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 내 딸, 일반 학교 졸업…다른 아이들 위해 무릎 꿇어”

2017.09.12 14:45 입력 2017.09.12 22:03 수정

‘강서 특수교’ 설립 토론회서 눈물로 허용 호소한 장민희씨

지적장애 딸을 둔 장민희씨가 지난 11일 서울 정동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일반 초·중·고를 졸업한 딸이 비장애 학생들과 섞여 생활하며 경험한 고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지적장애 딸을 둔 장민희씨가 지난 11일 서울 정동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일반 초·중·고를 졸업한 딸이 비장애 학생들과 섞여 생활하며 경험한 고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딸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세 살을 넘겨서도 말을 하지 못했고, 하더라도 단어가 아닌, 한 글자씩만 겨우 내뱉었다. 엄마는 서지 못하고 기어서만 다니는 아이를 보고서야 가슴을 졸이며 병원을 찾았다. ‘지적장애’라는 의사의 진단에 엄마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아이는 또래에 비해 지능지수가 현저히 낮았다.

‘태교에 문제가 있었나’ ‘출산하면서 뭐가 잘못된 건가’ 엄마는 자신을 한없이 탓했다. 초·중·고 등하교를 함께했지만, 학교 안 ‘왕따’는 막을 수도, 또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할 아이들이 있을까.’ 가슴으로 눈물만 삼킨 엄마는 그렇게 20년 가까이를 버텼다.

지난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은 집 근처 자치구가 운영하는 자활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다.

지적장애(1급) 딸(20)을 둔 장민희씨(45)는 아이의 장애 판정을 듣는 순간 앞이 캄캄해졌다고 했다. “억장이 무너졌죠. 솔직히 죄책감이 더 컸어요. 제가 뭘 잘못했는지부터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앞으로 아이를 위해 우리 가족은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걱정부터 앞섰죠.”

지난 11일 경향신문과 만난 장씨는 아이의 학교 생활을 묻자 눈물부터 보였다. “딸아이가 중학교 다닐 때였어요. 보통 체육시간에 비가 오거나 날씨가 너무 더우면 실내 수업을 하잖아요. 그날은 폭염으로 숨도 쉬기 힘든 날로 기억하는데, 실내 수업으로 바뀐 사실을 우리 아이만 모르고 있었던 겁니다. 다른 아이들이었다면, 그 상황에서 ‘실내 수업으로 바뀌었구나’ 하고 그냥 교실로 들어왔을 텐데, 그럴 만한 판단 능력이 없는 거죠. 결국 한 시간가량을 뙤약볕 아래서 혼자 운동장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비장애 학생들이 딸아이를 폭행하거나 대놓고 무시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특별히 어울리는 친구도 없었다. “아이들의 왕따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에요. 그 아이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해요. 저만 해도 딸을 셋 키우고 있는데, 큰애와 막내는 비장애 아이들입니다. 부모 입장에서 우리 아이와 친구가 돼달라고 하는 것이 욕심이죠. 공감도 안되고, 대화도 통하지 않는 아이와 친구가 되려고 하겠어요. 그나마 간혹 학교가 주최하는 자원봉사 행사에서 우리 아이와 어울려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죠.”

장씨는 최근 ‘무릎 꿇은 엄마’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지난 5일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2차 주민토론회’에서 지역 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특수학교를 짓게 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당시 토론회에서는 무릎 꿇은 장씨를 향해 학교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쇼 하지 마라”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라는 등의 고성과 야유를 쏟아냈다.

장씨는 “두 달 전 1차 토론회에서는 흥분한 주민들이 의자도 집어 던지려고 하고, 욕설도 심하게 했다”며 “이번엔 그나마 분위기가 조금 바뀐 것 같아 한편으로 다행스럽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독립적인 일상생활이 어려운 지적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는 아이들의 학습능력에 맞춰 유치원부터 초·중·고 교육과정을 수행한다. 한 반 정원이 10명 안팎의 소규모로 짜여있어 보다 적극적인 관리와 보호, 눈높이 교육이 가능해진다.

강서구에는 특수학교 한 곳이 있다. 하지만 입학 대상이 되는 장애학생 10명 중 1명가량만 이곳에서 수업하고 대다수는 일반학교를 다니는 형편이다. 서울시교육청은 2013년부터 강서구 옛 공진초등학교 자리를 설립 예정지로 선정하고 140명 정원의 특수학교(서진학교)를 짓기로 했지만, 주민들의 반대에 가로막혀 있는 상태다.

하지만 장씨의 눈물 어린 호소를 영상이나 언론 보도로 접한 사람들의 격려와 지지가 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상에서 학교 설립을 지지하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특히 강서구 지역 주민분들도 ‘힘내라’고 격려하는 문자와 전화를 많이 주시고 있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장씨의 딸은 특수학교가 들어서더라도 학교를 다닐 일은 없다. 장씨는 다른 장애학생과 부모들을 위해 무릎을 꿇었다고 했다. “장애 아이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장애를 지닌 아이가 비장애 학생들과 섞여 생활하면서 경험한 상처와 아픔을 곁에서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은 말로 다 할 수 없죠. 우리 아이는 이미 졸업을 했지만, 그들의 절박한 심정을 너무 잘 아니까 저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했던 것 같아요. 도움이 된다면 무릎 꿇는 것보다 더 한 일도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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