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식재료 의존하던 외식산업…계란파동 이후 앞날은?

2017.08.19 15:37 입력 2017.08.19 17:25 수정

살충제 계란 파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며 출하되는 계란에 대한 전수조사가 진행 중인 16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는 판매중지 안내문을 게시하고 다른 제품으로 계란 매대를 채워놨다./김기남 기자

살충제 계란 파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며 출하되는 계란에 대한 전수조사가 진행 중인 16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는 판매중지 안내문을 게시하고 다른 제품으로 계란 매대를 채워놨다./김기남 기자

한꺼번에 나타났다가 한꺼번에 사라진다. 봄날의 벚꽃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카페베네, 설빙, 쥬씨, 대왕카스테라 등 단일 품종의 매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가 한꺼번에 위기를 겪는 시나리오는 한국 외식업계에 공식처럼 굳어졌다. 대기업의 기획력과 골목상권 장악, 높은 조기퇴직률, 낮은 실업보장책, 낮은 인건비,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쉬운 창업을 유도하는 정부 정책, 유행을 좇는 문화 등이 한국을 ‘프랜차이즈 공화국’으로 만든 원인으로 꼽힌다. 프랜차이즈 중에서도 ‘외식업계’의 번창은 여기에 더해 한 가지 원인을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 없다. 바로 ‘값싼 재료비’이다.

계란의 유통과정을 보여주는 2017년 2분기 축산물 유통실태조사 결과 보고서 / 축산물품질평가원

계란의 유통과정을 보여주는 2017년 2분기 축산물 유통실태조사 결과 보고서 / 축산물품질평가원

■제과류 직격탄, 일부 제품 판매중단
‘살충제 계란’ 파문이 터지자 외식업계가 이에 휩쓸리며 초미의 긴장상태에 들어갔다. 가장 흔하고 값싼 재료의 수급에 차질이 생겼으니 당연한 결과다.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 유통매장은 14일 농림축산식품부의 전수조사가 시작되자 계란 판매를 중단했다가 16일부터 재개했다. 하지만 판매량은 이전보다 현격하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트는 17일 전국 146개 점포에서 판매된 계란은 지난주 목요일의 약 60% 수준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마트는 전국 점포에 계란을 공급하는 농장 57개 중 ‘적합’ 판정을 받은 53개 농장의 계란만 판매하고 있다. 롯데마트의 전국 120개 점포 계란 판매량도 지난주 대비 60% 정도였다. 롯데마트에 계란을 공급하는 산란계 농장은 50여곳이다. 이 가운데 정부의 검사가 끝나 적합으로 판정된 40여개 농장의 계란이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대형마트는 계란 소매판매의 약 40%를 담당하고 있다.

수급이 문제가 아니다. 대형 프랜차이즈 계열사는 수급에 큰 문제를 겪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리바게뜨 등을 운영하는 SPC그룹은 모두 20곳의 산란계 농가와 거래를 하고 있으며, 이번에 10개 농가가 적합 판정을 받아 숨통이 트였다. 뚜레주르를 운영하는 CJ푸드빌도 계약농가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바꿔 생각해보면 대형 양계장과 거래하며 계열화를 진행해 온 프랜차이즈 업체의 ‘관리능력’이 발휘된 것이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 때도 계란 확보에 차질이 생기고 계란가격이 상승해 일부 대형 제빵업체는 주요 제품 생산을 중단하기도 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계란이 들어간 제과류의 판매를 중단했다. 자체조사에서는 공급농가의 계란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나타났지만 시민들의 불안이 가라앉을 때까지 판매를 중단할 계획이다. 반면 도매상에서 계란을 사다가 공급하는 소규모 음식점은 계란 수급과 관련해 뚜렷한 대책이 없다. 자영업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계란파동을 통해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SPC·CJ푸드빌 등 대기업 제과업체라도 여유로운 형편은 아니다. 이번 계란파동을 통해 제과·외식업계 자체가 축소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업계에 번지고 있다. 계란에 대한 불신과 우려가 커지면서 가공식품과 외식을 꺼리는 분위기도 나타나고 있는 탓이다. 심지어 ‘살충제 보상’까지 내건 업체도 나왔다. 치킨 프랜차이즈 또봉이통닭은 17일 전국 520여개 가맹점에서 ‘또봉이통닭’을 먹고 살충제 성분에 오염돼 장기손상 등을 입으면 1억원을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양계환경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진행되면서 이런 심리적 변화가 양계시장의 구조조정에 영향을 미치거나 ‘밀집축산’에 대한 개선이 시도된다면 계란값이 오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과자 및 제과류 값도 줄줄이 오른다는 의미다. 과밀상태의 프랜차이즈 점포로서는 작은 변화가 생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상태다. 이 경우에도 영세업체가 먼저 무너질 것으로 보인다.

■‘살충제 보상’ 1억원 내건 업체도
프랜차이즈 및 외식시장의 성장은 양계산업의 성장을 이끌어왔다. 하루 평균 계란 생산량은 2000년 3000만개를 밀돌았는데, 2015년에는 4000만개 수준으로 늘었다. 지난해 AI의 여파로 계란 생산이 줄어들기 전의 수치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지난 2분기 농식품 유통 실태조사를 보면 도매상이 공급하는 계란 중 16.4%가 2차 가공에 쓰이고 있다. 6.4%는 일반 음식점으로 들어간다. 농축산부는 대형마트 등 소매가로 팔려나간 계란 중에서도 가공식품 등에 쓰이는 경우가 있어 실제로는 더 양이 많을 것으로 내다봤다. 적어도 계란 생산량의 20%는 외식자본과 궤를 함께 하는 셈이다.

정부는 지난해 AI 파문을 계기로 올 6월부터 태국에서 382만톤의 계란을 수입하고 있다. 물량의 10%이기 때문에 시장가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아니지만 양계농가가 계란 생산량 조정을 하지 못하도록 압박을 넣는 데는 충분하다고 양계업 관계자들은 전했다. 그러나 유럽발 ‘살충제 계란’의 경우 수입산이 효과적인 대응카드는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살충제 계란 파문은 값싼 계란을 손쉽게 대량생산하려는 과정에서 불거져나왔다. 도매단계에서의 값싼 재료비가 한국 자영업시장의 과밀화와 외식산업의 폭주를 견인했다면, ‘값싼 계란의 역습’이 자영업계의 교통정리도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어쩌면 지금이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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