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일을 당해!” 꾸짖으면 안돼…아동학대 인지 부모 주의사항

2019.08.24 06:00

[커버스토리]“왜 그런 일을 당해!” 꾸짖으면 안돼…아동학대 인지 부모 주의사항

경향신문이 지난 16일부터 나흘 동안 만난 5명의 해바라기센터 조사관들은 부모와 아이 사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아동을 상대로 한 성범죄의 가해자가 아이의 부모나 가족 구성원인 경우도 적지 않다. 범죄 피해자에게 가해자는 원망과 두려움의 대상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가 가해자일 때 큰 혼란을 느끼고 더 큰 상처를 받는다. 이런 상처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낫지 않는다.

자녀의 성범죄 피해를 감추는 부모도 있다. 친오빠가 동생을 상대로, 친부가 딸을 상대로 성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드물지 않게 생긴다. 피해자인 딸과 가해자인 남편·아들은 둔 어머니가 합의를 종용하기도 한다. 경제 활동을 하는 남편이 처벌을 받게 되면 가정이 파탄날까봐, 아들의 장래가 망가질까봐 등등의 이유로 딸에게 ‘너만 조용히 하면 된다’는 선택을 강요한다. 극한에 몰리게 되면 해선 안 될 말을 딸에게 하기도 한다. “너 때문에 우리 가족은 망했어.” 심지어 이혼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해 상대 배우자를 아동 학대 혐의로 신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아이는 자기 때문에 가족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여기기 쉬우며, 가정이 깨지는 2차 피해를 고스란히 흡수하게 된다.

아동을 상대로 한 성폭력은 특히 ‘애들이라서 모를 거야’라는 생각에 저질러진다. 어린아이가 자신의 피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유인하고 회유해 성폭행을 저지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신이 겪은 피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무언가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다 알고 있다.

이상한 일이란 걸 알기 때문에 상처를 받게 되고, 교사나 가족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장애를 앓는 만 6세 여자아기가 그림 수업 중 “선생님, 자꾸 아빠가 ‘으으’ 놀이를 해요”라고 말한 경우도 있었다. “할머니, 자꾸 아빠가 고추를 몸에 비벼요”라고 말해 범행이 알려진 경우도 있다. 아무리 어려도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안다.

■ 학대 발견했다면 ‘흥분하지 말 것’

아이가 성범죄 등 학대 피해를 입었다는 걸 알게 되면 부모는 “(네가) 어떻게 했기에 그런 일을 당해!”라며 아이를 몰아세우기도 한다. 이러면 아이를 자책하게 만들어 또 다른 상처를 입히게 된다. 부모가 너무 흥분해서 울거나 슬퍼하면 아이는 위축된다. 부모의 그릇된 행동에 아이는 더 큰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아이에게서 학대 피해를 발견한다면, 부모 입장에서는 놀랄 수밖에 없지만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지체하지 말고 해바라기센터를 찾아 전문가와 이야기하기를 권한다. 간혹 증거를 남기겠다며 아이를 상대로 ‘그 사람이 거기 만졌지?’라고 물어보고 이를 촬영하는 보호자가 있다. 이는 아이에게 혼란을 주는 행동일 뿐만 아니라, 진술이 오염돼 조사에 방해가 될 수 있다. 피해 상황을 아이에게 반복해서 물어보면 정작 조사실에 왔을 때는 “엄마한테 다 이야기했어”라며 진술을 거부하기도 한다. 자신의 피해 상황을 너무 정확하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이 경우 부모에 의해 진술이 오염된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다.

해바라기센터 조사관들은 언제나 아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끔찍한 학대를 겪어도 오히려 가족을 걱정한다. “엄마가 나 때문에 힘들어하니까” “언니가 피해를 볼까봐” 아이들은 입을 다문다. 자신이 겪은 끔찍한 피해 내용을 말하면 가족이 흩어져 지낼 수도 있다는 걸 아이는 본능적으로 안다. 조사관들이 처벌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라고 아이에게 물어보면 “아빠가 감옥에 가야 해요?”라고 되물어보는 아이도 있고, “때리는 것만 안 했으면 좋겠어요”라며 용서하려는 아이도 있다.

가해자 처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피해를 입은 아이가 가정으로 돌아가 건강하게 회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이 아이를 보호해 줄 수 없을 때는 강제로 분리해야 한다. 피해자의 회복에 더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엄마가 나 때문에 죽겠다며 힘들어해요”라며 걱정하는 아이들에게 조사관들은 “우선 너에 대해서만 생각하자”고 다독인다.

■ “싫어요” 말할 수 있는 교육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후유증이 어떻게 발현될지 알 수 없다. 아동 대상 범죄의 예방이 중요한 이유다. 부모도 늘 아이를 돌볼 수 없으니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태도를 기르도록 도와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싫어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어른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것도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조사관들은 아동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아동에 대한 추행 중 노년층이 ‘귀엽다’며 이뤄지는 것들이 적지 않은데, 역시 아이에겐 끔찍한 경험이 될 수 있다. 가족이라도 친부나 계부, 형제 등과 있을 때 각별히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과도한 걱정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친족 성범죄가 벌어지고 있고 피해 후유증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싫어요”가 범죄 예방의 만능키는 아니다. 조사관들은 법원의 정확한 판단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한다. 원치 않는 접촉에 ‘싫다’고 말할 것을 교육하고 실제로 아동이 그렇게 했음에도 실제 재판에서 “그걸로는 충분히 반항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식으로 판단한다면 예방 교육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대체 얼마나 거절해야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걸까. 의구심이 남는 현실에서는 아동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가 이뤄져야 예방 교육 역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가가 보호의 울타리가 없는 아이를 지켜줄 수 있도록 제도 공백을 메우는 것도 필요하다. 해바라기센터 조사관들은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한 아동들이 많다고 했다. 비면식범이 벌이는 강제추행을 제외하면,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해바라기센터를 찾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했다. 친족 등 면식범의 표적이 된 아이들은 가족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부모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아이들은 범죄가 발생해도 비교적 빠르게 발견되고 피해 진술도 정확하게 하는 편이다. 신고와 진술이 빠르게 이뤄지면 가해자 검거와 처벌도 신속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평소 돌봐줄 어른이 없는 아이들은 그러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이유만으로 범행에 노출되기 쉽고, 피해가 발견되거나 이후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도 어렵다.

장형윤 경기남부해바라기센터 부소장(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은 “아동에 대한 범죄는 방임과 연관된 경우가 많은데, 생계와 육아가 힘든 가정을 위해서도 국가가 아이에 대한 돌봄을 지원해야 한다”며 “학교·가정 이외에도 교육과 돌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촘촘하게 확대돼 아이들이 공동체 안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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