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학생 엄마·아빠는 왜 이웃 주민들 앞에 무릎을 꿇었을까?

2017.09.06 16:23 입력 2017.09.13 16:20 수정

지난 5일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토론회에서 한 학부모가 큰 절을 했습니다. 무릎을 꿇은 학부모들도 있었습니다. “애가 새벽6시에 일어나야 한다” “제대로 자기 표현도 못하는 아이들이, 학교를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새벽마다 일어나는 것을 너무 힘들어 한다”며 눈물로 호소한 학부모도 있었습니다. 서울 강서구 옛 공진초등학교 폐교 부지에 특수학교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향해서였습니다. 일부 주민들은 같이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돌리지는 않았습니다. ‘저거 다 쇼’라는 반응을 보인 지역 주민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학부모들은 왜 무릎을 꿇고, 절까지 했을까요? 왜 “장애 학생은 새벽 6시에 일어나야”하는 걸까요? 또, 지역민들은 왜 이 절절한 호소에도 마음을 돌리지 않은 걸까요?

▶관련기사: 특수학교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무릎꿇고 큰절 올린 장애인 학부모들

5일 저녁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토론회에서 장애 아이를 둔 한 학부모가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 노컷뉴스 제공

5일 저녁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토론회에서 장애 아이를 둔 한 학부모가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 노컷뉴스 제공

■서울서 신설된 특수학교, 15년 동안 ‘단 1곳’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의 특수교육 대상자는 2006년 6만2538명에서 지난해 8만7950명으로 10년 사이 2만5412명(40.6%)이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전국의 특수학교는 143개교에서 170개교로 18.9% 늘었고, 정원은 2000여명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대상자는 2만명 이상 늘었는데, 정원은 2000명 는 겁니다.

서울은 더 심각합니다. 2017년 4월 기준으로 서울시에 거주하는 특수교육 대상자의 수는 1만 2804명입니다. 반면 서울시의 특수학교(29개소)에 다니는 학생의 수는 4457명입니다. 수용정원이 대상자의 3분 1 수준입니다.

이유는 특수학교가 제때 증설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경우 지난 15년 동안 신설된 특수학교는 올초 개교한 효정 초등학교 단 1곳 뿐입니다. 신설을 하려 했으나 번번히 무산됐습니다. 앞서 소개한 공진초 폐교부지 특수학교 설립 계획 역시 4년째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013년 서울 강서구의 공진초등학교가 마곡 지구로 이전하자 폐교 건물을 리모델링 해 특수학교를 설립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강서구에는 수용해야 할 특수교육대상자가 122명이나 더 있었지만 주민들은 “강서구에 특수학교가 이미 1곳 있으니 폐교 부지엔 ‘한방병원’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교육청은 할 수 없이 설립 부지를 마곡 지구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 주민들 역시 강력 반발했습니다. 결국 대체 부지를 찾지 못하자 올초 다시 옛 공진초등학교 인근 주민들에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큰절까지 했지만 주민들은 마음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서울시내 특수학교 설립 15년만에 가능할까···서울교육청 오늘 주민 2차토론회

2001년 10월, 경남 김해시 화목동 주민들이 특수학교 건립부지인 폐교 입구를 농기계 등으로 막아놓고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1년 10월, 경남 김해시 화목동 주민들이 특수학교 건립부지인 폐교 입구를 농기계 등으로 막아놓고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새벽 6시에 일어나야 하는” 이유

특수학교 신설이 번번히 좌절되면서 서울의 경우 25개 자치구 중 특수학교가 한 곳도 없는 곳이 8곳에 달합니다. 양천구와 금천구, 영등포구, 용산구, 성동구, 동대문구, 중랑구, 중구 등입니다. 특수 학교가 없는 지역의 장애학생들은 다른 지역의 특수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히 통학거리와 시간이 늘어납니다. 지난 5일 토론회에서 장애학생 학부모 한명이 “애가 새벽6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울먹였던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이 특수학교 학생 464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버스로 30분 이상 통학해야하는 학생이 절반 가까이였고, 30분∼1시간 미만인 학생은 41.8%, 1시간∼2시간 미만인 학생도 4646명중 138명이나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10년간 장애학생 2만5천명↑…특수학교 수용인원은 2천명 늘어

출처: 세계일보

출처: 세계일보

■특수학교의 ‘과밀화’, 일반학교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

이 때문에 인접 지역의 특수학교는 ‘과밀화’에 시달리게 됩니다. 해당 지역 학생 뿐 아니라 특수학교가 없는 인근 지역의 학생들까지 받아야 하니까요. 법적으로 특수학교(지적장애)의 중학교 과정은 1개 학급당 6명, 고교는 7명까지 수용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그러나 2016년 기준으로 중학교는 1개 학급당 평균 7.4명, 고교는 7.5명으로 법적 수용한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특수학교의 과밀률은 중학교 과정은 164%, 고교는 152%에 달하고, 서울 송파구의 한 특수학교도 중학교 153%, 고교 126%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문제는 일반학교에서와 달리 특수학교에서의 ‘과밀화’는 심각성의 차원이 다르다는 겁니다. 지적 또는 지체 장애가 있는 학생들의 경우, 교사가 일일히 돌아다니며 책장을 넘겨줘야 하는 등 손이 훨씬 많이 갑니다. 돌발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아 돌봄에서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한 특수교사는 “학생이 수업 중 갑자기 울거나 서서 돌아다니기도 하고, 갑자기 일어서서 교실 밖으로 나가버리는 경우도 생긴다”고 말합니다. “그 학생을 쫓아나가 다시 데려와 자리에 앉히고, 달래는 과정 등의 연속”이라며 “학생이 1~2명만 늘어도 수업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결국 적정 수준의 정원을 초과하면, 학생들에 대한 교습과 돌봄이 제대로 이뤄지기가 힘들고, 교사들 역시 학생들의 돌발행동 등에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하면서 부상을 입는 경우도 생깁니다.

▶관련기사: 특수교육 예산 제자리걸음, 과밀학급 ‘폭발’
▶관련기사: [교육칼럼] 얻어맞는 특수교사들의 교권

출처: 내일 신문

출처: 내일 신문

■70%는 특수학교 가지도 못해

그나마 특수학교에 들어갈 기회라도 있었던 아이들은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지난해 기준 전체 특수교육 대상자의 29.5%만이 특수학교 또는 특수교육지원센터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나머지 70.5%는 일반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특수학급이 아니라 통합학급에서 비장애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합니다.

물론 비장애 학생과 장애 학생의 통합교육은 장애학생의 발달과 장애인식 개선 등에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적인 통합 교육을 하기에는 현실은 아직 열악합니다. 일반 학교의 ‘완전 통합학급’을 맡는 교사들은 대부분은 특수교사가 아닌 30~60 시간 정도의 관련 연수를 받은 일반 교사입니다. 또 이들을 돕는 특수교육실무사도 부족합니다. 중증 장애를 가진 학생들엔 잘 맞지 않습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통합 학급의 장애 학생들이 비장애 학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등 적응에 실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습니다.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가 공개한 교육현장의 장애아동 관련 민원 641가지 중에는, 특수반 보조교사가 없어 혼자서 책장을 넘기는 것도 어려운 뇌병변 장애1급 학생이 학교생활을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사례, 같은 반 친구들이 자폐성 장애 학생을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성희롱을 일삼았는데도 학교폭력위원회에서 주동자 학생의 반을 옮기는 수준에서 사건을 마무리한 사례 등이 소개된 바 있습니다.

▶관련기사: [어른들 이기심에 눈물 흘리는 장애학생│③ 준비 안된 ‘물리적 통합’] 장애학생 70% 일반학교 다닌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형제가 집을 나서며 인사를 하고 있다. (2007년) /강윤중 기자

특수학교에 다니는 형제가 집을 나서며 인사를 하고 있다. (2007년) /강윤중 기자

■“집값, 안 떨어져”

여기까지 보면 특수학교의 증설은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듯 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지역민들의 반발에 특수학교 설립 계획은 예정 부지만 이리저리 바꾸다가 공중에 붕 뜨고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하며, 눈물로 호소를 해도 지역민들이 마음을 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질 거라는 우려’ 입니다. 특수학교를 일종의 ‘기피 시설’로 보는 겁니다.

그러나 올초 나온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이는 ‘막연한 우려’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교육부는 지난 4월, 부산대학교 교육발전연구소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실시한 ‘특수학교 설립의 발전적인 방향 모색을 위한 정책연구’를 결과를 내놨습니다. 이에 따르면 2006∼2016년 특수학교 인접지역의 땅값은 4.34%, 비인접지역 땅값은 4.29% 올라 차이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단독주택값의 경우 같은 기간 특수학교 인접지역에서 2.58%, 비인접지역에서 2.81% 상승했고, 아파트값은 특수학교 인접지역이 5.46%, 비인접지역이 5.35% 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역시 “특수학교와의 거리에 따른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고 연구진은 해석했습니다. 또 1996년도 이후 설립된 60개 학교를 표본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적어도 ‘집 값이 떨어진다’는 우려 만큼은 말그대로 ‘막연한 우려’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주민 여러분, 한번 연구 결과를 믿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관련기사: “특수학교 설립, 주변 집값 떨어트린다는 주장은 편견”(종합)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