며 “학자금도 결국은 대출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ㄱ씨는 불면증이 심해져 수면제와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다.

의제 2위는 사회문화 분야에 있는 ‘학력·경쟁 중심 사회’(168점)가 꼽혔다. 끝도 모르게 스펙과 경쟁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가 전인교육을 외면하고, 숨 막히는 사회가 됐다고 평가한 것이다. 3위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제시된 ‘건강·안전·환경·에너지·고령화 등 시대적 과제 해결’(146점)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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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은 정치 분야에서는 세대·지역·계층에 따라 정치적 갈등이 깊어지는 문제(144점)를 가장 많이 지적했다. ‘언론·표현의 자유 확대’(142점)와 ‘다양한 이념과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다수의 정당’(127점)도 2·3위로 골랐다. 거대 양당 체제가 청년들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고, 청년들이 불만과 욕구를 제기할 통로마저 막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 발달을 통한 직접민주주의 확대’가 정치 분야 4위에 오른 것도 그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경제 분야에서는 ‘국민행복지수 도입’(140점)을 원하는 청년들이 가장 많았다. 물질적 풍요로움보다 정신적 만족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청년 일자리 감소와 경제성장 지체’(133점), ‘복지제도 확대에 따른 증세’(100점) 문제도 시급히 논의할 과제로 삼았다. 청년들은 20년 뒤 한국 사회를 위해 원전 핵폐기물 매립 등 환경 부담을 미래 세대에 전가하는 문제(140점)도 심각하게 봤다. 대학생 ㄴ씨(24)는 “지금처럼 친환경 재생에너지 개발에 무관심한 채 에너지를 마구 만들어 쓰고 환경을 파괴하다가는 살기 힘든 지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들은 정부 정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가치(5점 척도)로 ‘인간의 존엄성’(4.7점)을 꼽았다. 신뢰, 공정성, 투명성, 책임성, 대화·소통도 4.5점 이상을 매긴 중요한 가치였으나, 자비(3.3점)와 경쟁(2.6점)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번 조사의 진행과 감수를 맡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의 박성원 부연구위원은 “다양한 정당의 등장, 특히 청년들의 이해를 대변할 정당의 등장이 이들의 정치적 좌절을 극복하고 선호하는 미래를 실현하는 데 중요하다”면서 “역대 정부는 과연 청년들이 중요하다고 본 존엄성이나 정책과정의 투명성, 공정한 정책집행을 우선시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가장 충격이었던 사건 : 세월호

청년들은 ‘세월호 참사’를 가장 충격이 컸던 사건으로 꼽았다. 성장만능주의에 스며든 각종 부정과 부패의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한국 사회를 보는 부정적·회의적 인식이 커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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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은 경향신문이 2015년 12월 진행한 ‘청년 미래인식 조사’에서 서울 1차 참가자(26명)를 제외한 77명에게 던져졌다. 주관식으로 ‘가장 충격이 컸던 사건’을 묻자 42.0%가 세월호 참사를 적었다. 진보 37.9%, 보수 40%, 중도 46.7%가 선택해 정치 성향에 따른 차이도 크지 않았다. ‘사회 인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에 대한 질문에서도 가장 많은 23.9%가 ‘세월호 참사’를 꼽았다. 이 질문에는 정치 성향별로 진보 34.5%, 중도 21.9%, 보수 0%로 답이 갈렸다. 대학생 ㄱ씨(24·경주)는 “비리·부정부패 등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가 집약돼 드러난 사건”이라며 “무능한 정부는 희생자들을 구조하지 못했고 오히려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몰아세웠다”고 말했다. “인재가 분명한데도 제대로 책임진 사람이 없다”는 답이 많고, “(유가족의 단식을 조롱한) 일베의 폭식 투쟁”도 충격의 잔상으로 강하게 남아 있었다.

세월호 다음으로 청년들의 11.3%는 사회 인식에 큰 영향을 준 사건으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선택했다.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20~30대가 공유하는 대표적 집단체험이었다. 다만 각인된 생각은 3색으로 꽤 벌어져 있었다. 진보 성향이라는 대학생 ㄴ씨(27·전주)는 “이명박 정부가 시민들의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명박산성’을 쌓았다”고 기억했다. 보수 성향인 직장인 ㄷ씨(31·서울)는 “원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좋아했으나 광우병 촛불시위가 길어지며 순수성을 잃었다. 이때 정치적 성향이 형성됐다”고 했다. 중학생 때 광우병 집회에 참석했다는 중도 성향의 대학생 ㄹ씨(22·여·전주)는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하면 나아질 줄 알았지만 달라지는 게 없어서 많이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 외 사회 인식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청년들이 4명씩 선택한 사건에는 IMF 외환위기, 역사교과서 국정화, 민주화운동,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이 있었다.

‘선호하는 미래가 실현되도록 다양한 의견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답은 ‘있다’ 57.1%, ‘없다’ 42.9%였다. ‘있다’는 청년들은 친구(65.9%)를 가장 많이 꼽고 교사·교수(43.2%), 사회 지인(40.9%) 순이었다. 상대적으로 가족(25%)·온라인 지인(15.9%)·종교인(4.5%)은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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