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변화는 급행, 법률 개정은 완행

2018.09.23 10:27

·급변하는 사회상 반영 못하는 법 관련 조항 현실에 맞게 수정해야

아이는 허니문 베이비였다. 교제 2년 만에 결혼식을 올리고 곧바로 아이가 생겼다. 임신 9개월차인 김가영씨(32·가명)는 그러나 현재 남편과 별거 중이다. 남편이 상의도 없이 사채를 끌어다 주식에 투자한 게 문제가 됐다. 임신 7개월이 됐을 무렵 술을 마시고 임신한 김씨의 배를 발로 찼다. 김씨는 그길로 신혼집에서 나와 친정으로 들어갔다. 친정 부모님은 “아이는 우리가 충분히 길러줄 재력이 된다”며 이혼을 권유하셨다.

2004년 12월 15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호주제 수호 범국민궐기대회’에 참가한 유림과 시민들이 ‘호주제 폐지 반대’를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서성일 기자

2004년 12월 15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호주제 수호 범국민궐기대회’에 참가한 유림과 시민들이 ‘호주제 폐지 반대’를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서성일 기자

김씨 역시 남편과 이혼을 하기로 마음먹었지만 한 가지 걸리는 문제가 있었다. 주택담보대출 등의 문제로 결혼 전에 이미 혼인신고를 했다는 점이었다. 혼인신고서에는 의무 체크사항으로 앞으로 태어날 자(子)의 성(姓)과 본(本)을 모(母)의 것으로 따르겠느냐는 질문이 있다. 김씨는 당시에는 당연히 ‘아니오’에 체크했다. 그러나 이제는 곧 태어날 아이에게 남편의 성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이혼을 원하지 않았다. 재판까지 가는 사이 아이는 태어날 게 뻔한 상황이었다. 부모님을 통해 법률상담을 받아봤지만 대답은 한결같이 “일단 남편 성으로 출생신고를 한 뒤 성·본 변경신청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모(母)의 것으로 성·본 변경신청을 하더라도 남편의 동의서가 있어야 한다. 김씨는 단 하루도 태어날 아이에게 남편의 성과 본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법은 김씨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자녀의 성·본 결정 협의시점 변경 검토

여성가족부는 지난 8월 30일 제3차 건강가정 기본계획 보완계획을 발표하고 자녀의 성·본 결정 협의시점을 혼인신고 시에서 자녀출생 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혼외자인 자녀가 출생과 함께 모(母)의 성을 따르다가 친부가 자녀를 인지하는 순간 자동으로 친부의 성으로 변경되는 민법 제781조 5항 조항을 개정, 친부가 자녀를 인지하더라도 아이가 기존에 쓰던 성을 그대로 유지하되, 자녀의 성을 변경할 때는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 결정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변화된 사회상을 정부 역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계획은 어디까지나 계획이다. 실제 이 같은 계획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따라와야 한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12일 “이번 기본계획은 정부 합동으로 발표한 것으로 부처 간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면서 “법 개정은 법무부 소관이기 때문에 세부적인 방식은 법무부에서 추진·검토할 것이고 이미 정부 과제로 채택된 이상 여성가족부도 끝까지 관심을 갖고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상을 모두 반영할 수 없다. 법무부가 민법개정안을 발의하더라도 국회 상임위를 통과해야 한다. 그 이전에 법제사법위원회 심의를 거치는 등의 과정이 이뤄져야 한다. 변화하는 가족형태에 대한 법 개정 요구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있었지만 법은 아주 천천히, 느리게 변해 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호주제와 동성동본금혼제다.

동성동본금혼제는 말 그대로 성씨가 같고(同姓), 본이 같은(同本) 사람은 결혼할 수 없도록 법으로 금지한 것을 말한다. 지금으로 보자면 S.E.S 전 멤버 유진과 배우 기태영은 이 법이 여전히 존재했다면 혼인신고를 할 수 없다는 의미다.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당연히 혼외자가 된다(배우 기태영의 본명은 김용우, 유진의 본명은 김유진이다). 불과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동성동본 간의 결혼은 “금수만도 못한 짓”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 역시 남성 위주의 성과 본을 중심으로 혈육관계를 규정지으면서 나온 남녀차별적인 법이었다. 김씨가 박씨 여성과 결혼하든 이씨 여성과 결혼하든 그 자식들은 김씨 성을 가졌다. 여성의 성은 배제된 채 남성의 성만 따르다보니 부의 성과 본이 결혼을 금지하는 기준이 돼버린 셈이다.

1970년대 가정법률상담소 직원들이 가족법 개정운동을 위한 가두 캠페인 및 서명운동을 벌이는 모습. 왼쪽에서 세 번째 인물이 이태영 초대 소장이다./경향신문 자료사진

1970년대 가정법률상담소 직원들이 가족법 개정운동을 위한 가두 캠페인 및 서명운동을 벌이는 모습. 왼쪽에서 세 번째 인물이 이태영 초대 소장이다./경향신문 자료사진

뒤늦게 사라진 호주제, 동성동본 금혼제

불과 30~40여년 전만 해도 동성동본 연인 비관자살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동반자살을 하거나 연인을 숨지게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벌어졌다. 동성동본을 이유로 연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1977년 2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한 관광호텔 10층에 묵고 있던 연인은 ‘동성동본이라고 결혼을 못 하게 하지만 헤어질 수도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서로의 손을 묶은 채 투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5년간 교제해 온 연인과 동성동본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당한 한 남성이 여관에서 음독자살을 하는 일도 벌어졌다. 앞서 1963년에는 동성동본인 연인이 술에 취해 잠들자 허리띠로 남자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뒤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미수에 그친 여성이 경찰에 자수하는 일도 생겼다.

70년대 후반 들어 여성계를 중심으로 동성동본 금혼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1977년 제2차 가족법 개정운동을 벌였다. 동시에 동성동본 금혼제도 폐지운동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1977년 6월 1일부터 동성동본 금혼제도 피해자 신고센터를 열어 접수를 받았다. 불과 한 달 만에 161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국회는 그해 12월 10일 동성동본 연인들에 대한 혼인신고를 78년 12월 31일까지 1년간 한시적으로 허가하는 것을 시작으로 1988년과 1996년 총 세 차례 ‘혼인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 1년간 혼인신고를 받아 동성동본혼을 허용했다. 동성동본 금혼제가 정식으로 민법에서 빠져 폐지된 것은 그로부터 더 오랜 뒤의 일이었다. 헌법재판소는 1997년 7월 16일, 재판관 5대(위헌) 2대(헌법불합치) 2(합헌)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으로 당시 6만여쌍의 동성동본 부부가 혼인신고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법 개정은 그로부터 8년 뒤에 이뤄졌다. 이제 우리 민법상 동성동본 금혼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8촌 이내의 혈족 사이가 아닌 이상 혼인신고가 가능하다.

수십 년간 사회적으로 갈등을 빚어온 호주제 역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민법 내 해당 조항이 모두 삭제됐기 때문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나’를 중심으로 작성되는 ‘가족관계등록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호적등본이 존재했다. 당시만 해도 ‘호적등본을 뗀다’라는 표현이 통용됐다. 호주제도는 남성 가장을 중심으로 입적·복적·일가 창립·분가 등이 이뤄지는 가족 형태다.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기능했다. 한 집안의 가장(아버지)이 사망했을 때 어머니가 가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들 밑으로 입적됐던 것도 호주제의 영향이었다. 호주제는 2005년 3월 2일 민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시적으로 동성동본 결혼을 허용한 제2차 혼인에 관한 특례법 공포안 문건. 1987년 11월 19일에 최종 결의돼 이듬해인 1988년 한시적으로 동성동본 혼인신고가 가능했다./국가기록원

한시적으로 동성동본 결혼을 허용한 제2차 혼인에 관한 특례법 공포안 문건. 1987년 11월 19일에 최종 결의돼 이듬해인 1988년 한시적으로 동성동본 혼인신고가 가능했다./국가기록원

기본원칙은 아버지 성과 본을 따라야

호주제 폐지를 놓고 수많은 사회 갈등이 벌어졌다. 동성동본 금혼을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호주제가 폐지되면 나라가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각 지역의 유림(儒林)이 소복(素服)에 갓을 쓰고 시위를 벌였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남성들이 머리카락을 깎았다. 호주제 폐지 논의가 시작된 것은 15대 국회였지만 호주제 폐지가 담긴 민법개정안이 통과된 것은 17대 국회에서였다. 헌법재판소가 2005년 2월 3일 호주제를 규정한 민법 제778조, 781조 1항 일부 조항 등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더 이상 개정을 미룰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남성 가장을 중심으로 한 입적·복적·일가 창립·분가 등의 기록이 사라졌다. 가족의 범위는 부부를 중심으로 그 직계혈족과 형제자매로 변경됐다.

그러나 이때도 자녀가 출생하면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은 기본원칙으로 명시돼 있었다. 단서조항으로 부모의 협의에 의해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했으나 실제 이 단서조항에 따라 이성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특별한 사유 없이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것은 이상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법원의 허가를 받아 자녀의 성과 본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사후 보완규정도 명문화했지만 법원 판결로 성·본 변경이 인용되는 사례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미성년 자녀를 둔 재혼가정에서 새아버지의 성을 따르기 위해 성·본 변경신청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남편의 가정폭력으로부터 미성년자인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성·본 변경 및 개명을 하는 등 특별한 사정 외에는 법원으로부터 성·본 변경 결정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호주제 폐지 이후 법원은 2008년 1월부터 성·본 변경신청을 받아 심리해 왔다. 2009년 12월 대법원이 자녀의 성·본 변경은 원칙적으로 신청하는대로 허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성·본 변경이 비교적 쉬웠다. 당시 일선 법원의 인용률이 80~90%에 육박했다. 2010년 한 해에만 8290건의 성·본 변경신청이 접수돼 이 중 7238건(8.3%)이 허가됐다. 2011년에는 7493건 중 6485건(86.5%), 2012년, 2013년에는 각각 88.3%, 75.4%로 높은 허가율을 보였다.

까다로운 성·본 변경신청 요건

그러나 얼마 못가 성·본 변경에 제동이 걸렸다. 대법원 특별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가 2014년 기존 판례와 다른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당사자의 의사에만 주목해 성·본 변경신청을 받아줘서는 안 되고 당사자의 의사뿐만 아니라 성·본 변경으로 인한 개인적·사회적 불이익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때부터 일선 법원의 성·본 변경신청 요건은 까다롭게 변했다. 현재 변호사업계에서는 성·본 변경서류 제출시 같이 내야 하는 ‘신청사유서’를 구구절절하게 써야 한다는 일종의 팁(tip)까지 제공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정부 합동으로 ‘자’의 성·본을 결정할 수 있는 시점을 ‘혼인신고시점’에서 ‘출생신고시점’으로 확대하는 계획을 발표한 것은 이 같은 사회 변화를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국가가 인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입법부를 구성하는 정치인들도 변화에 조금씩 귀를 기울이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 19대 대선후보 공약으로 1인가구 지원책을 내놓기도 했다. 심 의원은 당시 1인가구, 또는 공동체 형태로 엮인 가족, 동성(同性)이거나 그밖의 사유로 법적 혼인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동거가구를 법으로 보호하는 ‘동반자등록법’ 제정을 대표공약으로 내놓았다. 기존의 고정적 ‘가족형태’가 아닌 새로운 가족형태 역시 법으로 지원하겠다는 의미다. 소형임대주택이나 공공원룸주택을 확대하고 20대 단독세대주에게도 전세자금대출을 허용하는 등 1인가구를 전제로 한 각종 공약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공약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가족의 형태를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규정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국회를 중심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민주당 의원 12명은 앞서 지난 2014년 4월 11일 ‘건강가정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건강가정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사실혼으로 이뤄진 가족, 독신가구, 동거가구 등 혼인·혈연·입양 외의 관계로 이뤄진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대해서도 ‘가족’으로 인정하고 각종 지원책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률안은 법사위까지 논의가 이뤄지다 2016년 5월 29일 19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지만 재발의될 예정이다.

여전히 사회는 다양한 형태로 변하고 있다. 가족의 형태도 분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부모와 두 자녀, 4인가구를 전제로 한 지원책이 다수를 차지한다. 2018년을 기준으로 1인가구는 561만8677가구로 전체 가구수의 28.6%를 차지하고 있다. 1인가구가, 동거가족이 정치인들의 당락을 결정하는 중요한 ‘유권자’로 다가오고 있다. 비록 그 속도가 느릴 뿐이다. 사회가 변하면 법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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