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때 첫 등장 전두환에 “자상·감탄”…전비어천가의 시작

2018.10.26 06:00 입력 2018.10.26 06:02 수정

혜성같이 등장 1979년 11월6일 전두환 당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이 10·26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발표에서 전 합수본부장은 “외부세력이나 군의 관련이 전혀 없다”고 밝혔지만 그전부터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 대한 연행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5공 전사>는 말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혜성같이 등장 1979년 11월6일 전두환 당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이 10·26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발표에서 전 합수본부장은 “외부세력이나 군의 관련이 전혀 없다”고 밝혔지만 그전부터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 대한 연행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5공 전사>는 말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5공 전사 속 ‘전두환’

참으로 자상한 지시…엄청난 내용 지시하면서도 담담
경황 없는 와중에도 계획은 빈틈 없어
예비차량까지 세심하게 조치해준 배려에 감탄

<제5공화국 전사(前史)>에서 ‘全斗煥’(전두환)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된 10·26 사건 직후다. <5공 전사> 2권 639쪽이다. “한편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소집지시를 받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20:50경 b-2 방카에 도착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지시를 받고 육군본부에 들어온 대목이다.

대통령 살해범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체포를 총괄하고, 실질적 최고 권력자인 계엄사령관 연행을 주도하며, 나아가 제5공화국 대통령을 차지하는 등 사실상 <5공 전사>의 주인공인 전두환 사령관의 등장은 갑작스럽다.

<5공 전사>가 600쪽이 넘는 분량을 할애해 이승만 자유당 시절과 박정희 군부의 5·16 쿠데타, 유신체제를 평가하는 내내 전 사령관은 한 차례도 보이지 않는다.

전 사령관은 명실공히 ‘유신의 군인’이었다. 육사생도들의 5·16 쿠데타 지지행진을 이끌며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나이 서른에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비서관이 된 후 요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중앙정보부 인사과장, 수도경비사령부 제30대대장 등을 거친 뒤 1972년 유신체제 즈음에 1공수특전여단장을 맡았다. 이어 1976년 대통령 경호실 작전차장보 겸 보안차장보로 차지철 경호실장 밑에서 일했다. 1978년 육군 제1보병사단장에 오른 지 1년 만에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승진한다. 전 사령관이 중정 인사과장으로 있을 때 ‘국회의원 해보지 않겠냐’는 박 전 대통령의 제안에 “군대에도 충성스러운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며 거절한 일화는 유명하다.

10·26으로 불거진 유신 붕괴의 혼란을 틈타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5공화국 신군부가 차별화를 위해 유신의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들은 <5공 전사> 곳곳에서 확인된다(경향신문 10월22일자 8면 보도). 신군부가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유신을 ‘구체제’로 규정짓고 날선 비판을 늘어놓은 만큼 <5공 전사>는 유신과 전 사령관의 연결고리를 누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5공 전사>가 수십쪽에 걸쳐 유신 붕괴의 전조로 지목한 ‘부마 민주항쟁’에서도 전 사령관은 불법사찰을 벌이는 등 반유신세력을 통제하는 데 일조했지만 그 활동상은 언급되지 않는다.

<5공 전사>는 10·26 사건 수습 과정에서 처음 등장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자상한’ ‘담담한’ ‘빈틈 없는’ ‘세심한’ 군인으로 그리고 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체포에 성공한 전 사령관은 이후 사건 수사를 총지휘하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으며 12·12사태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왼쪽은 1979년 10월27일 선포된 계엄령으로 중앙청에 배치된 탱크. 경향신문 자료사진

<5공 전사>는 10·26 사건 수습 과정에서 처음 등장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자상한’ ‘담담한’ ‘빈틈 없는’ ‘세심한’ 군인으로 그리고 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체포에 성공한 전 사령관은 이후 사건 수사를 총지휘하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으며 12·12사태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왼쪽은 1979년 10월27일 선포된 계엄령으로 중앙청에 배치된 탱크. 경향신문 자료사진

■ “참으로 자상한 지시”, ‘전비어천가’로 윤색된 김재규 체포

신군부의 관점으로 작성된 <5공 전사>에서 전 사령관은 정의롭고 강직하며 침착하고 상황판단이 빠른 군인으로 묘사된다. 책임을 방기한 국무총리, 독재자를 만든 경호실장, 이중인격의 중정부장, 무능력한 비서실장 등 다른 인물들 평가와는 대조적이다.

<5공 전사>에서 전 사령관의 본격적인 등장은 10·26을 파악한 정 육참총장이 전 사령관을 불러 “김재규를 보안사령부 안가로 정중히 모시라”고 지시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 같은 지시를 받은 전 사령관은 부하들에게 체포를 명령한다.

‘5공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5공 전사>의 ‘전비어천가(全飛御天歌)’가 시작된다. <5공 전사>에 따르면, 전 사령관은 김 중정부장 체포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김 중정부장이 얼굴을 모르는 자신의 부하를 찾았다. 전 사령관은 결국 오일랑 중령을 선택했고 김 중정부장 체포에 나설 오 중령에게 지시한다. “국방장관실로 가서 김재규를 체포해 정동분실로 연행하라, 허화평 대령이 대기할 것이니 김재규를 인계하라, 체포 시는 헌병 완장을 차고 위장하라, 차편은 참모장 차를 빌려 이용하되 예비차 2대를 준비해 유사시에 대비하라.” <5공 전사>는 이 지시를 두고 “참으로 자상한 지시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승만·박정희 시절 내용에
한 차례도 전두환 언급 없어
반유신세력 통제 일조에도
‘구체제’ 단절 위해 연결 누락

김재규 체포 지시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찬양 기술 시작
대범하고 판단 빠르면서도
자상하고 세심한 군인 묘사

사건 현장 있던 정승화 향해
“의혹·유언비어 파다했다”
내란방조죄 만들 근거 기록
국내외 여론의 입을 빌려
쿠데타의 정당성 확보 시도

전 사령관의 대범함, 침착성을 강조하는 대목도 눈에 띈다. <5공 전사>는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중정부장을 체포하라니’라며 오 중령이 긴장하는 장면에서 전 사령관이 “김재규 연행 시 정중하게 하고, 자살할지도 모르니 총기를 철저히 수색하라”고 지시한 것에 대해 “이런 엄청난 내용을 지시하면서도 전 사령관의 표정은 담담했다”며 그의 배포를 강조했다. 오 중령 일행이 떠난 후 전 사령관이 다른 부하를 불러 “저들이 실수할지 모르니 빨리 뒤따라가 엄호하라. 김재규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라”고 지시한 것을 두고는 “그와 같이 경황없는 중에도 전 사령관의 계획은 빈틈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전두환 신군부의 첫 등장인 만큼 오 중령 등의 김 중정부장 체포 장면 역시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빈틈없는’ 전 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오 중령 등은 숱한 위기의 순간을 슬기롭게 헤치고 김 중정부장 연행에 성공한다. <5공 전사>에는 김 중정부장이 체포될 당시 자신의 수행비서인 박흥주 대령을 찾자 오 중령이 “뒤에 따라오라고 했습니다”라고 임기응변을 발휘하는 장면, 국방부 뒷문으로 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김 중정부장이 “왜 이 길로 가는 거야?”라고 묻자 “국무위원들이 사용하는 길”이라고 답해 의심을 무마한 일 등도 기록돼 있다.

김 중정부장 체포 상황은 다시 한번 전 사령관 예찬으로 마무리된다. 남영동 부근 검문소에서 차의 시동이 꺼져 ‘등에 식은땀이 난’ 오 중령은 전 사령관이 준비시킨 예비차량에 김 중정부장을 옮겨 태운다. 당시 오 중령이 느낀 감정을 <5공 전사>는 “예비차편까지 세심하게 조치해준 사령관의 배려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고 전한다. <5공 전사>에 담긴 역사에서 전 사령관은 자상하고 침착하며 빈틈없이 세심한 군인이었다.

[5공 전사-7화]10·26 때 첫 등장 전두환에 “자상·감탄”…전비어천가의 시작

■ 10·26 직후부터 시작된 ‘정승화 때리기’

김 중정부장 체포로 부여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전 사령관은 이후 선포된 계엄령에 따라 계엄사령부 내 합동수사본부장을 맡는다. 합수본부가 군과 중정, 검찰과 경찰 등 모든 수사기관을 지휘·통제·감독하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거듭나는 데는 전 사령관의 입김이 작용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9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전시 전국 계엄상황하에서는 정부의 모든 조직이 군의 통제하에 들어오게 되는바, 이런 상황을 가정해 각급 정보수사기관을 조정·통제해야 할 비상계획 수립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그리하여 비상계획의 일부로 합수부안이 평소에 마련돼 있던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5공 전사>에는 이 같은 전 사령관의 개입이 누락돼 있다.

막강한 권력기구로 등장한 합수본부가 10·26 관련자들을 재판에 넘긴 사건의 결말은 김 중정부장 등 6명에게 사형, 김계원 비서실장 등 3명에게 무기징역·징역형 선고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전두환 합수본부장의 합수본부는 수사 초기 단계부터 정 육참총장에게 칼을 겨누고 있었다.

<5공 전사> 역시 합수본부의 정승화 겨냥을 정당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김 중정부장 체포 후 수사관들의 반응을 전하면서 <5공 전사>는 “김재규는 ‘참모총장 정승화도 사건 현장에 있었고 함께 차를 타고 육본까지 왔다’고 진술해 수사관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고 기술했다. 또 10·26 사건에 대한 평가 부분에서는 “사건 현장에 함께 있던 당시 육군참모총장 정승화 장군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10·26 사건의 수사는 완결되지 못하고 있었다”며 “그가 사건 직후 계엄사령관직을 겸임하게 됐다 하더라도 국내는 물론 외국에까지 그에 대한 의혹과 유언비어가 파다했다”고 적었다.

<5공 전사>는 여론의 입을 빌려 12·12 쿠데타의 정당성도 확보하려고 했다. 국내외 여론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5공 전사>는 “미국의 타임지는 ‘김재규는 정승화 총장을 포함한 몇몇 군부 고위 장성들의 지지하에 쿠데타 음모를 꾸며왔으며…(중략)’라고 보도해 정승화 총장이 의혹의 인물임을 시사했다”고 기록했다. 또 반체제 인사 반응으로 백기완 당시 백범김구연구소장(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말을 인용하며 “박 대통령의 불행은 장기집권의 부작용이다. 김재규가 정승화 총장과 모종의 사전계획이 있었던 것 같다”고 기술했다.

신군부의 관점에서 작성된 <5공 전사>는 이처럼 10·26 사건 수사 과정을 서술하는 단계에서부터 정 육참총장의 ‘내란방조죄’를 만들기 위한 근거를 차곡차곡 기록으로 남겼다. 전두환을 영웅으로 만드는 동시에, 반대세력을 반역 집단으로 만들어 이후 12·12를 거쳐 정권 차지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5공 전사>가 “합수본부는 우선 계엄 업무와 국가안보상 정 총장이 사건에 무관하다고 발표하고 그에 대한 수사를 할 적기를 기다리게 됐다”고 설명한 것처럼, 이후 각 부대를 감청까지 해 반대세력을 무력화한 합수본부는 정 육참총장 연행에 성공하며 신군부의 정권 차지 기반이 되는 12·12 쿠데타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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