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위·남북관계 주요 정책 ‘국민투표 의무조항’ 만들고

2018.02.19 20:58 입력 2018.02.19 21:04 수정

더 먼 미래를 위한 개헌

개성공단 폐쇄 등 대북정책 대통령의 일방 결정 폐단 막고

분단 현실 반영 안된 ‘영토 조항’ 통일 연관 지어 수정 여부 정해야

경기 파주시 임진각 통일전망대에 설치된 통일 기원 우체통.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미지 크게 보기

경기 파주시 임진각 통일전망대에 설치된 통일 기원 우체통.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간 대화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한반도에 평화 기류가 감지되는 것만으로도 발생하는 이익이 적지 않다. 동계올림픽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금융시장을 짓눌러온 ‘지정학적 리스크’도 약해졌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삼지연관현악단 공연 등을 둘러싸고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반북 정서가 형성되기도 했지만 통일의 당위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남북 분단과 대치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경제적 비용과 ‘색깔론 낙인’ 등 사회적 분열상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북한은 군사적으로는 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통일과 교류의 대상이다. 하루라도 빨리 전쟁의 불안에서 벗어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헌법 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이참에 남북 및 통일과 관련된 조항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북정책 국민 합의, 헌법에 명시해야”

130개 조항으로 구성된 현행 헌법에서 통일과 관련된 조항은 6개로 분류된다. 국가 기틀을 규정한 총강에 속하는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와 대통령의 의무를 규정한 제66조 3항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 대통령 취임 선서 내용을 규정한 제69조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등이다.

지난 10년간 남한 정부는 통일과 반대되는 길을 걸었다. 특히 2016년 2월10일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은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원인을 제공한 쪽은 물론 북한이다. 북한은 같은 해 1월6일 4차 핵실험을 실시하고, 2월7일에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극단적인 도발을 거듭했다. 그러나 개성공단 폐쇄 조치는 국민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국민 의사와도 반하는 일방적 결정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통해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지만 NSC에 이 같은 권한이 있는지 의문이다. 1990년 전후 노태우 정부가 남북 문제를 대통령 통치행위로 규정한 것을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 논리로 사용했다. 개성공단 폐쇄로 남북 간 경제협력은 2003년 이후 처음으로 완전히 중단됐고, 한반도의 긴장 상태는 더욱 높아졌으며, 공단 입주기업과 협력업체들은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었다.

학계와 시민사회단체 등은 중요한 대북정책의 경우 대통령의 일방적인 결정이 아닌 국민적 합의를 거친 뒤 추진하도록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법 제72조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를 ‘대통령은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은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등 의무조항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북한체제 부정하는 영토 조항 손봐야”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현행 헌법 제3조에 따르면 북한 지역은 대한민국의 영토에 속한다. 한국이 국제사회의 기준과는 다르게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도 헌법 제3조에 근거한다. 이 조항은 1948년 제헌헌법 그대로다. 제헌헌법에서는 제4조였다가 1962년 5차 개정 헌법에서 제3조로 바뀌었다. 제헌헌법 당시에는 분단이 이렇게 오래 지속될 것으로 생각지 않아 이 같은 영토 조항을 만들었다. 그러다 5차 개정 헌법의 부칙에서 ‘국토 수복 후의 국회의원의 수는 따로 법률로 정한다’며 처음으로 분단을 명시했다.

북한 역시 분단 상황을 인정하지도, 오래 갈 것으로 보지도 않았다. 북한은 1948년 헌법 제정 당시 영토 조항을 만들지 않았다. 다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북한 헌법) 제103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부는 서울시이다’라는 수도 규정을 뒀다. 그러다 1972년 6차 개정 헌법에서 수도를 평양으로 바꿨다. 북한은 2009년에 헌법을 개정했지만 여전히 영토 조항은 두고 있지 않다.

영토 조항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는 4가지로 나뉜다. 첫째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영토 조항을 헌법에 규정하지 않는 국가들도 많은 상황에서 통일 조항인 4조와 모순되고, 국가보안법의 헌법상 근거가 되는 영토 조항을 굳이 둘 필요가 없다는 취지다. 둘째는 전면적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분단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한반도의 고유한 영토 등’의 표현으로 현재보다 확장하는 개념으로 명시하자는 것이다. 셋째는 조항에 단서를 추가하거나 하위 법률에 위임하자는 주장이다. ‘대한민국 헌법의 효력 범위를 남한 지역에 한정한다’ 등을 3조 뒤에 추가하거나 ‘영토 범위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내용은 개정이 비교적 쉬운 법률에 두자는 것이다. 넷째는 굳이 개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통일이 왜 필요한지 근거로 두기 위해 그대로 둬야 한다는 취지다.

남북이 분단되기 전 상황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준으로 명시하자는 의견도 있다. 1919년 4월 제정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영토 규정을 두지 않았지만, 같은 해 9월 1차 개정에서 ‘대한민국의 강토는 구한국의 판도로 한다’고 명시했다. 이어 1925년 4월 2차 개정에서 삭제됐다가 1944년 4월 5차 개정에서 ‘대한민국의 강토는 대한의 고유한 판도로 한다’고 바꾼 바 있다. 고유한 판도는 1910년 이전 대한제국 혹은 이를 계승한 1919년부터 1945년 사이의 대한민국의 영토로, 백두산정계비에 따라 조선의 영토에 속하는 간도와 연해주, 러시아가 점령한 두만강 하류의 육지화한 녹둔도 등을 가리킨다.

■“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논란 끝내야”

헌법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추진”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단어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자유를 삭제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로 하자는 주장, 아예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표현 자체를 삭제하자는 주장 등이다.

반면 ‘자유’를 삭제하면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같다며 절대 바꿔서는 안 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은 독일 기본법(헌법)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Freiheitlich-Demokratische Grundordnung)’에서 유래한 단어로 알려져 있다. 사회민주주의(Soziale Demokratie)와 대립하는 자유민주주의(Liberale Demokratie)와는 다른 개념이다. 문맥상으로 ‘자유로운 기본질서+민주적인 기본질서’로, 정리하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주의 헌법질서’라고 학계에서는 해석한다.

그러나 ‘자유민주적=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라는 인식이 있다. 헌법재판소는 1990년 4월 국가보안법 7조 등의 위헌 여부를 다룬 사건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란)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 우리의 내부 체제를 파괴·변혁시키려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포함시킨 것이다. 그러나 헌재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본질적 내용은 법치국가 원리의 기본요소인 ‘기본적 인권의 존중·권력분립·사법권의 독립’과 민주주의 원리의 기본요소인 ‘의회·복수정당·선거제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이전 판례에서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를 뺐다.

소모적인 이념 논쟁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로 풀어 쓰자는 주장이 나온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90년대 남북한의 유엔 가입, 남북 간 대화와 협력 전개, 통일 의지의 확대 등 지난 30년 동안 현실이 많이 변했다”며 “이에 따라 시대의 정치적 산물인 헌법도 손질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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