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부터 살충제까지…대량 살처분의 늪에 빠진 현대축산 잔혹사

2017.08.19 15:59 입력 2017.08.21 15:19 수정
정상빈 인턴기자

8월 8일 네덜란드의 한 가금류 농가 앞에서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이 불필요한 닭 도살을 멈추라며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APF=연합뉴스

8월 8일 네덜란드의 한 가금류 농가 앞에서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이 불필요한 닭 도살을 멈추라며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APF=연합뉴스

세계가 얼마나 닮아 있는지, 또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는 ‘먹거리 파동’이다. 광우병 쇠고기부터 살충제 계란까지, ‘과학적 현대축산’이 가능한 선진국에서 터져나와 전 지구를 휩쓸다가 ‘현대적 대량도살’로 마무리된다. 스캔들의 원형은 영국 광우병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1984년 영국 서섹스 지역의 한 농장에서 소가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다가 푹 쓰러졌다. 이 농장의 소 133마리가 2년 동안 간질환자처럼 쓰러져 죽었다.

■전염병 발생하면 가축들 살처분
영국 정부가 파견한 역학조사반은 133마리의 소 뇌에서 종양을 발견했다. 동물 사체로 만든 ‘동물성 사료’를 소가 먹기 때문에 광우병이 발병한다고 유럽 학자들은 분석한다. 1986년 영국 중앙수의학연구소(CVL)에서 133마리의 소는 광우병(소 해면상 뇌병증·BSE·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으로 죽었다고 발표했다. 광우병은 영국 축산가에 스멀스멀 기어들어 갔다. 1992년 소 3만8000마리가 광우병에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 1995년에는 영국산 쇠고기를 먹은 ‘인간광우병’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영국 정부는 칼을 빼들었다. 1996년 8월부터 광우병에 걸린 30개월 이상 소 440만마리를 단계적으로 도축했다. 광우병 발병지역도 격리조치했다. 이후 각국 정부는 동물 전염병이 돌면, 전염병 지역의 가축들을 모조리 살처분했다. 이들은 살처분이 가장 효과적인 감염 방지법이라 여겼다. 하지만 영국산 쇠고기는 유럽에 널리 수출됐고, 전염병 퇴치의 즉효약인 살처분도 널리 퍼졌다. 유럽을 거쳐 북미, 아시아까지 뻗어나갔다. ‘현대축산 잔혹사의 서막’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은 영국처럼 ‘축산 살처분’을 우선순위에 두는 나라 중 하나다. 지난 2010년 충남 천안시에서 발병한 구제역은 충남지역 366곳에 퍼졌다. 구제역은 돼지와 소처럼 발굽이 2개로 갈라지는 동물(우제류)에게 주로 발병한다. 입안에 물집이 생기고, 침을 많이 흘리고, 발굽이 헌다.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축산부)에 따르면, 이 구제역으로 모두 46만여마리의 돼지와 소가 땅에 묻혔다. 사람에게 옮기지는 않지만, 전염성이 강해 발병과 동시에 살처분 결정이 난다. 구제역이 퍼질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에서는 ‘예방적 살처분’을 하기도 한다.

정부에서는 구제역 발생원인을 해외유입 또는 잔존 바이러스로 추정하지만, 구체적 유입 경로는 밝혀낸 적이 없다. 구제역이 퍼지면 소와 돼지 가격이 떨어지고, 관광객이 감소하는 등 지역경제에 타격이 된다. 이에 정부는 병을 빠르게 덮어버릴 수 있는 살처분을 우선순위에 올려두는 것이다. 지역 환경단체와 동물보호단체들이 무차별적인 ‘예방적 살처분’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거나 일부 농가가 정부의 살처분 권고를 듣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살처분은 계속되고 있다. 기독교와 불교, 원불교, 천도교, 천주교 등 5대 종단 생명평화종교인협의회는 “전염병이 발생하기만 하면 반경 3㎞ 이내의 가축을 몰살시키는 살처분 정책은 실효성도 없을뿐더러 관계당사자와 국민 모두에게 위협이 된다”고 밝혔다. 2014년까지는 살처분에 대부분 공무원이 동원됐다. 하지만 이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등 후유증이 심각하게 나타나자, 2015년부터 가축 매물을 전문적으로 하는 용역업체에 의뢰해 살처분을 하고 있다.

■살충제 계란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지난 2016년 11월 중순에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AI)로부터 조류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는 살처분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AI는 닭, 오리 같은 조류에서 H5N6라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의 감염으로 발생하는 급성전염병이다. 감염이 되면 산란계의 경우 산란율이 차츰 떨어지면서 폐사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번 AI는 산란율이 감소할 틈도 없이, 곧바로 닭이 폐사할 만큼 급성으로 증상이 나타났다. 2016년 11월 23일 충남 아산지역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2000여마리가 폐사했다. 농림부에 따르면 AI 발생 후 6개월 만에 3만8000여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이 중 닭이 83.3%(3154만마리)를 차지한다. 오리의 경우 10마리 가운데 4마리에 가까운 7.9%(332만마리)가 땅에 묻혔다.

계란도 살처분당할 위기에 몰렸다. 지난 14일 농축산부는 국내산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이 검출됐다며 산란계 3000마리 이상을 키우는 농장의 계란 출하를 금지시켰다. 우리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네덜란드는 전국 180개 산란계 농장을 폐쇄했고, 산란계 100만마리도 살처분했다. 농장의 품번도 공개했다. 유럽에서는 이번 사안으로 국가 간 책임 공방 스캔들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독일 정부는 이 같은 계란이 유통된 것은 “범죄”라고 비난하며 벨기에와 네덜란드 당국을 비난했다. 이미 몇 달 전 각국의 가금류 농장에서 관련 성분이 들어간 살충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위험성을 인지했음에도 이 같은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EU 집행위도 벨기에 정부가 피프로닐 오염 계란을 발견하고 한 달이 지난 7월 중순에야 이를 EU에 통보한 점을 지적했다. 벨기에 정부는 지난해 11월에 네덜란드에서 피프로닐 오염 계란의 존재를 시사하는 내부 보고서가 이미 있었다며 책임을 넘겼고, 네덜란드 정부는 당시 계란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고 반박하며 논란이 커졌다.

이번에 문제가 된 피프로닐은 가축이나 애완동물에 기생하는 진드기를 없애는 데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하지만 피프로닐을 닭에 뿌려서는 안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국제식품규격(CODEX·Alimentarius)에 따라 정한 피프로닐 잔류 기준은 계란 0.02ppm, 닭고기 0.01ppm이다. 문제가 된 경기 남양주 마리농장에서 생산한 계란은 검출된 피브로닐 양이 0.0363ppm이었다. 단기간에 급성독성이 생길 수 있는 피프로닐 섭취량은 몸무게 60㎏인 성인의 경우 0.54㎎/㎏이다. 계란 한 개의 무게가 60g임을 감안할 때 문제가 된 계란 200개 이상을 한 번에 먹어야 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위험정보의 공유와 책임 은폐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은 충격적이다.

<정상빈 인턴기자 literature09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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